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천영기의 인천달빛기행
1. 문학산 일대를 찾아서(상)

[인천투데이 천영기 시민기자] 1990년에 인천향토교육연구회를 발족해 학생들에게 내가 사는 고장의 소중함을 알리고자 10년간 한 달에 한 번씩 학생들의 향토 기행을 안내했다. 그러다 보니 각종 단체에서 기행 안내를 부탁해 지금까지 대략 400여 차례 인천을 비롯해 국내 여러 곳을 안내했다.

여행하기 편한 지리적 여건과 과거 행정구역을 고려할 때, 인천은 문학ㆍ계양ㆍ개항ㆍ강화ㆍ옹진(섬) 등 다섯개 문화권으로 나눌 수 있다.

2016년 2월에 30여 년 교사 생활을 마치면서 향토사 강의 요청이 계속 들어와 편하게 쉬려는 계획이 무산됐다. 고민하다가 인천시민들과 ‘달빛기행’을 하는 걸 계획했고, 지금도 계속 기행코스를 만들며 한 달에 한 번씩 안내하고 있다. 최근 26차 기행을 마쳤는데 코스 만들기가 쉽지 않다. 될 수 있으면 전철역에서 시작해 전철역에서 끝내고 자정 전에는 집에 들어가려 하다 보니 지금까지 대략 15개 코스를 만들었다.

이제부터 격주로 연재하는 ‘인천달빛기행’ 은 앞에 열거한 5개 문화권을 중심으로 한다. 달빛기행만이 아니라 내가 안내한 인천의 다른 길들도 소개한다. 인천을 나들이하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됐으면 좋겠다.

문학산 고마리실 안내판.

학산둘레길인 고마리길로

선학역 3번 출구를 나와 먹자골목을 계속 올라가면 에덴자동차공업사와 법주사 사이로 문학산으로 올라가는 ‘연수둘레길’이 나온다. 여기서부터 표지판을 따라 길마산 정상으로 방향을 잡고 올라가다 보면 길마산 정상과 길마재로 길이 나뉜다. 길마재로 방향을 잡았다.

계속 올라가다 고마리길 쪽으로 접어든다. 고마리꽃자생군락지가 있어 고마리길이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고마리꽃이 피는 8~9월이면 사진작가가 많이 온다. 이 꽃의 어원이 정겹다. 주로 물가나 늪지대에 살며 물을 정화해주는 역할을 해서 ‘고맙다’고 하다가 고마리가 됐단다.

이 길은 문학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가장 편한 길이다.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아 한적한데, 숲이 우거져 삼림욕하기 좋다. 특히, 달밤에 걸으면 마치 태고의 원시림을 걷는 느낌을 준다. 보름달이 환하게 뜬 날에는 달이 나를 따라오는 것인지 내가 달을 따라가는 것인지, 달과 내가 하나가 돼 걷는다. 하늘마저 덮어버린 숲속 먹빛 어둠을 걷다보면 상념조차 사라져 깊숙한 곳에서 토해져 나오는 나의 진면목을 만나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길마재로 접어들어 고마리길로 갈라지는 언덕 위, 티끌 하나 없이 순백의 자태를 뿜어대는 왕벚나무 한 그루가 우뚝 서있다. 이렇게 하얀 벚꽃나무는 처음 보는 것 같다. 하긴 도시에서 자라고 이제야 길의 좌우도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으니 산에서 마주하는 들꽃과 나무가 다 반갑다. 달빛에 비친 꽃잎들이 시리다 못해 푸른빛을 내뿜는다. 낮에 볼 때는 순백의 맑은 느낌이었는데 달밤에 보니 왜 이렇게 서글퍼지는지, 까닭 없이 가슴이 아리며 눈물이라도 흘릴 것 같다.

배바위. 배 모양과 비슷하다.

배바위를 찾아서

고마리길로 쭉 가다보면 자그마한 둔덕 아래 오른쪽으로 바위 하나가 휑하니 놓여있다. 눈여겨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2016년 5월 중순에 달빛기행 코스를 같이 만들던 성호영 선생이 “이거 혹시 배바위가 아닐까?”라고 무심코 던진 말에 갑자기 머리가 띵해지며 발걸음을 되돌렸다. 1960년대 사진으로만 남아있는 배바위. ‘문학산 북쪽과 수리봉 사이 중간 지점에 배 모양의 바위가 있고, 태초에 조물주가 장차 바닷물이 문학산까지 치밀어오를 것을 예상해 만들었다’는 기록과 사진 한 장만 있었다. 향토사를 공부하며 문학산에 배바위가 있다는 말을 무수히 들었다. 그래서 어디에 있냐고 물으면, 그냥 문학산에 있다는 말만 하지 누구도 그 위치를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아무도 그 위치를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사진 찍기가 난감하다. 풀과 자잘한 나무가 우거져 혹시 뱀이라도 나올 것 같아 가슴이 ‘콩닥’인다. 그래도 찍어야 하기에 풀과 나뭇가지를 발로 밟고 배모양과 조금 다른 것 같지만 몇 장 찍었다. 사모지 고개에 세워진 안내판에 배바위 사진과 설명이 있는 것을 알기에 비교해보기로 했다. 사모지 고개에서 비교해보니 사진 찍은 방향이 잘못됐다. 나중에 다시 가서 다양한 각도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제야 배바위 모습이 제대로 드러났다.

바로 구청 담당부서로 배바위를 찾았다며 사진을 전송했다. 그런데 이미 알고 있었다는 대답뿐이다. 애쓰셨다는 한마디 말이 그렇게 어려웠나. 50여 년 동안 위치를 몰라 엉뚱한 곳에 안내판을 만들어놓고서 이런 식으로 대응하는 건 무슨 경우인지. 사진을 전송해 배바위 위치를 알려준 까닭은 사람들이 배바위를 쉽게 볼 수 있게 주변 풀들과 자잘한 나무들을 정리하고 안내판을 설치해달라고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벌써 3년이 지났는데도 배바위는 처음 찾았을 때와 똑같이 방치돼있다. 이 길을 몇 차례 안내하며 보여준 이들만 배바위의 위치를 알 뿐이다.

문학산 고마리꽃 자생군락지.

문학산 정상으로

계속해 고마리길로 가다보면 고마리꽃을 설명하는 판이 붙어있는 ‘인천둘레길’ 표시판이 나온다. 그 앞에는 땅에 통나무를 박아 여러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자연학습장이 있다. 이곳에 앉아 잠시 쉬어가는 것도 좋다. 고마리꽃 자생군락지가 이곳을 중심으로 길 위아래에 매우 넓게 펼쳐진다. 고마리꽃을 보는 것이 목적이라면 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9월 중순께 가는 게 좋다. 나뭇가지 끝에 꽃 10여 개가 뭉쳐 달리는데, 하얀색 또는 하얀색 바탕에 끝이 분홍색을 띈다. 꽃이 작아 실망하는 사람도 있는데, 작고 자잘한 것의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에겐 아름답게 보인다. 사람 사는 세상도 마찬가지 아닌지.

이곳에서 문학산 능선까지는 100m 정도 된다. 숨 한 번 크게 들이마시고 걸으면 단숨에 오를 수 있다. 겨울이나 초봄에 오르다 보면 나뭇가지 사이로 문학산 동북쪽 산성을 복원한 모습이 아스라이 보인다. 그쪽 길도 가봐야 하는데 철조망이 가로막고 있다. 타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군부대 영역일 것 같아 조심스럽다.

능선에 오르면 낮에는 문학산 정상으로 오르는 동문이 열려있어 바로 정상으로 올라갈 수 있다. 그러나 야간에는 군부대가 문학산 정상을 통제하기에 절벽에 지지대를 세운 나무다리로 가야한다. 나무다리를 걷다가 연수동 쪽을 바라보면 갑자기 시야가 툭 터진 곳들이 나타난다. 첫 번째 장소에서 야경을 바라보며 탄성을 질렀는데, 조금 더 가다보니 전면이 완전히 열려 다시 한 번 탄성이 절로 흘러나온다. 멀리 오이도로부터 시화방조제, 송도 신도시, 연수동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불야성이란 이런 것을 말하나 보다.

문학산 돌 먹는 나무(삼신할매나무).

계속 길을 가다보면 복원한 문학산성과 SBS ‘있다! 없다?’에 방영된 ‘돌 먹는 나무(삼신할매 나무)’를 볼 수 있다. 뿌리가 돌을 머금고 있는데 돌을 먹는 것보다는 마치 돌을 낳는 것 같다. 막 출산하는 모습이 연상된다. 그렇다고 자식 없는 여성이 치성을 드렸던 나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절벽에 나무다리가 없었을 때는 등산로에서 이 나무를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수령이 40년 정도로 추정되는 아카시아나무이기 때문에 신목인 당산나무가 될 수 없다. 당산나무는 마을을 지키는 신령이 깃들어있다고 생각해 제사를 지내는 나무로, 주로 수백 년 이상 살아 아름드리 거목이 된 느티나무ㆍ회나무ㆍ팽나무 등이 주류를 이룬다. 아마도 성장 과정에서 돌을 끼고 자란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도 신기하다.

운이 좋으면 나뭇잎들 사이로 인천대교 야경을 볼 수도 있다.

문학산 나무다리에서 바라본 연수구 연수동 야경.
문학산 일대 기행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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