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투데이 심혜진 시민기자]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아르바이트 할 곳을 구했다. 지역정보지 구인구직란에서 곧 입학할 학교 앞에 있는 햄버거 가게에서 알바생을 구한다는 글을 읽고 찾아갔다. 테이블 열 개 남짓한 작은 매장에서 부부 사장 둘이서 일하고 있었다. 그들은 내게 몇 마디 말을 시켜보더니 ‘당장 오늘부터 일해보라’ 했다. 기쁜 마음에 시급이 얼마인지도 묻지 않고 곧바로 앞치마를 두르고 매장 안쪽 조리대 앞에 섰다.

그때까지 돈을 벌어보기는커녕 행주 한 번, 칼자루 한 번 쥐어본 일이 없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실습 기간이 있을 줄 알았는데 웬걸. 첫날부터 햄버거 만드는 법과 가격, 재료 손질법 등, 모든 일을 한꺼번에 배워야했다.

햄버거마다 들어가는 고기 패티와 소스, 채소가 달랐다. 샌드위치, 피자, 여덟 가지의 아이스크림, 통감자, 치킨, 밀크쉐이크, 탄산음료와 코코아…. 이 작은 가게에서 이렇게나 많은 종류의 음식을 판다는 게 놀라웠다. 어디에 무엇이 있고, 무엇을 어떻게 세팅해 나가야 하는지, 하나하나 기억해야했다. 가장 어려운 일은 주문을 받고 계산하는 일이었다. 계산 단말기에는 버튼마다 메뉴 이름이 작은 글자로 적혀 있었는데 그 위치가 쉽사리 외워지지 않았다.

일은 조금씩 익숙해졌다. 어느 날엔 한꺼번에 들이닥친 스무 명 정도의 손님을 나 혼자 상대한 적도 있다. 온갖 일을 겪는 사이 손이 제법 빠르고 손님 응대를 잘하는 알바생이 됐다.

3월이 되자 사장은 사람을 몇 명 더 고용했다. 알바생 네 명이 날마다 교대로 일을 했다. 일도 몸에 익고 동료도 생겼으니 두려울 게 없었다.

어느 주말, 남자 사장에게 전화가 왔다. “혹시 어제 3만 원 못 봤니? 3만 원이 비는데 혹시 가스 배달 시켰나 해서.” “아뇨, 아무 일 없었는데요.” 나는 무심코 말했다.

잠시 후 여자 사장이 가게에 왔다. 내 옆에서 재료를 손질하는가 싶더니 슬쩍 “사장님한테 전화 안 왔니?” 한다. 나는 그대로전했다. “아, 그랬구나.” 여자 사장이 내 얼굴을 흘낏 살폈다.

주말이라 아홉 시간 동안 서서 일하느라 몸이 녹초가 됐다. 집에 가서 엄마가 밥을 차릴 때까지 잠시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한소프라노가 이제 막 무대에 선 참이었다. 잠시 노래를 듣고 있자니 마음이 차분해지고 긴장도 풀렸다. 그런데 난데없이 눈물이 흘렀다. 그제야 알았다. ‘아, 두 사장이 나를 의심하고 있구나.’ 시급으로 고작 1000원을 받으며 열심히 일한 대가가 이거라니. 맥이 풀렸다. 뭔가 착오가 있었을 거라고, 난 잘못한 게 없으니 그냥 평소처럼 일하면 된다고생각했다.

며칠 후 학교에서 첫 엠티를 갔고 이런저런 일이 겹쳐 일주일 만에 가게에 나가니, 나와 짝을 이뤄 일하던 알바생 대신 여자 사장이 나와 있었다. “걔는 오늘 못 와요?” “아…그게…” 사장이 해준 이야기는 이랬다. 내가 안 나온 사이 사장이 즐겨 듣던 노래 테이프가 없어졌다. 그걸 찾느라 이곳저곳을 뒤졌는데 그것만 없어진 게 아니었다. 분위기가 흉흉해진 직후, 그 알바생은 일을 그만 둔다고 했다.

“처음부터 걔 이상했어. 너 몰랐어? 그때 3만 원도 걔가 가져갔나 봐.” 오해가 풀렸다는 생각에 후련했지만, 그 알바생이 돈과 물건을 훔쳤다는 게 믿기지 않기도 했다. 얼마후 가게 바로 옆에 유명한 패스트푸드 체인점이 들어섰다. 그 햄버거 가게는 문을 닫았고 나도 새로운 알바를 구했다.

내게 눈물을 흘리게 한 그 노래는 영화 ‘파리넬리’ 삽입곡 ‘울게 하소서’였다. 그 노래를 듣지 않았다면 그날 밤 억울함에 울었을지도 모른다. 알바생의 초라함을 처음 느낀 날, 노래로 위로받을 수 있다는 걸 처음 실감한, 내 인생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한 장면이다.

※심혜진은 2년 전부터 글쓰기만으로 돈을 벌겠다는 결심을 하고 열심히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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