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립박물관 이전에서 시작한 뮤지엄파크 ‘주객전도’
인천시립박물관 이전에서 시작한 뮤지엄파크 ‘주객전도’
  • 김갑봉 기자
  • 승인 2019.05.31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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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장고 없어 ‘검여 유희강’ 놓치고도 통합수장고 계획 부재

[인천투데이 김갑봉 기자] 인천시는 인천뮤지엄파크 내 시립미술관 신축 사업이 상반기 문화체육관광부 공립미술관 설립타당성 사전평가를 통과해 청신호가 켜졌다고 31일 밝혔다.

인천뮤지엄파크 조감도
인천뮤지엄파크 조감도

뮤지엄파크는 DCRE가 용현·학익 1블록 도시개발 사업의 사회공헌 일환으로 시에 기부한 부지(5만4121㎡, 1만6371평)에 시립박물관을 이전하는 사업이다. 나중에 시립미술관 건립이 추가됐다.

시립박물관 이전을 위한 신축 타당성 사전평가는 지난 5월 1일 통과했고, 시립미술관도 통과함으로써, 시는 뮤지엄파크(사업비 2935억 원 : 국비 323억 원, 시비 1329억 원, 민간 1283억 원) 건립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시는 향후 기획재정부 예비타당성조사 (2019. 7. ~ 2020. 12.)와 민간투자 기본계획 수립( 2020. 6. ~ 12), 중기지방재정계획 반영과 투자심사(2021. 1. ~ 6.), 기본설계와 실시설계용역(2021. 7. ~ 2021. 12.)을 거쳐 2022년 1월 착공하겠다고 했다. 준공목표는 2023년 12월이다.

인천뮤지엄파크 개요
인천뮤지엄파크 개요

박물관 이전에서 시작했는데 미술관이 전면에

하지만 뮤지엄파크는 주객이 전도됐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뮤지엄파크는 당초 시립박물관 이전 사업에서 시작했는데 박물관은 작아지고 미술관이 커졌다. 아울러 검여 유희강 선생의 작품 1000여점을 수장고 부족으로 놓치고도 통합 수장고 계획은 부재했다.

뮤지엄파크는 당초 시립박물관 이전 사업이 출발선이다. 인천시립박물관은 국립 중앙박물관 다음으로 지역에 지어진 국내 최초의 공립박물관이다. 국내 미술평론가 1호이자 국립현대미술관장을 지낸 이경성 선생이 초대 관장을 맡았다.

하지만 송도에 있는 시립박물관은 접근성이 열악하고 규모 또한 열악했다. 그러던 차에 디시알이(DCRE)가 도시개발사업의 사회공헌 일환으로 부지를 기부하겠다고 나서면서, 민선 6기 때 박물관 이전이 공론화됐다.

뮤지엄파크 사업은 박물관 이전이 주된 사업이라 시립박물관이 나섰다. 시 내부에서는 기부 받은 땅을 매각하겠다는 의견이 상당했으나, 시립박물관은 이를 잠재우고 설득해 뮤지엄파크를 확정했다.

그 뒤 지난해 박물관분과, 미술관분과, 문화산업분과, 시민단체분과 등 분과 4개에 25명씩 참여해 뮤지엄파크 조성 추진을 위한 '100인위원회'를 구성했다. 하지만 이는 시장이 바뀌면서 전임 시장 때 구성한 것이라며 해산됐다.

그러면서 시립박물관이 구상했던 이전계획도 물거품 됐고, 미술관 건립이 전면에 등장했다. 그리고 규모 또한 미술관이 더 커졌다.

검여 선생 놓치고도 인천의 서예 여전히 찬밥

검여 유희강 선생 서거 30주년 기념 특별전 포스터
검여 유희강 선생 서거 30주년 기념 특별전 포스터

박물관이 축소된 것도 문제지만 미술관의 성격과 역사성, 그리고 규모 대비 미술품 소장 여력도 의문이다. 시립미술관은 현대미술과 설치 미술, 영상 등 모던아트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인천의 경우 현대미술에 역사성과 거장을 보유한 것도 아니고, 심지어 300만 도시라고 하지만 지역에 미술대학 조차도 하나 없는 도시다.

아울러 미술관이라면 최소한 당대 거장들의 작품을 소장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중섭, 천경자, 김환기 화백 등의 작품을 구입하려면 작품 당 40~50억 원이다. 시 재정으로 몇작품이나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반면 인천이 잘할 수 있고, 역사성도 있으며 지금도 맥이 흐르고 있는 미술세계는 고려되지 않고 있다. 시는 최근 추사 이후 근현대 최고의 서예가로 평가 받는 검여 유희강 선생의 작품을 놓치고도 달라진 게 없다.

서예는 인천에서 가장 경쟁력이 있는 분야로 꼽히며, 현재 그 맥이 이어지고 있다. 육조체의 대가 검여 유희강 선생과 어깨를 나란히 한 해서의 대가 동정 박세림 선생, 한글 궁서체와 전서ㆍ예서에 능한 우초 장인식, 그리고 이들의 뒤를 이은 초서에 능한 송석 정재흥, 한림 이규환 선생과 안로공체로 유명한 무여 신경희 선생 등이 있다. 동정 박세림의 수제자이자 전각에 조예가 깊은 청람 전도진 선생 또한 인천의 보배다.

서예는 인천이 내세울 만한 장르이자 역사적으로도 인천과 인연이 깊다. 금석문과 서예, 전각은 지금도 유명하지만 역사적으로 강화에서는 팔만대장경(재조대장경)을 제작했고, 송암 박두성 선생은 훈맹정음인 점자를 창시했다.

게다가 서예 작품은 구입비가 상대적으로 낮아 1~2억 원이면 석봉 한호, 원교 이광사, 추사 김정희, 백범 김구 선생 등의 작품을 구할 수 있다. 여기다 인천에서 들어서는 문자박물관은 서예를 특화한 미술관과 시너지 효과가 기대된다.

수장고 없어 숱한 작품 놓치고도 달라진 게 없어

인천은 검여만 잃은 게 아니다. 동정 박세림 선생의 작품도 인천이 품지 못해 대전대학교에 있다. 인천에 수장고가 없기 때문이다.

가요연구가인 김점도 선생이 인천수봉문화회관에 보관 중이던 근현대 가요책자 2000여권과 유성기판 2300여장, 레코드판 2만여장 등의 자료도 인천에서 받아주지 않자 용인시에 있는 신나라레코드 가요연구소로 옮겼다.

이렇듯 인천의 모든 공립 박물관의 수장고는 모두 포화상태다. 공립만 포화가 아니라 약 20개 되는 사립 박물과도 포화상태이며, 도서관 또한 포화상태라 새 책을 들이려면 옛책을 버려야 하는 실정이다. 도서관의 힘은 장서 보유에서 나오는 법인데 현실이 안 받쳐 주고 있다.

아울러 인천에서 생산하는 각종 공문서들도 보존가치가 있으면 보존을 해야 하는데 마땅한 곳이 없다. 서울시와 세종시는 부산에 있는 국가기록원 부산기록관을 본 따 문서보관소를 조성 중이다.

부산기록관은 1984년 건립한 국내 최초 기록물 보존 시설로, 영남권 중요 기록물을 수집‧보존‧활용하는 영구기록물관리기관이다.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해 중앙기관과 지방자치단체가 생산한 문서, 간행물, 지적‧임야원도, 행정박물 등 약 150만 점을 보존하고 있다.

인천 또한 인천의 유물자료, 문서자료 등을 보존하고 관리하려면 통합수장고가 있어야 한다. 시립박물관이 이전을 추진할 때는 뮤지엄파크 지하에 4~5층 규모의 통합수장고를 조성하는 계획을 검토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슬그머니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