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인천에서 자유공원의 의미
[세상읽기] 인천에서 자유공원의 의미
  • 인천투데이
  • 승인 2019.05.07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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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인희 인천문화재단 인천역사문화센터 연구원

[인천투데이] 4월 셋째 주쯤이었다. 자유공원 벚꽃이 만개해 평일임에도 꽃구경하는 사람이 많았다. 자유공원 가까이서 일하는 나도 점심을 일찍 먹고 자유공원 벚꽃놀이에 동참하는 게 하루 일과 중 하나였다. 자유공원에는 벤치에 앉아 세월을 보내는 어르신부터, 아기를 데리고 꽃놀이 나온 가족, 젊은 연인, 점심시간을 이용해 산책하는 직장인까지, 많은 사람이 있었다. 많은 시민의 쉼터가 되고 있는 자유공원이 만들어진 지 올해로 131년 됐다. 1888년에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이름이 각국공원이었다.

조선인을 위한 공원이 아닌, 각국 조계지에 있는 외국인을 위한 휴식 공간이었다. 조계지는 외국인의 거주와 통상을 위해 일정한 토지를 영구 임차해 자치 관리하는 치외법권적 지역이었다. 각국공원이 만들어졌을 당시 이곳에서 자유롭게 풍경을 즐기는 조선인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자유공원은 처음에 각국공원 또는 만국공원이었다가 일제강점기에는 서공원이었다. 해방 후 다시 만국공원으로 불렸고, 1957년 맥아더 장군 동상이 세워진 이후 지금까지 자유공원으로 불리고 있다. 불리는 이름에 따라 공원의 성격 또한 달리 규정될 것이다. 그래서 자유공원에 대한 담론은 명칭에 대한 재검토부터 시작해야할 것이다.

자유공원은 일제강점기인 1919년 3ㆍ1운동 이후 한성정부를 수립하는 데 기반이 된 13도 대표자대회가 열린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13도 대표자대회를 왜 인천의 만국공원에서 개최했는지 명확하게 답해줄 논문도, 연구자도 없다. 다만 한성정부를 주도한 만오 홍진 선생의 선영이 있는 곳이 인천이며, 당시 인천에 각국 대사관이 모여 있어 서울의 삼엄한 경비를 어느 정도 피할 수 있는 곳이라는 추측만 해볼 뿐이다. 인천에 있는 최초ㆍ최고를 발굴해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에 대한 연구도 좀 더 진행되길 바란다.

인천문화재단 인천역사문화센터는 지난달 ‘작은 인천 역사 세미나’를 개최했다. 신성희 고려대 미래국토연구소 연구위원은 ‘도시 과거의 선별과 경관 관리’라는 주제를 발표했다.

사실 이 발표는 어떠한 목적성을 가진 게 아니라 자유공원의 의미와 성격, 자유공원을 둘러싼 갈등에서 중요한 점을 잘 집어냈다. 토론한 박진한 인천대 교수와 이영민 이화여대 교수도 자유공원이 문화인류학ㆍ역사학ㆍ지리학적 관점에서 누구를 위한 공원이 돼야할 것인지와 기억할 만한 과거는 지금을 살고 있는 사람들과 관계에서 지금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의 한 부분으로 봐야함을 이야기했다.

사실 자유공원 일대의 제물포는 인천부에서 (당시 인천 중심가) 좀 떨어진 한가로운 포구였다. 한가로운 어촌마을과 존스턴 별장ㆍ세창양행 사택이 있던 개항기, 13도 대표자대회를 열었던 일제강점기, 한미수교탑과 맥아더 장군 동상을 건립한 한국전쟁 이후의 모든 기억이 모여 지금의 자유공원이 됐다고 생각한다.

130여 년 전 외국인을 위한 휴식공간이든, 지금 인천시민을 위한 휴식공간이든 자유공원이 우리에게 그 곁을 내준 시간만큼 인천시민에게 자유공원이 갖는 의미는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생각하는 자유공원은 각자에게 어떤 의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