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투데이 심혜진 시민기자] 다른 지역에 사는 동생네 집에 하루 다녀왔다. 동생은 작년 말부터 휴가를 내고 요양 중이다. 예민한 장때문에 오랫동안 배변이 원활하지 않았는데 그것이 누적돼 더 큰 문제를 일으켰다. 다행히 수술과 회복이 잘 됐고 곧 복직할 거라고 했다. 그동안 외출다운 외출을 거의 하지 못해 답답할 터. 마침 조카도 일주일 ‘효도 방학’을 맞아 학교에 가지 않는다고 했다. 조카도 볼 겸, 동생과 오랜만에 바깥바람도 쐴 겸, 동생네집으로 가는 왕복 버스표를 끊었다.

가평과 경강역을 잇는 레일바이크 길은 나뭇잎이 그늘을 드리워 시원했다. 오르막길에선 페달을 구르지 않아도 레일이 저절로 움직여주니 걱정한 것보다는 그리 힘들지 않았다. 다리 아래로 북한강이 흐르고 왜가리와 백로가 날아다니는 풍경이야 더 말해 무엇할까. 신이 난 조카, 동생, 엄마와 함께 초여름의 푸름을 한껏 즐겼다.

저녁엔 퇴근한 올케까지 합류해 밥을 먹었다. 먹음직스러운 삼겹살보다도 내 눈길을 사로잡은 건, 동생의 젓가락이 제일 먼저 향한 곳, 바로 양배추 샐러드였다. “너 정말 양배추를 먹는구나.” 동생은 말없이 웃었다. 그러더니 조카 쪽으로 고개를 숙이며 “아빠 양배추 잘 먹지? 양상추도 잘 먹지, 그치?” 한다. 나는 그 모습이 새삼 반갑고 기뻐 눈물이 날 뻔했다.

9년 전 이맘때였다. 동생이 병원에 입원했다며 전화를 했다. 전화통화도 맘대로 못하고 정해진 요일이 아니면 면회도 안 되는 곳, 바로 정신과 병동이었다. 동생이 우울증 약을 먹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입원까지 할 정도인 줄은 몰랐다.

ⓒ심혜진

짧은 통화를 마치자 뒤이어 다른 가족에게 줄줄이 전화가 왔다. 갑작스러운 입원 뒤에는 심각한 내막이 있었다. 그날 아침, 동생은 출근하지 않았다고 했다. 올케는 아기를 낳기 위해 며칠 전 친정에 가, 집에는 동생 혼자 있었다. 이상하게 여긴 사무실 직원이 동생네 집 문을 열고 들어가 쓰러져있는 동생을 발견했다. 동생은 곧 태어날 아기에게 ‘우울증 약을 먹지 않는 아빠’가 되기 위해 두어 달 전 임의로 약을 끊었다. 그리고 그날 출근 알람이 울렸을 때, 아무렇게나 쌓아둔 수면제와 우울증 약을 한꺼번에 입에 털어 넣었다. 억지로 약을 끊은 후유증, 살고 싶지 않은 충동이 일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머릿속이 하얘지고 다리 힘이 풀렸다.

그 주 토요일, 나는 면회 전 동생 담당 의사를 만났다. 동생 상태를 들으려던 것이었지만 내 편견을 더 많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우울증은 단지 ‘우울한 감정’도, 의지로 벗어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동생을 격려하고 지지해야했음에도 “아직도 약 먹지?”라고 물으며 어서 약을 끊기를, 마음을 다잡고 이제 그만 우울증에서 벗어나기를 내심 바라왔다. 이뿐만이 아니다. 편식이 심해 채소는 일절 입에도 안 대던 모습, 걸어서 5분도 안 걸리는 직장에 꼭 차를 운전해 가려던 모습, 친절하고 온순하던 동생이 운전대만 잡으면 사나운 폭군으로 돌변하던 모습을 한심하게 바라보며 동생에게 변해야한다고, 고쳐야한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동생에게 필요한 건, 살아있는 것 자체가 힘들고 버거운 자신을 그냥 곁에서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것. 그동안 동생이 얼마나 외로웠을지, 뒤늦은 후회에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그날 이후, ‘과연 약을 언제 끊을까’ 하던 걱정은 ‘약을 잘 챙겨먹어야 할 텐데’ 하는 염려로 바뀌었다. 그것이 가장 중요했다. 엄마는 동생이 식탁 구석에 던져놓은 약봉지들을 바구니에 차곡차곡 정리해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뒀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수용과 인정, 조용한 응원, 그것밖에 없었다.

9년 동안 동생은 매주 서울을 오가며 힘든 치료를 성실하게 받았다. 동생의 우울증이 얼마나 좋아졌는지, 이제 나는 궁금하지 않다. 그저 동생이 지금 나와 함께 레일바이크 페달을 밟으며 나란히 따뜻한 햇볕을 쬐고 있음이, 입에도 대지 않던 양배추를 ‘건강하게 살기 위해’ 스스로 먹고 있음이, 감사할 뿐이다. 남들에겐 별것 아닌 양배추 한 접시에 동생의 젓가락이 닿기까지, 그 길고 험난한 과정을 버텨낸 동생이 참용기 있는 사람이란 걸 이제야 알겠다. 나라면 견딜 수 있었을까. 장담할 수 없다. 그래서 내겐 동생이 ‘애써’ 찾아낸 입맛에 맞는 세 가지 채소, 양배추, 양상추, 감자가 그렇게 예쁘고 소중할 수 없다.

※ 심혜진은 2년 전부터 글쓰기만으로 돈을 벌겠다는 결심을 하고 열심히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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