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목수의 손은 나무를 닮아간다
[인터뷰] 목수의 손은 나무를 닮아간다
  • 류병희 기자
  • 승인 2019.04.19 14: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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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목재창호 가풍국 명장
“전통 창호 기술도 남지 않을 것 같아 걱정”

[인천투데이 류병희 기자] 4월 초 강원도 동해안 일대 산불로 산림 등이 잿더미가 됐다. 정부는 국가재난사태를 선포하고 산림청을 중심으로 산불 진화에 총력을 기울였다. 산불이 발생한 고성지역을 중심으로 확산되던 불길은 하루 만에 잡혔다. 이 불로 농가와 축사들이 전소되는 등, 많은 사람이 물질적ㆍ정신적 피해를 입었다. 녹음이 우거져야할 때에 산림은 2000ha 가깝게 사라졌다. 여의도 면적의 6배, 축구장 2500여 개가 사라진 셈이다.

지난 16일, 목재창호 분야 대한민국 명장 가풍국(73) 씨의 공방(인천 부평구 십정동)을 찾았다. 가 명장은 강원도 산불에 대해 누구보다도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 많은 나무가 불타 없어져 마음이 무척 무겁다. 가슴이 철렁했다. 복구되려면 수십 년도 어림없을 텐데, 안타깝다.”

가풍국 명장
가풍국 명장.
가 명장이 제작한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우리나무들 100'
가풍국 명장이 제작한 ‘우리가 꼭 알아야할 우리 나무들 100가지’.

나무는 사람에게 고마움 자체

가 명장은 수년간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나무들의 표본을 전시판 형태로 제작해 보급해왔다. 무려 100가지 나무 표본을 수집해 ‘우리가 꼭 알아야할 우리 나무들’이라는 교육용 표본을 만들었다.

그 이유를 가 명장은 “후손에게 전해주고 싶었다. 나무는 사람에게 고마움 자체인데 점점 잊히고 사라져가는 것들도 있다”고 한 뒤 “평생 목수를 했는데, 그 고마움에 보답하고 싶었다. 또, 우리 나무의 소중함과 자연보호정신을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나무 표본 전시판을 제작하기 위해 산림청에 자문하고, 우리나라 산과 들판에 자생하는 나무들을 찾아 헤맸다. 이렇게 수집한 나무 표본들이 공방 창고에 쌓여있다. 필요한 기관이 있으면 전시판으로 제작해 보급할 생각이다.

배움과 도전에는 끝이 없고

가 명장은 1946년 충남 서산에서 8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몽산포와 천수만 근처에서 자랐는데, 부친은 농부였고, 집은 가난했다. 큰형이 건축 사업을 하겠다며 전답을 모두 팔았고, 가세는 기울었다.

어려운 집안 형편 탓에 ‘국민학교(현 초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열네 살 무렵 어느 날 아버지께서 부르시더니 ‘너는 머리도 나쁘지 않은 것 같으니 서당 가서 배움을 이어가라’라고 하셔서 당숙이 운영한 서당에서 한학을 배웠다.”

열아홉 살 무렵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는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방황하기 시작했다. 당시 초등학교 교사인 매형이 그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서울 구경을 시켜줬는데, 그 이후 서울에 눌러앉았다.

건축공사 현장을 전전하며 목수 일을 배웠다. 어느 날 동료한테서 목수학교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배움에 대한 의지가 남달랐던 그는 한달음에 목수학교로 달려갔다. 그 목수학교는 지금 인천 남동구 만수동에 있는 건설기술교육원이다.

당시 그의 나이는 스물다섯 정도 됐다. 1주일에 3~4일 기술교육을 받으면서도 생계를 이어가기 2~3일은 목수 일을 닥치는 대로 했다. 기술자격증을 딸 수 있는 건 모두 땄다.

그 후로 인천에서 목공소를 운영하면서도 배움의 욕구는 더욱 커졌다. 50세 무렵 검정고시에 도전했다.

“이제 오십인데 무엇을 이루었나, 생각하니 가슴이 허했다. 마음의 병이 커질 무렵 고입 검정고시에 응시하려고 지하 작업실에서 공부했다. 두 번의 도전 끝에 합격했다. 최고령이었다. 내친김에 대입 검정고시에도 응시했다. 3년이 걸려 합격의 기쁨을 만끽했다.”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대학에도 들어갔다. 성화대학 실내인테리어과에 입학해 60세 무렵 졸업했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 맘만 먹으면 다할 수 있다.”

경기도 무형문화재 소목장 김순기 선생을 만난 게 그가 전통 창호를 하는 계기가 됐다. 그는 김 선생에게서 전통 창호를 사사하고 각지의 문화재 복원 공사에도 참여했다.

대표적인 게 경복궁 광화문과 경회루 보수 작업이다. 서울역 문들도 그의 손길이 닿았다. 또, 이승만 대통령의 이화장과 김구 선생의 경교장 보수도 도맡아했고, 서울 독립문에 있는 홍난파 선생 집도 보수했다. 인천에서는 전통가옥으로 꾸민 경원재를 작업했다.

그는 “배움에 대한 열정과 기술에 대한 자부심으로 살아왔다. 배움과 기술이 짧은 사람은 중요한 작업을 맡기면 망치기 마련이다. 끊임없이 배워야한다”고 말했다.

나이테상감문(왼쪽)과 매화꽃살문
나이테상감문(왼쪽)과 매화꽃살문.

원리원칙 지켜야 나무 다듬을 수 있어

세월이 흐른 만큼 나무에 나이테가 많아지듯, 그의 얼굴과 손에 주름이 많아졌다. 그는 지난 2004년 대한민국 목재창호 명장에 선정됐다. 15년이 지난 지금, 그는 목재창호의 명맥이 끊어질까봐 걱정하고 있다.

“배우겠다고 온 사람들 모두 떠났다. 배신감까지 들었던 때도 있다. 아들이 20년 넘게 이 일을 하고 있는데, 전통 창호를 찾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전통 창호를 만들 때는 세부 무늬를 새기는 등, 많은 정성이 필요하다. 그가 가장 애착하는 작품은 “꿈속에서 문양을 보고 10년 만에 완성했다”는 ‘나이테상감문’이다. 그는 손수 조각한 ‘매화꽃살문’도 보여줬다. 실제 문으로 사용하며 손때 묻히기가 아까울 정도로 정성을 들인 작품이란다.

문과 창은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통로다. 나무의 아름다움에 꽃무늬가 더해진 문은 사람들에게 삶의 희망을 북돋아주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안도감을 준다. 문을 넘나들며 세상을 경험하고, 창으로 깨달음을 얻는다.

가 명장은 “나무의 종류는 많지만 쓸 만한 목재는 많지 않다. 공구도 종류가 굉장히 많지만 각기 쓰임새에 맞게 사용해야한다. 목재를 보는 안목과 활용능력, 적합한 공구를 골라 쓰는 기술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공구는 대패, 끌, 톱, 망치 등 수백 가지다. 나무는 서로 결과 색이 다르고 강도와 성질도 다르다. 이를 잘 선별해 쓰임새에 맞게 만드는 사람이 목수다. 목수의 손은 세월이 갈수록 나무를 닮아간다.

“원리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나무를 다듬을 수 없다. 또, 오랜 세월 풍파를 이겨낸 나무를 다루는 일은 나무에 대한 애정과 고마움을 갖지 않으면 할 수 없다. 진심이 묻어나야한다.”

그는 끝으로 우리나라 기술인에 대한 대우가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 멀었다고 했다.

“작업하다가 밥 먹으러 가면 식당에서 나가라고 하는 때도 있다. 기술인에 대한 사회적 배려와 대우가 미흡한 게 아쉽다. 그러다보니 전통 창호를 배우려하는 사람도 왔다가 금방 간다. 이제는 전통 창호 기술도 남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