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때늦은' 대책회의…“시민들께 죄송 임시수장고 설립 검토”

[인천투데이 김갑봉 기자] 추사 김정희 이후 최고의 서예가를 걷어차 버린 인천시의 안목 없는 문화 행정이 할말을 잃게 하고 있다. 지난 2010년 검여 유희강 선생의 후손이 시에 공문을 보내 작품 수백점을 기증하겠다는 뜻을 밝혔는데도 시가 거부한 사실이 공식 확인됐다.

2010년 검여 선생의 가족대표 장남 유한규(82) 선생은 가족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 213점을 기증하겠다고 인천시와 시립미술관에 공문을 보내 뜻을 전달했으나 시는 묵살했다.

당시 주무 과장은 문화체육관광 국장으로 승진한 뒤 국장으로 은퇴했고, 당시 주무 팀장은 문화재과장을 거쳐 현재 인천의 한 기초단체에서 부단체장으로 재직 중이다.

당시 검여 선생의 후손들은 기증 조건으로 '항구적인 전시가 가능하게 해달라'는 게 전부였다. 그러나 안목 없는 인천시 딤당 공무원들은 보물같은 검여 선생 작품의 가치를 알아 보지 못하고 발로 걷어차 버렸다. 이때 시가 발빠르게 대처 했으면 소중한 작품 1000여점이 통째로 서울로 넘어가는 비극을 막을 수 있지 않았느냐는 아쉬움이 두고두고 남는 대목이다.

검여 유희강(1911~1976년) 선생은 1911년 인천시 시천동(현재 검암 시천동) 출신으로 또 다른 인천 출신 서예가 동정 박세림 선생과 함께 추사 이후 한국을 대표하는 근대 서예가로 꼽힌다.

인천에 기증하고 싶었던 검여 선생의 후손은 인천이 알아주지 않자 습작 600점과 작품 400점 등 1000점과 그리고 생전에 사용했던 벼루, 붓 등을 성균관대에 아무 조건 없이 기증했다.

검여 유희강 선생 서거 30주년 기념 특별전 포스터

앞서 검여 선생의 후손이 2010년 시에 기증하겠다고 공문을 보내기 전인 지난 2006년 인천문화재단은 검여 선생 서거 30주기를 기념한 특별전시회와 학술심포지움을 동시에 개최했다.

인천출신 작가에 대한 특별전시회와 학술심포지움까지 개최하고도 수장고 부족을 빌미로 작품 기부를 거부했다는 것은 궁색한 변명에 불과하다.

인천문화예술계 한 인사는 “수장고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행정 수준의 문제이자 의지의 문제다.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이 있고 의지가 있었다면 우선 기부를 받아 시립미술관이 개장하기 전까지 인근 지역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나눠서 보관할 수도 있는 문제”라고 꼬집었다.

문제는 인천에서 이 같은 일이 처음이 아니라는 데 있다. 더욱이 수장고를 핑계로 계속 방치하면 앞으로도 계속해서 인천의 문화 재산들이 외부로 빠져나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실제로 검여 선생과 쌍벽을 이루는 인천이 낳은 서예가 동정 박세림 선생의 작품은 인천에 있지 못하고 대전대학교가 소장하고 있으며, 검여와 동정의 뒤를 잇는 남전 원중석 선생의 작품도 향후 어찌 될 지 모르는 상황이다.

조우성 전 인천시립박물관장은 “비단 검여 선생과 동정 선생의 작품만 인천이 놓친 게 아니다. 인천시는 최근 국보급 문화재도 알아보지 못하다가 방치 해 개인 미술관에 팔리는 황망한 일이 있었고, 근현대 음악사를 알아볼수 있는 수천 장의 악보집 또한 거처를 마련하지 못해 서울의 한 레코드사로 빼앗겼다. 통탄할 일이다”고 지적했다.

한편, 시는 시의 미숙한 행정으로 검여 선생의 작품을 인천에서 지키지 못한 데 대해 뒤늦게 통탄하며 24일 긴급 대책회의를 여는 등 대책마련에 나섰다. 그러나 작품이 이미 서울로 가버린 상태에서 전형적인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 이외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

시 관계자는 “시민들에게 할 말이 없고 죄송할 따름이다”며 “시립미술관이 2021년 개장 예정이라 재발 방지와 인천 출신 예술가들의 작품 보호를 위해 임시 수장고를 만드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향후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게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