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은실 문학평론가

[인천투데이] 4월 11일,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물론 아직 논의돼야할 사항이 많다. 현재까지 임신 중지 허용 시기로 상한선 22주가 설정됐으며, 앞으로 임신부의 자기결정권과 안전을 고려해 최소 시기 등의 사안이 추가적으로 결정될 예정이다.

구체화해야할 내용이 더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 불합치 판결은 기념비적이다. 여성의 신체에 대해, 그 자신이 결정권을 가진다는 것을 공통의 규범이자 약속으로서 제도의 측면에서 보증하게 됐기 때문이다.

개인이 자신의 육체에 대한 결정권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행사할 수 있다는 사실은 상식적인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그 ‘상식’이 제도적으로 공식화돼 받아들여지는 데 66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는 그동안 국가나 어떤 이데올로기에 의해 개인의 육체에 대한 권리가 통제돼왔음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떤 이데올로기가 ‘낙태죄’를 뒷받침하고 있었는가. 헌법 불합치 결정 이전의 ‘낙태죄’는 모종의 집단적 담론화에 의해 ‘낙태는 부정(不淨)한 것’으로 의미화 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그동안 ‘낙태’는 국가가 허용하지 않음, 즉 불법이라는 강력한 규제 근거를 지니면서 태아의 생명을 해한다는 측면이 강조되며 비판받았다. 낙태를 하는 것은 일종의 ‘비이성적’인 판단에 의한 행위로 죄악시돼온 셈이다.

이는 낙태를 ‘병적인 상태’로 여기는 것과 관련된다. 이때 병적인 상태란 수전 손택이 경계하고자 했던 ‘은유로서 질병’ 차원의 상태를 의미한다.

‘낙태한 여성=질병적 존재’가 가능하다면 낙태 행위가 곧 육체의 오염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더럽혀졌다는 것에 대한 비판은 낙태행위와 그 주체를 오염된 자로 상정하며 ‘정상 시민 이데올로기’에서 탈락돼야할 존재로 규정하고자 한다.

이 사회에 오직 ‘고결한 시민’만이 의미 있다는 담론은 실제로 균등하게 적용되지 않을뿐더러(한국이 성매매 합법 국가가 아님에도 성산업은 꾸준히 유지돼왔다는 사실을 떠올려보자. 그에 대한 처벌은 과연 온당하게 이뤄졌는가?), 허구에 가까우며 실제로 한 성별을 억압하는 도구로 활용될 뿐이다.

낙태를 질병적 상태로 규정하고 그 행위 주체에 대한 혐오 정서를 내포하는 이러한 담론은 여성 억압과 맥을 같이 한다. 예컨대 ‘모성신화’를 보자.

모성 신화란 생물학적 여성이 ‘어머니-됨’의 성질을 선천적으로 지니며, 아이를 가짐으로써 그 본래적 성질을 실현해야함을 골자로 한다. 모성 담론에서 문제적인 것은 여성이 신화화됨으로써 고결하고 신성한 존재로 ‘더렵혀지지 않아야함’을 담지한다는 점이다. 낙태 금기는 모성 신화와 결합함으로써 ‘성스러운 한 아이의 어머니로서 자격’을 강화한다. ‘훼손 없는 몸’이라는 은유는 모성과 결탁된 ‘낙태죄’가 만들어낸 하나의 이미지인 셈이다.

이러한 담론이 ‘낙태죄’를 둘러싸고 있었다면 헌재의 낙태죄 헌법 불합치 결정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은유로서 여성의 몸/존재를 판단하지 않고 권리를 지닌 인간 주체로서 여성을 바라보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 결정으로 사회가 진일보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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