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우범 시민기자의 ‘사라진 도시를 찾아서’ (42)
이스파한, 세계의 절반 이맘광장

[인천투데이 허우범 시민기자]

2500년의 역사를 지닌 도시 이스파한으로 향한다. 이스파한은 16세기 압바스 왕조 시대에는 ‘세계의 절반’으로 불렸다. 왕조의 새로운 수도로서 최고의 황금기를 열었다.

광장은 이른 아침이어선지 기온이 적당하고 공기도 신선하다. 이 광장은 원래 ‘샤(왕)광장’이었다. 하지만 1979년 이란 혁명 후부터 왕의 광장이라 부르지 않는다. 이슬람 교단의 지도자를 의미하는 ‘이맘광장’으로 바뀌었다. 시대와 국가의 정체성에 따라 이름도 바뀐다.

16세기 때 ‘세계의 절반’으로 불린 이스파한의 이맘광장.
조선시대 군사훈련교본인 ‘무예도보통지’에 실린 격구.

 예사롭지 않게 보이는 돌기둥 두 개

광장을 에워싼 장방형 건물이 웅장하다. 사방은 각기 다른 건축물이 저마다 고대 페르시아의 향기를 물씬 풍기고 있다. 향기는 건축물에서만 흐르지 않는다. 광장도 그 향기의 주체다. 동서 160m, 남북 510m 길이의 광장 끝에는 예사롭지 않게 보이는 돌기둥 두 개가 나란히 서있다. 바로 폴로(polo) 경기의 골대다.

폴로는 4명을 한 팀으로 해서 두 팀이 각각 말을 타고 스틱으로 볼을 쳐서 상대편 골에 넣는 경기다. 사람과 말이 일체가 돼야만 하는 경기로, 힘과 투지가 넘친다. 폴로는 기원전 600년경부터 페르시아에서 유행했다고 한다. 고대의 승마기술은 전투의 승패를 갈랐다. 폴로는 이러한 전투력을 증진하는 데 좋은 훈련이었다. 페르시안 기사법(騎射法)도 바로 이러한 바탕 위에서 비롯한 것이리라.

조선시대 ‘24반 무예’의 하나였던 격구

이맘광장의 폴로 골대.

 폴로는 이집트와 터키, 중앙아시아와 중국을 거쳐 고구려에까지 전파됐다. 동양에서는 ‘격구(擊毬)’로 불렸는데 말을 타고 하는 경기이기에 귀족 스포츠가 됐다. 격구는 삼국시대 고구려에 전해졌다. 이후 고려시대에 성행했는데 무인정권 시절에는 각종 궁중 행사에서 빠지지 않았다.

조선시대에는 건국의 정당성을 찬양한 ‘용비어천가’ 제44장에 노래와 함께 그 기록이 보인다. 이뿐만 아니라, 무과시험 정식 과목이기도 했다. 조선시대 군사훈련교본인 ‘무예도보통지’에 이십사반(二十四般) 무예의 하나로 격구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조선시대에는 말을 타지 않고 하는 보행격구도 유행했다. 한 팀의 인원이 수십 명에 이르렀다. 임진왜란 이후는 상류층보다는 서민층 놀이로 바뀌었다.

호화로움의 극치, 알리카푸 궁전

티무르 왕조 시대에 건설된 알리카푸 궁전.

 이맘광장을 사방으로 둘러싼 2층 건물들은 폴로 경기를 관람하던 장소였다. 이곳에는 뛰어난 이슬람 건축물들이 잘 보존돼있다. 그중에서도 서쪽에 있는 알리카푸 궁전은 호화로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6층으로 된 이 궁전은 15세기 티무르왕조 시대에 건축됐다. 궁전에는 광장을 내려다볼 수 있는 커다란 누각이 있다. 왕이 이곳에서 주요 행사를 거행하거나 폴로를 관람하고, 때로는 광장의 동향도 살폈으리라.

궁전 내부 계단의 벽면에는 천국(天國)을 묘사한 벽화가 있다. 계단을 오르는 자체가 천국으로 향하는 것이었으니, 지상에서 누릴 영화(榮華)는 더 이상 없던 왕의 욕심이 끝이 없었음을 보여준다. 천국의 벽화를 지나 호화로운 거실을 거쳐 맨 위층에는 아름다운 도자기들을 진열해놓은 방이 있다. 그야말로 장식을 위한 방이다. 도자기를 진열한 공간을 ‘니치’라고 하는데, 그모양이 예술적이다.

체헬쏘툰 궁전과 이맘모스크

알리카푸 궁전에 있는 도자기 진열 방 ‘니치’

 알리 카푸 궁 뒤편에는 ‘40개의 기둥’이란 뜻의 체헬쏘툰 궁전이 있다. 그런데 궁전의 기둥은 20개다. 어째서 40개라고 했을까. 궁전 입구에 있는 연못에 비친 것을 포함해서란다. 페르시아 인들의 예술적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왕의 정원이었던 이곳은 외국 사신을 맞이하는 연회장으로 활용됐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개장됐는데, 사파비 왕조 당시의 왕실 풍경과 전쟁 모습 등을 표현한 벽화가 흥미롭다.

광장 남쪽에는 이란을 대표하는 이슬람 건축 양식의 이맘모스크가 있다. 높이 42m의 쌍 첨탑과 높이 54m에 이르는 코발트 모자이크 돔이 햇빛을 받아 눈부시다. 모스크 입구의 건물높이도 27m나 된다. 모스크 전체를 둘러싼 형형색색의 타일은 햇살이 비추는 각도에 따라 건물의 느낌을 수시로 달라보이게 한다. 뛰어난 예술적 성취를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이 모스크를 건설하는 데 26년이 걸렸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이스파한

화려한 예술적 성취를 볼 수 있는 이맘모스크.

 오늘의 이스파한을 만든 때는 사파비 왕조 5대 황제인 아바스 1세 시절이다. 아바스 1세는 42년간 황제의 자리에 있으면서 영토를 넓혔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를 건설하라’는 그의 명령처럼 이스파한을 세계적인 도시로 만들었다. 티무르가 사마르칸트를 세계 최대의 도시로 만든 것과 같다.

아바스 황제는 16세에 부친을 퇴위시키고 자신이 왕위에 올랐다. 강력한 중앙집권제로 내치(內治)를 다지고 정복전쟁으로 권력을 강화했다. 권력의 정점에 있는 황제는 포로와 노예를 동원한 대규모 토목사업을 일으켰다. ‘대제(大帝)’라는 칭호를 들은 아바스 1세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도 수많은 사람을 동원해 대규모 토목공사를 벌였다. 그 결과 오늘의 이스파한이 탄생했다.

어느 시대나 세계적인 유적이 존재한다. 그 유적의 탄생 이면에는 수많은 피압박 민중의 피땀이 서려있다. 세계문화유산은 바로 이러한 이유로도 지켜지고 잊지말아야하는 것이리라.

※ 허우범은 실크로드와 중앙아시아 곳곳에 있는 역사 유적지를 찾아가 역사적 사실을 추적,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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