[연재] 천영기의 인천달빛기행
2. 문학산 일대를 찾아서(중)

[인천투데이 천영기 시민기자]

사진 위부터 문학산 북쪽, 남쪽, 동쪽 전망대에서 각각 바라본 풍경.

복원한 문학산성

문학산 남쪽, 나무다리를 걷다보면 복원한 문학산성을 만날 수 있다. 나무다리가 놓이기 전 등산로만 있을 때는 숲 사이로 무너진 산성의 돌무더기가 두어 군데 흘낏 보여 ‘산성이 이렇게 허물어져 방치돼있구나’ 하며 안타깝게 여겼다. 또, 레이더기지라고 알려진 군부대가 산 정상에 주둔해있고 철조망마저 쳐있어 가까이 다가가 사진을 찍기도 겁났다.

황해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문학산은 비류백제 때부터 관방의 요지였다. 그래서인지 1959년에 문학산 미군기지 건설이 발의돼 대대적인 터 닦기에 들어가 1965년에 미군 방공부대가 주둔한다. 이어 1977년에 한국 공군 방공포병부대와 그 임무를 교체했고 2015년에야 문학산 정상을 개방했으니, 50여 년간 시민들이 문학산 정상에 오른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이렇게 군부대로 인해 산성이 방치되다 보니 산성은 자연히 무너졌고 무너진 성벽의 돌들은 급경사인 산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문학산성은 인천시 기념물 제1호로 산의 정상을 테로 둘러싼 듯한 테뫼식 산성이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인천에 성이 있어 이곳을 미추홀고성 또는 남산고성이라고 하는데 둘레가 160보이고 성안에 봉수대와 작은 샘이 있다’라고 기록했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남산고성의 둘레가 403척이다’라고 기록했다. 1997년 인하대박물관의 지표조사 보고서를 보면, 본래 토성이었던 것을 삼국시대 말이나 통일신라시대에 석성으로 개축했고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거의 1500년 시공을 뛰어넘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시민들이 꾸준하게 제기한 문학산성 복원은 2011년부터 이뤄졌다. 성벽을 일부 복원한 결과 문학산성 총길이는 577m이고 동쪽과 남동쪽에 남아있는 성벽 길이는 330m이나 육안으로 알 수 있는 부분은 220m다. 성벽 높이는 1.5~4m로 추정된다. 그런데 산성을 바라보면 뭔가 생뚱맞고 낯설다. 조금밖에 안 남은 산성의 돌들 위에 네모반듯하게 새로 돌을 깎아 올리니 예스러운 맛이 전혀 없고 이질감이 든다. 또, 성벽이 중간중간 끊어져 있어 졸속으로 복원한 것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들게 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무너진 돌들을 찾아내고 고증을 철저히 거쳐 제대로 복원해야한다.

복원된 문학산성.
최성연 선생이 1950년대에 찍은 문학산 봉수대.

문학산 정상으로

비록 반쪽짜리 개방(하절기 오전 8시~오후 7시, 동절기 오전 9시~오후 5시)이지만 문학산 정상이 2015년에 시민 품으로 돌아왔다. 현재 정상에 접근하는 문은 모두 네 군데 있다. 옛 도로인 소성로에서 사모지고개로 오르는 길에 있는 군부대 철문, 사모지고개에 있는 문, 나무다리가 끝나는 산성 서문 추정지 옆에 있는 서쪽문, 고마리길 위 능선에서 군부대로 들어갈 수 있는 동쪽 문이 열려있다.

「여지도서」‘인천도호부 고적조’에는 ‘문학산 정상은 미추왕(비류)의 옛 도읍지’라고 했으며, 안정복은 「동사강목」에서 ‘속전하는 바로 문학산 정상에는 비류성터가 있고 성문 비판이 아직도 남아있으며, 성내에는 비류정이 있어 맛이 시원하고 산뜻하다’고 기술하고 있다. 1942년 조선총독부에서 간행한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는 ‘지름 360cm의 만두형 봉수대가 남아 있고 이를 미추왕릉으로 보는 전승이 있다’라고 했으며, 1949년 인천시립박물관의 조사에 의하면 ‘봉수 동쪽에 석축 유구가 남아있는데, 사방에 초석(주춧돌)이 놓여있어 건물터로 추정’했는데, 이곳이 바로 임진왜란 때 성을 수리해 왜병을 물리친 김민선 부사의 혼령을 모신 사당 ‘안관당’ 터다.

문학산 정상은 본래 해발 233m이었는데 군부대 조성으로 16m나 깎여 현재 217m다. 이때 봉수대가 사라졌고 군부대가 들어서면서 안관당, 비류정, 동문, 서문이 흔적조차 없어졌다. 그런데 어이없는 것은 문학산 정상부가 시유지라는 사실이다. 미군 부대와 국방부가 시유지를 무단점유하고 있었음에도 인천시는 까마득히 몰랐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하는 것인지. 시는 왜 국방부에 불법주둔을 시정하라는 말 한마디 못하는 것인지….

사람의 의식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큰 사건 하나로 대중의 의식이 변하기도 한다. 1998년에 봉재산에서 발생한 미사일 오발사고를 계기로 시민들은 미사일기지가 시내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결국 시에서 영종도에 대체 토지를 내주고 미사일기지를 이전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그런데 2005년에 국방부가 봉재산 미사일기지를 영종도로 옮기고 장거리 미사일인 페트리어트를 문학산에 배치할 계획을 가지고 있음이 드러난다.

이에 ‘평화와참여로가는인천연대(현 인천평화복지연대)’ 등 시민단체들이 계획 철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연다. 이어 ‘문학산 패트리어트미사일 배치계획 철회 및 시민공원 만들기 시민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이전을 촉구하면서 문학산을 개방하라는 시민운동을 전개한다. 그 방법으로 문학산 등반대회와 인간띠잇기, 미사일 반대 리본 달기, 서명운동 등을 대대적으로 펼친다. 군부대가 시 소유 땅을 무단점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때 시민들이 알았다면 문학산 개방은 훨씬 수월하게 이뤄졌을 것이다. 아울러 반쪽짜리 개방이 아닌 완전 개방으로 문학산이 온전히 시민 품으로 돌아왔을 것이다.

문학산 역사관.
시멘트로 덮은 비류정 자리.

문학산 정상서 보는 풍경

문학산 정상에 올라가면 제일 먼저 군부대 건물을 개조한 ‘문학산 역사관’에 들르기 바란다. 비록 좁은 공간이지만 설명판과 사진, 유물들을 살피다보면 문학산이 선사시대부터 인천 역사의 태동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문학산은 남산이나 배꼽산이라는 이름으로 인천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런데 설명한 것을 보니, 조선시대 이래 성산, 학산, 봉화산, 봉화둑산 등으로도 불렸다.

예전에 문학산이 배꼽산으로 불린 이유를 들은 적 있다. 노적산, 연경산, 문학산, 수리봉, 길마산의 형세가 마치 인간의 모습을 닮았고 그중 문학산이 가장 중심부인 배꼽 위치해 있어 배꼽산이라고 했단다. 그 당시 ‘이상하다. 문학산으로 이어지는 산세가 인체 모습을 닮지는 않았는데, 오히려 학이 날개를 편 형상 같은데’라고 생각했다. 역사관에서 최성연 선생이 1950년대에 찍은 사진을 보니 문학산 정상에 있는 봉수대가 마치 튀어나온 배꼽을 닮았다. 산 정상에 군부대가 들어오기 전에 문학산을 본 사람들이 아니면 배꼽산의 유래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후대의 사람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그냥 말하는 것이었다. 향토사를 공부하다보면 이런 일을 흔하게 겪는다. 같은 마을에 사는 사람인데도 똑같은 정보를 영 다르게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적는 것이 조심스럽다.

문학산이 천혜의 요새로서 군사적 요충지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을 알려면 산 정상에 만들어진 전망대에 가보면 알 수 있다. 전망대는 동쪽, 남쪽, 북쪽 세 군데에 있다. 인천 전역이 한눈에 다 들어오는 곳에 문학산이 위치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운이 좋아야 하겠지만 하늘이 티 없이 맑은 날 문학산에 오르면 전망대들에서 보이는 풍광을 모두 담고 싶은 욕심이 치밀어 오른다. 그래서 핸드폰을 세로로 세워 파노라마를 찍는다.

문학산 표지석이 있는 북쪽 전망대에 오르면 미추홀구의 모습이 바로 눈 아래 펼쳐진다. 왼쪽은 자월도, 인천대교로부터 영종도, 마니산, 수봉산, 계양산 그리고 서울의 인왕산과 남산이 다 보인다. 남쪽 전망대에서 보면 연수구를 중심으로 왼쪽으로 오봉산, 소래포구, 대부도, 송도 신도시, 청량산, 팔미도, 인천대교, 무의도 등이 넓게 펼쳐져있다. 동쪽 전망대는 정상에 있지 않고 동문 쪽으로 조금 내려가야 있다. 울타리를 친 군부대 막사 앞에 있는데 그 앞 시멘트로 덮은 곳에 비류정이 있었다. 동쪽 전망대에 오르면 왼쪽으로 계양산, 만월산, 그 뒤로 북한산이 보이고 이어서 인왕산, 남산, 소래산, 관악산, 오봉산이 펼쳐져 보인다.

이 멋진 모습을 밤에 보면 어떨까. 인천에서 볼 수 있는 최고의 야경이지 않을까. 시 소유의 땅을 무단점유하고 있는 국방부로부터 인천시민의 품으로, 문학산이 온전하게 돌아올 날을 기다린다.

※ 천영기 선생은 2016년 2월에 30여 년 교사생활을 마치고 향토사 공부를 계속하면서 시민들과 함께 ‘달빛기행’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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