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판매 거리제한 준용해 50m 내 출점 금지
그러나 제한거리 측정 시 직선 아닌 도보 기준

[인천투데이 김현철 기자] 인천 미추홀구에 들어서는 주상복합 오피스텔 단지에 A브랜드 편의점 창업을 준비 중인 안모 씨는 최근 황당한 일을 겪고 있다. 같은 단지 안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B브랜드 편의점이 입점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동구에 있는 C편의점은 D편의점이 근접출점한 뒤로 매출이 30% 하락했다.

인천 미추홀구의 한 오피스텔 단지 상가에 입점을 준비 중인 A편의점에서 B편의점 입주 예정지가 보인다.

‘담배판매 거리제한’ 준용한 ‘편의점 근접출점 제한 자율규약’

이런 부작용을 막고자 공정거래위원회 주도로 편의점 본사들은 ‘근접출점 제한’을 핵심으로 한 자율규약을 지난해 12월 도입했다. 18년 만이다. 근접출점 제한의 거리 기준은 ‘담배판매 거리 제한’을 준용해 대부분의 지역에서 50m(서울은 100m)로 한다. 담배가 편의점 매출의 상당액을 차지하는 만큼, 담배 소매인 지정권이 편의점 창업의 열쇠를 쥐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자율’규약이기에 자율규약을 위반해도 처벌받지 않아,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거리가 50m를 넘지 않아도 담배 소매인 지정권을 취득하는 사례도 빈번하게 벌어진다.

이에 ‘공정거래위가 획일적 거리제한을 둬야한다’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공정거래위는 ‘자율경쟁이 아닌 거리담합이기 때문에 거리를 명시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남동구에 있는 C편의점의 매출은 55m 떨어진 곳에 D편의점이 입점한 후 30% 하락했다. ‘자율규약’이 지켜지는 상황에서도 인근에 다른 편의점이 들어설 경우 매출에 직접적 영향을 받는 셈이다.

장영진 한국편의점네트워크 대표는 “공정거래위가 좀 더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한다”라며 “지금 점주들은 자율경쟁을 넘어 과도한 출혈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인천 미추홀구의 한 오피스텔 단지 상가에 입점을 준비 중인 A편의점과 B편의점 위치 도면.(자료제공 A편의점 점주)

담배판매 거리제한 ‘직선 아닌 도보 기준’···"기준 강화 필요”

제한거리 50m 이내에서 두 명 이상의 사업자가 담배 소매인 지정권을 신청하면 해당 기초지방자치단체는 추첨으로 선정한다. 문제가 되고 있는 미추홀구 단지 상가에서는 A편의점과 B편의점이 추첨에 응했고, A편의점이 선정됐다. 하지만 이틀 후 B편의점은 위치만 약간 변경해 담배 소매인 지정권을 다시 신청했고, 미추홀구는 심사를 거쳐 승인했다.

담배판매 거리제한 기준이 직선이 아닌 도보 기준이기 때문이다. 미추홀구는 A편의점과 B편의점이 직선거리로 약 20m 떨어져 있지만, 도보로 이동할 경우 50m를 약간 넘는다고 유권해석을 내렸다.

안 씨는 이 유권해석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미추홀구는 일반인이 다니는 출입구로 돌아서 가는 거리를 측정했는데, 상가 특성상 입주자 출입구가 기준이 돼야 한다는 게 안 씨의 주장이다. 입주자 출입구가 기준이 되면 50m를 충족하지 못한다.

안 씨는 “이전에 운영하던 매장을 매각해 전 재산을 투자한 편의점 창업을 준비하며 담배 소매인 지정권 하나만 바라보고 있었다”라며 “수년간 편의점을 운영했지만 이런 편법이 있는 줄은 몰랐다”고 하소연했다.

또, “편의점 두 개가 오피스텔 입주민을 대상으로 영업해야한다. 두 개가 개점하면 출혈경쟁이 불을 보듯 빤한 상황에서 미추홀구의 유권해석은 누구를 위한 행정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미추홀구 관계자는 “과정에서 편법이나 불법은 없었으며 법의 기준에 맞게 판단했다”라며 “문제가 있다고 판단할 경우 행정소송 등을 제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호준 한국편의점네트워크 사무총장은 <인천투데이>와 한 통화에서 “문제의 본질은 공정거래위가 나서야한다는 것이다”라고 전제한 뒤 “단체장에게 부여된 담배 소매인 지정권 기준을 강화하면 당장의 효과는 볼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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