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지역 씨앗, 대물림 되는 땅
[세상읽기] 지역 씨앗, 대물림 되는 땅
  • 인천투데이
  • 승인 2019.04.15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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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석 인천민속학회 이사

[인천투데이] 작은 텃밭을 가꾸면서 깨달은 게 하나 있다. 씨앗보다 중요한 게 땅이라는 사실이다. 농사는 씨를 뿌리고 거두면서 작물을 키우는 것이지만, 한편으로 흙을 보듬는 작업이기도 하다. 사람이 게으를 때 작물은 자라다가 말고, 땅이 망가지면 줄기는 힘을 잃는다. 스스로 고통을 겪어내지 못한 씨앗은 환경이 조금만 변해도 살아갈 의욕을 잃고 이내 시들고 만다. 그러니 땅과 사람과 씨앗이 한 몸이 되지 않으면, 한 해 동안 키워 먹고 마는 일회용 농사에 만족해야한다.

부지런하다는 건 무언가 끊임없이 손을 대야한다는 말이 아니다. 사람의 손길은 최소화하는 게 좋다. 씨앗은 스스로 움틀 수 있고, 그렇게 해야 한다. 우리는 옆에서 거들어줄 뿐이다. 땅도 가급적 갈지 않는 게 좋다. 땅속은 온갖 생물들의 안식처다. 우리가 편하자고 그걸 파헤칠 수는 없다. 뿌리와 벌레와 미생물들이 알아서 그 안을 가꾼다. 비와 눈과 바람과 태양이 옆에서 돕는다. 마를 때 물을 살짝 더 주고, 넘칠 때 고랑을 약간 더해 주면 그만이다.

잡초도 제 역할이 있다. 키가 너무 자라면 잘라줄 수는 있어도 뿌리까지 다치게 할 필요는 없다. 주변을 황무지로 만든 대가로 큰 열매를 얻었다고 해서 맛이 더 좋은 건 아니다. 모두 각자 제 본성을 잘 지킬 수 있게 해준다면 풍족하진 않아도 만족할 만한 결실을 얻을 수 있다. 그러니, 농사는 ‘스스로 그러한’ 상태인 ‘자연(自然)’을 성의껏 지켜주는 일이기도 하다.

한 5년 정도 해온 텃밭은 남의 땅이다. 그러다 보니 매해 땅이 바뀐다. 거두어둔 씨앗들이 매번 다른 환경에 적응할 수밖에 없다. 씨앗 입장에서는 고향을 떠나 타지에 정착하는 것과 같은데, 스트레스가 적지 않을 것이다. 무슨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버티는 걸 보고 있을 수밖에 없다.

요즘 흔히 얘기하는 토종 씨앗이라면 좀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한다. 그런데, 토종이라는 말이 좀 모호하다. 외래종이 아닌 우리 것이라는 의미도 있을 것이고, 공장에서 나온 것이 아닌 재래종이라는 뜻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제주도에서 나온 토종 씨앗을 인천에 갖다 심는다고 해서 우리 것을 심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부산말과 서울말이 다르듯이 씨앗도 자신의 연고는 기억하지 않을까 싶다. 몇 세대를 거치고 난 후라면 모를까, 인천에는 인천 씨앗을 심는 게 좋을 것이다. 토종이란 단어에 그런 의미가 다소 담겨있기는 해도 명확하게 지역 씨앗을 찾고, 만들고, 보존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씨앗을 확보했다고 해서 끝난 건 아니다. 토종 흙이 있어야한다. 지금처럼 계속 흙을 덮어버리면, 언젠가 외국에서 흙을 수입해 쓸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옛날에는 자손들에게 땅을 물려줬는데, 이제는 집을 물려준다. 대물림 되는 땅이 없다는 얘기다. 계승되는 땅이 없다면 토종 씨앗이든, 지역 씨앗이든 의미가 없다.

한동안 상자텃밭이 유행한 적이 있다. 도시농업의 대안 중 하나이긴 한데, 궁극적으로는 인천의 땅과 인천의 흙을 확보하는 데 힘써야할 것이다. 물론, 공동자산이 돼야 한다. 동네마다 그런 공간이 있다면, 우리는 후대에 건물이 아닌 땅을 물려줄 수 있다. 씨앗과 흙은 옛날부터 선대가 남겨준 중요한 유산이다. 멋들어진 건축 유산만이 우리가 지켜야할 역사 유산이어야 하는 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