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 인천민속학회 이사

[인천투데이] 영화 ‘파업전야’가 극장 스크린에 걸렸다. 영화를 만든 지 30년 만이다. 필름을 뺏기 위해 경찰 헬기가 떴고 영화를 보러 대학 강당에 갔더니 헬멧을 쓴 각목부대가 들이닥쳐 관객들을 잡아갔다는, 믿기 힘든 광경이 펼쳐진 시절의 작품이다. 대학생들은 학교 정문을 지키며 영화를 상영했고 노동자들은 파업 현장에서 단체로 관람했다. 이 영화는 내적으로는 노동 현실에 대한 솔직한 묘사를 추구했지만, 외적으로는 영화의 역할을 모색하고 검열에 대한 문제의식을 보여줬다. 당시에는 이런 영화들이 종종 발표됐다. ‘오! 꿈의 나라’나 ‘어머니, 당신의 아들’도 비슷한 시기 비슷한 탄압을 받으며 상영됐다.

‘파업전야’는 상영 자체가 불법으로 규정된 영화다. 그런 영화를 극장에서 개봉작으로 만날 수 있다는 건, 변한 세상을 실감할 수 있게 해준 사건이다.

하지만 아쉬움은 있다. ‘파업전야’가 우리 영화사에서 갖는 의의는 꽤 중요하지만, 그걸 가능하게 한 건 6월 민주항쟁 직후부터 본격화한 이른바 87년 노동자대투쟁이다. 이 또한 30년이 지났다. 재개봉 이슈에 덧붙여 그 시절 노동자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목소리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30년 동안 공장에서 일을 했으면 좀 잘 살아도 된다. 옛날 귀족들이 그랬던 것처럼 좋은 집에서 살고 좋은 차를 타고 약간의 사치를 부리면서 살아도 괜찮다. 노동자가 부자가 되지 말란 법은 없다. ‘파업전야’에서 묘사한 노동자들은, 혹은 옆에서 도와준 노동자들은 지금 그렇게 살고 있을까. 아니면, 최저생계를 걱정하면서 30년 전과 변함없는 삶을 살고 있을까. 아마 후자의 경우가 더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파업전야’는 인천 부평구 갈산동에 있는 한독금속 공장에서 찍었다. 촬영하던 때는 공장이 문을 닫은 상태여서, 공장 노동자들이 조업정상화를 요구하며 싸움을 이어가던 무렵이다. 촬영 장소였던 공장은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대신 상가와 아파트가 자리를 메웠다. 관계자가 아니라면 현장 위치를 확인하는 것도 쉽지 않다.

공장이 없어진 건 아쉽지 않은데, 한 가지 미련이 남는 건 공장 내 한 건물에 그렸다는 벽화다. ‘노동자천하지대본’이라고 쓴 대형 깃발을 한가운데에 그린, 최초의 공장 벽화로 알려진 작품이다. 지금은 당연히 사진만 남았다.

이곳 말고도 인천에 영화나 드라마 등을 촬영했던 장소는 많다. 모두 유명한 관광지가 됐다. 한독금속 공장이 이 촬영지들과 차별화되는 점은 스토리를 품고 있다는 것이다. 벽화는 물론, 안치환의 ‘철의 노동자’ 탄생 비화, ‘파업전야’로 볼 수 있는 한국 영화사, 인천의 노동운동사 등.

인천은 이런 스토리에 인색하다. 공장을 산업유산으로 대우해 카페나 음식점, 전시관 등으로 재활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야기를 계승하는 게 더 가치 있다. 많은 것도 필요 없다. 표지판 하나만 있어도 된다. 한독금속 공장의 경우 그 위에 벽화 사진이나 영화 포스터 한 장만 붙여놓아도 공간을 이야기로 꽉 차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건 관심이다. 노동자들에 대한 관심을 잃으면 노동자들은 30년 전이나 30년 후나 똑같은 삶을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파업전야’의 재개봉은 그렇기에 스크린 문제에 그칠 수 없는 것이다.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