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나이가 들었다고 성숙한 건 아니지!
[영화읽기] 나이가 들었다고 성숙한 건 아니지!
  • 이영주 시민기자
  • 승인 2019.04.22 10: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영주 시민기자의 영화읽기 - 미성년(Another Child)
김윤석 감독│2019년 개봉

[인천투데이 이영주 시민기자] 열일곱 고등학생 주리(김혜준)는 아빠 대원(김윤석)이 바람피우고 있다는 걸 안다. 아빠의 외도를 엄마 영주(염정아)가 모르게 끝내게 하고 싶은 주리는 아빠가 연인 미희(김소진)와 만나는 곳까지 찾아가지만, 그곳에서 알게 된 건 미희의 딸이 자신과 같은 학교에 다니는 동갑내기 윤아(박세진)라는 것. 윤아 역시 엄마가 아내와 딸이 있는 대원과 연애하고 있고 게다가 임신까지 했다는 걸 알고 엄마에게 아이를 지우라고 말하지만 미희는 엄마의 인생이 있는 거라며 막무가내다.

서로 존재를 알게 된 후 학교에서 마주친 주리와 윤아. 주리는 “네 엄마 때문에 엉망이 됐다”고 따지고, 주리 말에 화가 난 윤아는 주리에게 걸려온 영주의 전화에 대고 “우리 엄마가 당신 남편과 바람을 피워서 임신까지 했다”고 폭로한다. 주리의 바람과 달리, 이제 대원과 미희의 불륜을 모두 알게 됐다.

이 모든 일이 영화 시작 10분 만에 일어났다. 배우 김윤석의 첫 연출 데뷔작 ‘미성년’은 각자 배우자와 자식이 있는 중년 남녀의 불륜이 첫 장면부터 나오지만, 정작 불륜에는 관심이 없다. 불륜이라는 자극적 사건보다는 위기에 대처하는 주리와 윤아, 영주와 미희의 대응에 주목한다.

맨 처음 아빠의 불륜을 알게 된 주리는 이 일을 없던 일로 무마하고자 한다. 물론 뾰족한 수는 없다. 반면 윤아는 엄마에게 뱃속의 아이를 지우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지르면서도 10대에 자신을 낳고 도박에 빠져 있으나마나한 아빠 대신 홀로 자신을 키워온 미희에 대한 안쓰러움을 가지고 있다. 첫사랑(윤아의 아빠)의 혹독한 대가로 고달픈 삶을 살아온 미희는 가족이 있는 남자라는 걸 알면서도 대원이 자신의 마지막 사랑이길 간절히 바란다. 윤아의 폭로로 남편의 불륜을 알게 된 영주는 평상심을 유지한 채 꼿꼿이 제 자리를 지키려 애쓰지만, 결국 남편의 불륜 상대를 확인하기 위해 미희가 운영하는 식당을 찾아간다.

미희가 조산으로 입원하면서 네 여자의 삶은 또 다시 요동친다. 세상에 너무 일찍 나와 버린 아기는 인큐베이터에서 호흡기로 간신히 생명을 유지하고 있지만, 신생아 중환자실의 아기를 보러가는 이는 엄마인 미희도 아빠인 대원도 아닌 주리와 윤아다. 학교에서 머리끄덩이를 잡고 육탄전까지 벌인 주리와 윤아지만, 인큐베이터 속 작은 생명을 보며 신기함과 더불어 묘한 유대감마저 느낀다.

이렇게 네 여자가 폭풍 같은 시기를 보내느라 안간힘을 쓰는 동안 정작 사건의 핵심인물인 대원은 멀찍이 도망쳐버렸다. 불륜을 들킨 걸 알고는 아내와 딸을 피해 도망 다니고, 병원에서 주리와 윤아를 마주치자마자 줄행랑을 친다. 자신의 아이를 조산하고 병원에 입원해 있는 미희도 돌보지 않고 불같이 화를 내는 아내 영주를 피해 시골마을로 ‘도피여행’까지 떠난다. 우유부단함과 지질함의 극치다.

영화 제목인 ‘미성년’은 주리와 윤아 둘이지만, 영화를 보면 볼수록 주리와 윤아가 어른들보다 훨씬 성숙해 보인다. 부모들이 친 사고를 미성년 소녀들이 어떻게든 해결하려 애쓰는 모양새가 퍽 역설적이다. ‘아직’ 성년이 아니라고 ‘미(未)’가 붙은 미성년이지만, 성년과 미성년이 성숙과 미성숙의 척도는 절대 아니란 걸, 나이가 든다고 절로 성숙해지는 건 아니란 걸, 영화는 보여준다. 지금까지 마초적인 남성캐릭터를 주로 연기해온 남자배우가 연출한 영화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네 여성 캐릭터가 생생하게 살아 있다는 것도 이 영화의 매력. 영화 ‘미성년’은 김윤석 감독이 배우 김윤석을 지질이로 갈아 넣어 펼친 무대 위에서 네 여배우가 날고 기는 캐릭터 열전이라 할 수 있다. 배우가 아닌 감독 김윤석의 퍽 성공적인 연출 데뷔작이라 할 만하다.

※이영주는 인천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이며, 평소 드로잉을 많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