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교육혁신, 행복배움학교가 답이다' <1> 인천서흥초등학교

[인천투데이 김강현 기자] 인천형 혁신학교인 ‘행복배움학교’가 출범한 지 5년이 지났다. 현재 행복배움학교는 62개다. 올해부터 시작한 1년차부터 최고참 격인 5년차까지 상황은 제각각이지만, 성공적으로 운영해보겠다는 열정만큼은 모두 같다. <인천투데이>는 인천시교육청과 공동으로 기획해 행복배움학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 현장을 소개한다.

1. 반려돼지 뚱이와 함께, 인천서흥초등학교

반려돼지 ‘뚱이’

동구 송림2동에 있는 서흥초등학교 학생들에게는 특별한 친구가 있다. 베트남 산 미니돼지 ‘뚱이’가 그 주인공이다.

기자가 학교를 찾은 4월 30일, 교무실 교감선생님 자리 옆에서 뚱이가 낮잠을 자고 있다. 교무실에 있는 선생님들이 “우리 아기가 자고 있으니 조금만 조용히 해주세요”라고 부탁한다. 가까이 가보니 중ㆍ대형 견 정도의 몸집에 얼룩무늬다. ‘고로롱’ 소리를 내며 잠자고 있다. 교무실에 들어온 학생들과 업무 중인 교직원들은 그 광경이 익숙하다는 듯 슬쩍 한번 쳐다보고 각자 할 일을 한다. 뚱이 역시 서흥초교의 가족이라는 것을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

교무실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뚱이.

지난해 6학년 1반에서 “얘들아 돼지 한번 키워볼래?”라는 담임선생님의 제안으로 ‘뚱이 키우기’는 시작됐다. 학생들은 동물을 싫어하거나 무서워하는 친구들이 있는지 파악한 뒤 학급회의를 거쳐 뚱이를 키우기로 결정했다. 그 이후에는 발표 자료를 만들어 다른 선생님들과 학생들을 설득했고, 교무회의에 참석해 교장선생님을 설득했다.

또, 돼지를 데려오기 전에 어디에서 키울 것인지, 먹이주기와 목욕시키기는 어떻게 할 것인지, 주말과 방학 때는 어떻게 돌볼 것인지 등을 결정하고 졸업 후에도 후배들이 돼지를 잘 보살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계획까지 세웠다. 그리고 선생님과 부천까지 가서 뚱이를 데려왔다.

뚱이가 학교에 오자 많은 것이 변했다. 학생들은 뚱이를 보기 위해 일부러 학교에 빨리 오고 수업이 끝난 후에도 학교에 남았다. 주말이나 방학 기간 등 학교에 오지 않는 날인데도 학교에 나와 뚱이와 시간을 보냈다.

뚱이 집을 직접 만드는 학생들.(사진제공ㆍ서흥초등학교)

6학년 1반 담임을 맡았던 심준희 교사는 뚱이가 오고 가장 달라진 점 중 하나로 “아이들이 학교에 오고 싶어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뚱이를 키우며 자연스럽게 교육도 이뤄졌다. 뚱이의 집을 만들며 실과를 배웠으며, ‘뚱이 그리기 대회’를 하며 미술을 공부했다. ‘뚱이 시 쓰기 대회’도 했다.

물론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뚱이가 아무데서나 똥을 싸기도 했고, 뚱이를 무서워하거나 싫어하는 학생도 있으며, 가끔 뚱이를 괴롭히는 학생도 있다.

하지만 학생들은 이러한 문제들을 스스로 해결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책임감과 배려, 생명을 존중하는 법을 자연스럽게 배웠고 문제가 생겼을 때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도 키웠다.

지난해 뚱이를 데려온 6학년 1반 학생들은 졸업해 이제 학교에 없지만, 동아리 ‘뚱아리’ 회원들이 뚱이를 돌보고 뚱이의 성장을 공부하고 있다. 현재 뚱아리에는 5학년을 중심으로 12명이 함께하고 있는데, 이들은 뚱이를 위해 매주 회의를 하는 등, 뚱이를 열심히 돌보고 있다.

뚱이와 함께 산책하는 학생.(사진제공ㆍ서흥초등학교)

과목이 아니라 주제를 배운다

‘뚱이’로 대표되는 서흥초교의 혁신교육은 이뿐만이 아니다. 행복배움학교 5년차인 만큼 많은 경험으로 혁신교육을 이어가고 있다.

서흥초교의 혁신교육은 교육과정에서부터 드러난다. “과목이 아니라 주제를 배운다”는 심 교사의 말대로 2018년 한 해 동안 학생들은 과목이 아니라 주제 수업을 했다.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그와 연계한 국어, 미술, 실과 과목 등을 배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6학년 1학기 첫 주제인 ‘만남과 소통’에서는 감정과 관련한 어휘를 공부하며 국어를, 자신의 느낌과 기억을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하며 미술을, 창작 무용의 의미와 특성을 공부하며 체육을 익혔다. ‘공존과 연대’라는 주제에서는 노동인권교육을 공부하며 국민의 권리와 의무 등을 배웠으며, ‘쉼표와 느낌표’라는 주제에서는 비우기, 나누기, 채우기를 배웠다.

2018년 수학여행 중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수요 집회’에 참석한 학생들.(사진제공ㆍ서흥초등학교)
수학여행에서 이한열 기념관을 방문한 학생들 (사진제공ㆍ서흥초등학교)

수학여행을 ‘진짜 여행’으로

‘자율과 책임’이라는 주제를 공부하면서 ‘여행’이라는 소주제를 공부한 학생들은 수학여행을 직접 계획하기도 했다. 버스와 숙소만 기억나는, 짜인 틀 안에서 행해지는 수학여행이 아닌 참된 여행을 하자는 것이 수학여행을 학생들이 직접 계획하는 이유 중 하나다.

학생들은 회의를 거쳐 학년 전체가 갈 지역을 결정하고 학급별로 그 지역 안에서 체험할 곳을 정했다. 지난해에는 서울을 수학여행 지역으로 정하고 학급별로 명동과 청계천, 이한열 기념관, 전쟁과 여성 평화인권박물관 등 갈 곳을 계획했다.

결정한 장소까지 무엇을 타고 어떻게 갈 것인지, 어떤 식당에서 어떤 것을 먹을지,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어디에 가서 무엇을 보고 배울지, 숙소는 어디로 할지 등을 스스로 찾아보고 결정했다. 선생님들은 숙소 계약 등 최소한의 도움만 줬다.

즐거운 학교

서흥초교의 배움을 이런 식이다. 교사는 교육전문가로서 학생들에게 방향을 제시하며 학생들이 살아가면서 필요할 핵심을 알려준다. 학생들은 과목 위주의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 문제 해결 능력과 공동체 의식 등, 기본적이면서 중요한 것들을 배운다.

일각에서는 ‘다양한 활동을 하다 보니 기본적인 교과 교육에 소홀한 것 아닌가?’ 하는 우려를 하지만, 서흥초교의 교육과정은 언뜻 보기에도 일반 학교보다 공부하는 양이 더 많았다. 학생들은 일반 학교 학생들보다 더 많이 공부하고, 교직원들 역시 더 많은 일을 한다.

그럼에도 서흥초교가 5년간 혁신교육을 이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이 모든 것을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하는 것이다. 학생들이 학교에 오는 것을 즐거워한다. ‘아이들이 가고 싶어 하는, 즐거운 학교’가 바로 서흥초교다.

이러한 긍정적 영향을 교사들도 받는다. 심 교사는 “여러 교육을 하면서 ‘선생이 선생답다’는 생각을 한다. 학생과 교사가 함께 성장하면서 교육공동체가 성장하는 것을 느낀다. 하나하나 쉬운 일이 없었지만 계속 하다보면 그것들이 안착하며 당연하게 여겨진다”며 “학생들이 무엇을 공부할지 스스로 찾고,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 있는 학교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뚱이의 집>

 뚱이의 첫 번째 집. (사진제공ㆍ서흥초등학교)

뚱이는 서흥초교에서 이사를 두 번 했다. 처음 왔을 때는 6학년 1반 교실 한 쪽에 신문지와 담요를 깔고 울타리를 만들어줬다.

하지만 뚱이가 자라면서 몸집이 커지고 배변 등의 문제가 발생해 지난해 6월 8일 이사 했다. 학생들은 선생님과 함께 중간놀이시간과 점심시간 등을 이용해 사포질, 방수페인트 칠과 색칠까지 해서 새 집을 만들어줬다.

장난감이 설치돼있는 뚱이의 현재 집.

새 집에서 잘 지내던 뚱이는 지난겨울 또 한 번 이사 했다. 학생들은 학교건물 뒤에서 햇빛이 잘 들어오는 장소를 찾아 비바람을 막아줄 천막을 설치하고 바닥에는 왕겨와 건초를 깔았다. 지금 뚱이의 집에는 혼자서 놀 수 있게 타이어와 페트병 등을 이용한 놀이기구도 설치돼있다.

뚱이가 집에서만 생활하는 것은 아니다. 교무실에서 잠을 자고 있던 것처럼, 학교를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처음 와서 두 달간 지냈던 6학년 1반 교실에 불쑥 찾아와 학생들에게 감동을 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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