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우범의 사라진 도시를 찾아서 <43>
야즈드, 조로아스터교의 성지(聖地)

신성(神聖)의 도시 야즈드의 풍경.

길은 이글거리는 사막 한가운데를 뚫고 끝도 없이 뻗어있다. 이란 남북을 가로지르는 이 길은 1970년대 한국의 기술로 건설된 것이라고 한다. 아직도 반듯한 도로를 달리면서 한국의 토목공사 기술이 오래 전부터 세계적 수준이었음을 느낀다.

물이 귀하고 바람이 거센 사막지대는 온통 메마름뿐이다. 마른 먼지의 뿌연 하늘이 그렇고 모래 날리는 까칠한 도로가 그러하다. 바다를 연모(戀慕)한 산맥은 타는 갈증을 못 이겨 자신의 몸뚱이조차 끊어버리고 내달린다. 눈앞에 펼쳐진 자연풍광이 중동의 혼미한 현재를 알려주는 듯하다. 검문소마다 기관단총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이러한 상념을 더욱 짙게 한다.

검문소에 자동차가 멈췄다. 순간 긴장했지만, 검문은 의외로 쉽게 끝났다. 운전기사와 몇 마디 주고받을 뿐, 별다른 검문은 하지 않는다. 이란 사회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긴장돼있지는 않아 보인다. 사진 찍는 것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으며, 차도르를 입은 여성을 근접 촬영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제외하면, 여느 나라처럼 자유롭다. 또, 사람들이 친절하다. 길에서 마주치면 오른 손을 가슴에 얹고 양보한다.

야즈드를 대표하는 자니아 사원.

조로아스터교의 성지, 야즈드

더위에 지칠 때쯤 야즈드에 도착했다. 야즈드는 고대 페르시아어로 ‘신’이란 뜻이다. 고원지대 언저리에 위치한 사막 도시이자 신성(神聖)의 땅. 야즈드는 사산제국 시기 국교였던 조로아스터교의 성지(聖地)다.

시내 모습이 중세시대를 옮겨놓은 것 같다. 건물들이 좁은 골목길에 오밀조밀하게 자리 잡았다. 미로와도 같은 8세기의 골목길을 지나가니 조그만 광장이 나온다. 광장 그늘에 앉아 휴식을 취한다. 높다란 첨탑 사이로 낮달이 떴다. 인적 드믄 골목엔 느린 바람이 하품하며 지나간다. 코발트빛 하늘 끝자락에 내려앉은 석양은 토담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이름 모를 새 두 마리는 그림자를 쪼아댄다. 멀리서 이맘의 낭랑한 기도소리가 들려오고 차도르 입은 두 여인이 길을 걸어간다. 광장 안 시공(時空)은 8세기에 멈춰있다.

조로아스터교 조장(鳥葬)이 행해진 침묵의 탑.
시신의 뼈를 담아 보관했던 오스아리.

조로아스터교의 조장(鳥葬) 터

시 외곽에는 나지막한 언덕 두 개가 있다. ‘침묵의 탑’이라 부르는 조로아스터교 신도들의 장지(葬地)이다. 조로아스터교는 조장(鳥葬)을 행했는데, 남자와 여자의 시신을 따로 구분해 장례를 치렀다. 조로아스터교는 ‘영혼은 영원하지만 시신은 불결하다’고 여겼다. 새가 인간의 영혼을 하늘로 인도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시신을 새의 먹이로 줬다.

남녀의 시신을 올려놓았던 봉우리 두 개가 눈앞에 펼쳐진다. 봉우리 높이가 하나는 높이 70m, 다른 하나는 50m다. 그 봉우리 위에는 원형으로 담을 쌓은 조장 터가 있다. 담 가운데에는 ‘소그이’라 불리는 돌 구덩이가 있는데, 그 안에 시신을 놓아뒀다. 시신 처리는 독수리들이 맡았는데, 오른 쪽 눈을 먼저 파 먹혀야 천당으로 간다고 믿어서 시신을 그에 맞춰 눕혀 놓기도 했다. 독수리의 먹이가 되고 남은 뼈를 오스아리(Osuary)라 불리는 작은 흙 상자에 담아 영묘(靈廟)에 보관했다. 조장은 1970년대 초까지 계속됐다. 법으로 금지됐고 이제는 매장(埋葬)만 허용된다.

첩첩산맥이 울타리를 쳐주고 바람조차 고요한 침묵의 땅. 왠지 모를 음산함과 적막감이 무겁게 다가온다. 얼마나 많은 조로아스터 인들이 이곳에 놓였을까. 썩어서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깃털처럼 가볍게 날아올라 신에게로 갔을까.

우리 민족은 오래도록 화려한 장례문화를 당연시해왔다. 유교적 믿음이 나은 결과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죽어서까지 부와 권력을 자랑하고 싶었던 것일까. 어느덧 어둠이 내린 침묵의 탑 위엔 반달이 선명하다. 이곳에서는 모든 이를 평등하게 내리비추는 달빛이 곧 신이요, 천당이리라.

성스런 불을 모신 아테슈카데 신전.
조로아스터교 신도들이 신전 안 불씨를 보며 기도하는 모습.

성스런 불을 모신 아테슈카데 신전

조로아스터교는 불을 숭배한다. 불은 선을 상징하는 빛이자 신성 그 자체다. 또한, 어둠을 가두어 세상의 가장 높은 곳에 악이 미치지 못하게 한다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 조로아스터교는 6세기 이래 중국으로 전파됐다. 중국인들은 불을 숭배하는 것을 보고는 ‘배화교(拜火敎)’라고 했다.

‘불의 집’이라는 뜻의 아테슈카데 신전은 조로아스터교가 신성시하는 불이 보존돼있는 가장 중요한 불신전이다. 470년부터 타오르고 있는 불씨가 오늘까지 꺼지지 않고 있으니, 그 기간만도 자그마치 1549년이다. 불꽃은 지금도 강렬하다.

이 성스러운 불씨를 보기 위해 매해 전 세계 조로아스터교 신도들이 이곳을 찾는다. 신성한 불꽃은 투명한 유리관 너머 놋쇠 그릇 안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다. 조로아스터교 신도들이 유리관 앞에서 불꽃을 보며 경전을 암송한다. 그들의 바람과 기도가 천 년 넘게 타오르는 불꽃이 됐으리라.

인간은 오랫동안 길을 만들고 도시를 건설했다. 그리고 문명을 창조했다. 인간이 창조한 문명은 인간을 하늘과 더욱 가깝게 만들어줬다. 하늘에 오르는 방법도 알려줬다. 그뿐만 아니라 하늘마저 뚫게 해줬다. 그럼에도 인간은 하늘에 오르는 일만 되풀이한다. 신이 되고픈 욕망의 끝없음이 오늘도 이어진다. 하지만 그 욕망의 정점이 곧 죽음임을, 그래서 그 어떤 욕망의 찌꺼기도 버려야만 하늘에 오를 수 있음을, 유리관 너머의 불꽃은 간절하고도 뜨겁게 말하고 있는 것인가.

※ 허우범은 실크로드와 중앙아시아 곳곳에 있는 역사 유적지를 찾아가 역사적 사실을 추적,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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