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아직, 아무도 읽지 않은 책
[세상읽기] 아직, 아무도 읽지 않은 책
  • 인천투데이
  • 승인 2019.06.03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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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수연 인하대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

[인천투데이]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오늘의 독자와 만나 호흡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동시에 그 오늘을 통해 또 다른 내일이 갱신되기를 꿈꾼다. 결국 오늘의 독자가 내일의 독자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야말로 한 권의 책을 둘러싼 가장 큰 열망일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작가에게 100년 뒤의 독자를 상상하며 작품을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맨부커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가 100년(정확하게는 95년) 뒤에 공개될 책을 만드는 노르웨이의 공공예술 프로젝트에 참여했다는 소식은, 그런 의미에서 흥미롭다. 오늘의 독자와 호흡을 포기한 대가로 미래를 향해 직접 쏘아진 발신. 한 세기의 공백을 관통해 미래 독자와 만날, 그러나 아직은 아무도 읽지 않은 그 책. 그 수신을 확인할 수 없다는 것, 그래서 더 궁금하고 특별하게 느껴지는 한 권의 책. 그것이야말로 이 프로젝트가 목표한 효과이리라.

오늘날 우리는 책의 종말을 기정사실인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실제로 출판시장은 오랜 침체를 겪고 있으며, 문학의 위기라는 문제 역시 이러한 출판시장 붕괴와 궤를 함께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비단 한국 사회만의 문제는 아니다. 책의 종말은 전 세계가 목도하고 있는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국 출판시장이 더 위축된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엄밀히 말해 유효성을 상실해가는 것은 책, 그것도 종이책이라는 매체이지 그 안에 담긴 콘텐츠가 아니다. 201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런칭되기 시작한 서사 콘텐츠 중심의 웹 플랫폼 시장은 출판시장의 위기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성장했다. 과연 책을 대체할 수 있을까 고심했던 e-book 시장 역시 지난 10년간 눈부신 성장을 해왔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이제 책은 소유하는 것이 아닌 소비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는 우리가 책이라고 일컫는 단어의 개념 역시 이미 매체가 아닌 콘텐츠를 지칭하는 것에 가까워졌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웹툰이나 웹소설을 읽으면서 ‘책을 읽는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웹 기반 콘텐츠는 주로 장르 그 자체로 호명된다. 이 점에서 본다면 책의 종말은 오히려 책이라는 테두리에 갇힌 콘텐츠의 해방이라고까지 지칭할 만하다. 이런 시대에 종이라는 물질로 구성된 책만을 고집한다는 것은 지나치게 시대착오적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 점에서 본다면 오늘 우리가 말하는 출판시장의 위기는 이미 콘텐츠의 문제로 변화했다고 봐야할 것 같다.

다시 한강 작가의 이야기로 돌아오자. 이렇게 달라진 시대 현실을 되짚어본다면, 100년 뒤의 독자가 읽을 책을 내겠다는 이 프로젝트는 자칫 무의미한 것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책이라는 것이 존재하지도 않을 100년 뒤, 그 시대를 향한 이 발신을 우리는 무엇으로 해석해야하는가?

나는 오히려 그 답을 다른 곳에서 찾고 싶다. 작품 100편을 책으로 묶어내기 위해 100년을 기다려야하는 나무 1000그루. 이 프로젝트의 진정한 가치는 거기에 있다. 생태적 의미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거기엔 독서라는 행위와 결부된 전제가 두 가지 있다. 무엇보다 그것은 100년이 지나도 이야기를 향한 인간의 욕망이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다. 그리고 어떤 욕망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바로 기다림이라는 사실이다.

새하얀 종이를 넘나드는 독서가 유물이 될 그 시대에, 비로소 독자와 만날 이 책이 가진 가치는 무엇인가. 비물질적 콘텐츠가 아닌 다시금 물질로서 소유하고 싶은 텍스트. 이 발신이 갖는 의미는 바로 거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