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투데이 심혜진 시민기자] 올해도 상추를 심었다. 베란다 바깥쪽으로 걸어둔 화분걸이가 우리 집 작은 텃밭이다. 작년엔 카페에서 얻은 종이컵에 상추 모종을 하나씩 심었는데 흙의 양이 적어서인지 잎이 크게 자라지 않았다. 그래도 꽤 여러번 상추를 따먹으며 수확의 재미를 맛봤다.

이번엔 통 크게 화분에 심어보기로 했다. 베란다에 쌓아둔 빈 화분 중에서 옆으로 길쭉한 직사각형 모양의 화분이 상추 모종을 심기에 적당했다. 하루 이틀 간격으로 겉흙이 마르지 않게 물을 주고 하루 종일 햇빛을 받게 해두었다. 얇고 여리던 잎이 20일쯤 지나니 밥을 싸 먹을 수 있을 만큼 쑥 자랐다. 맛이 어찌나 좋은 지, 혼자 감탄하며 넓은 접시에 수북하게 담은 상추를 싹 먹어치웠다. 건강이 뱃속에서 쑤욱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잎이 넓게 자란 걸 보니 화분에 심길 잘했다. 흙 양이 많아 뿌리도 잘 뻗은 것 같다. 단지 화분이 커져 흙 양만 많아진 게 아니다. 이번에 모종을 심을 때 1년 동안 손수 만든 퇴비를 섞었으니까.

작년 상추를 거두고 남은 흙을 통 하나에 쏟아 모아 놓았었다. 상추에 모든 영양을 탈탈 털어준 흙은 푸석푸석하니 뭘 심어도 제대로 자라지 않을 것 같았다. 흙에 짠한 맘이 들었다. 어렸을 때 마당 한쪽에 있던 퇴비장이 생각났다. 엄마는 채소를 다듬고 남은 쓰레기를 꼭 퇴비장에 쏟아버렸다. 그리고 그 속에 있는 검은 흙을 이듬해 봄, 마당의 텃밭에 뿌려 파나 배추를 길렀다.

퇴비장에서는 특별히 나쁜 냄새가 나지 않았다. 그 기억을 떠올려, 나도 오이나 감자껍질 등을 잘게 썰어 흙 속에 파묻어보았다. 물도 흠뻑 뿌렸다. 언젠가 포도 껍질을 버렸을 때 초파리가 생기기도 했지만, 그밖에 흙에서 특별한 냄새가 나거나 곰팡이가 피지는 않았다.

한 무더기 채소껍질을 쏟아놓아도 며칠 지나지 않아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게 신기했다. 틈틈이 채소를 넣고 물을 뿌리고 흙을 뒤섞었다. 옅은 갈색에 바싹 말랐던 흙은 어느새 시커멓고 질척하게 바뀌었다.

흙이 검게 변한 이유는 미생물 때문이다. 채소의 탄수화물과 지방, 단백질 등의 유기물을 미생물이 분해하고 나면 암갈색이나 흑색의 부산물이 생기는데 이것이 토양을 비옥하게 만든다.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에서 만든 자료집을 보면, 보통의 흙은 점토와 모래, 소량의 유기물이 섞여있는데, 점토 비율이 높은 토양은 말랐을 때 너무 단단하게 굳어 물과 공기가 잘 흐르지 못하고 식물이 뿌리를 뻗기 어렵다. 반대로 모래 비율이 높으면 물과 영양분이 다 빠져 뿌리가 이를 제대로 흡수할 수 없다.

그런데 퇴비는 이들 사이에 섞여 공간을 만들어 흙이 물과 공기를 머금게 하고, 수분을 흡수해 흙을 부드럽게 한다. 퇴비와 함께 섞여 들어간 미생물은 식물이 자라는 데 필요한 거의 모든 영양소를 만들어낼 뿐만 아니라, 좋은 퇴비로 자란 식물은 병해충에도 강하다. 퇴비의 검은 빛은 햇볕 흡수량을 높여 지온이 올라 작물이 더 잘 자라게 돕는다.

물론 나는 이런 퇴비의 위대함까지는 알지 못했다. 푸석한 흙이 안쓰러웠을 뿐이다. 음식물 쓰레기로 버려 질 뻔한 것들이 흙에 섞여 들어가 맛있는 상추로 돌아왔으니 남는 장사가 아닐 수 없다. 뜻밖의 깨달음도 얻었다. 모든 것은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 그 평범하고 당연한 진리를 직접 눈으로 지켜보고 손으로 느껴보는 건, 머리로 알던 것과는 또 다른 울림을 주었다. 그렇게 자연히 흙으로 돌아가 또 다른 생명을 키워낼 수 있다면, 삶도, 죽음도 그리 허무할 것 같지 않다.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심혜진 시민기자는 2년 전부터 글쓰기만으로 돈을 벌겠다는 결심을 하고 열심히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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