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도시를 찾아서] 사막 한 가운데에 ‘마르기아나 왕국’이 숨어 있었네
[사라진 도시를 찾아서] 사막 한 가운데에 ‘마르기아나 왕국’이 숨어 있었네
  • 허우범 시민기자
  • 승인 2019.04.15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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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우범 시민기자의 ‘사라진 도시를 찾아서’ 40
마르구스의 고누르 테파

[인천투데이 허우범 시민기자] 마리박물관은 지역에서 발굴된 유물들로 빼곡했다. 그중에 전혀 들은 적도 본 적도 없는 생소한 유적지와 유물이 있다. 마르구스(Margus)라는 지역에 있었다는 고대 국가 마르기아나(Margiana)다. 현지 안내인의 설명에 의하면, 기원전 2200년경 초기 청동기 농경문화로부터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의 위대한 정복자 다리우스 1세에 의해 정복된 기원전 552년 무렵까지 번성했던 문명의 중심지였다. 지금은 카라쿰 사막의 한 가운데 있는데, 세계 5대 문명 발상지에 포함되는 곳이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든다. 일정을 조정해 마루구스를 가기로 했다. 갑작스레 가려니 모든 것이 어렵다. 특히, 사막을 달릴 수 있는 별도의 차량과 기사가 급선무였다. 엄청난 추가경비를 주고 드디어 출발하기로 했다.

하늘에서 본 마르구스 유적지.
하늘에서 본 마르구스 유적지.

마르구스 유적지로 가는 사막 길

우리가 찾은 운전기사는 10년이 넘은 소련제 지프차인 보아즈(UAZ)를 몰고 왔다. 어느 한 곳 그럴듯한 곳이라곤 없는, 그야말로 ‘굴러가니까 자동차’였다. 무사히 다녀올 수 있느냐만 재차 확인하고 차에 올랐다. 원래부터 에어컨 없이 생산됐다는 차 안은 한증막처럼 뜨겁다. 바람이라도 쐴 양으로 창문을 미니, 덜렁거리는 창문이 영 불안하다. 자리는 언제 청소했는지 먼지만 풀풀 날린다. 한 달 월급이 넘는 돈을 움켜쥔 기사는 신이 난 듯 자국만 희미한 모랫길을 노련하게 운전한다. 고물차가 굽은 길, 언덕길을 지날 때마다 사막의 고운 모래가 인정사정없이 들이친다. 창문을 닫으랴, 입과 코를 막고 눈을 훔치랴,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랴. 그야말로 자동차 안은 춤추는 아수라장이다.

갑자기 자동차가 멎었다. 순간 시원하던 바람 대신 모래먼지가 숨을 틀어막는다. 창밖을 내다보니 낙타 떼가 길을 막고 섰다. 너무도 신기한 광경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잠깐 동안 실크로드 분위기에 빠지다보니 갈 길이 급하다. 낙타를 몰아내고 길을 터야하는데 주인은 어디 갔는지 보이질 않는다. 자동차가 경적을 울리고 손짓으로 낙타를 쫒을 즈음, 주인이 허겁지겁 모자를 벗고 달려온다.

마르구스 유적지로 가는 길을 막고 있는 낙타 떼.
마르구스 유적지로 가는 길을 막고 있는 낙타 떼.
주거지에는 당시의 항아리와 자기들이 그대로 묻혀 있다.
주거지에는 당시의 항아리와 자기들이 그대로 묻혀 있다.

낙타 떼를 뒤로하고 한참을 달렸다. 길은 직선이 아닌 지그재그로 나있다. 아무리 자세히 보아도 지난 길을 되돌아온 것처럼 그 길이 그 길이다. 하지만 운전기사는 익숙한 길처럼 잘도 나아간다. 그런데 자동차가 또다시 멈춰 섰다. 이번에는 사막의 모래밭에 타이어가 파묻혔다. 사막에서는 빨리 달릴 수도 없지만 천천히 달리면 바퀴가 모래에 묻힌다. 노련한 기사도 고물자동차를 가지고는 어쩔 수 없는가보다.

망연자실. 정녕 마르구스는 자신을 호락호락하게 보여주지 않겠다는 것인가. 맨손으로 바퀴가 묻힌 모래를 팠다. 여기저기 뒹구는 샥샤울을 모아 바퀴 밑에 깔았다. 시동이 걸리고 구호에 맞춰 젖 먹던 힘까지 다해서 자동차를 밀었다. 자동차는 모래수렁을 빠져나갔고 기진맥진한 우리는 가까스로 자동차에 올라탔다. 갈증과 탈진으로 돌아올 때 마시려고 남겨둔 물도 동이 났다. 그렇게 사막을 달린지 3시간. 마침내 마리시에서 북쪽으로 90km 떨어진 마르구스의 중심 유적인 고누르 테파에 도착했다.

마르구스의 중심 유적 ‘고누르 테파’

물을 사용해 철기를 제련했던 제련소 자리.
물을 사용해 철기를 제련했던 제련소 자리.

고누르 테파는 기원전 6세기 마르기아나의 왕이 거주하던 도성이 있던 곳이다. 카라쿰 사막 속에 잠들어 있던 탓에 유적은 거의 원형 그대로 남아있었다. 마르구스는 서쪽으로 코페트다크 산맥을 넘어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문명과 연결되고, 동쪽으로는 아무다리야 상류의 박트리아를 거쳐 인더스 문명을 연결하는 중간지대에 자리하고 있다. 고누르를 비롯한 마르구스의 여러 유적들은 1972년 이래 발굴됐지만 소련이 해체된 1990년대 들어서야 비로소 그 존재가 알려졌다. 1990년대 후반, 발굴 성과물이 속속 출간되면서 마르구스 유적은 이집트 문명에서 인더스 문명에 이르는 인류 초기 문화의 교류상은 물론, 바빌론과 페르시아 등 이란 고대 문명의 동방 전파 양상을 연구하는 데도 큰 공헌을 했다. 특히 페르시아와 그 동북부 지역에서 발생한 조로아스터교의 신전이 마르구스의 고누르 테파에서 원형 그대로 발굴되면서 고대 문명에 대한 종합적 연구에 결정적 자료를 제공했다. 이런 이유로 마르구스를 가리켜 세계 제5대 문명의 발상지라 칭하기도 한다.

마르구스 유적의 발견은 더욱 극적이다. 마르구스는 1972년 러시아의 고고학자 빅토르 사리아니디에 의해 처음 발견됐다. 그는 기원전 520년경 페르시아 다리우스 1세가 비쉬툰 산 절벽에 새긴 전승 비문 가운데 마르기아나의 왕 프라다를 처단하기 위해 카라쿰 사막을 300km가량 가로 질러갔다는 기록을 단서로 삼아 사막을 수없이 헤맨 끝에 찾아냈다.

국내에 전혀 알려진 바 없는 마르구스의 유적과 유물은 분명 새로운 충격이었다. 현대 추상 조각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은 다양한 모습의 여신상, 그릇의 목과 어깨에 가축과 이를 잡아먹는 뱀을 붙여 놓은 토기와 청동기, 중국 고대 제사용 토기인 두(豆)를 연상시키는 토기, 페넌트 모양의 각종 금속 장신구 등은 인류 초기 문명의 면모를 간직하고 있다.특히 고누르 테파의 왕성(王城)을 에워싼 견고한 성벽, 성벽 중간 중간에 설치한 치(雉)와 성문을 감싼 옹성(甕城) 등의 축조기법은 흡사 고구려의 산성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할 정도다. 마르구스의 청동기 문명은 뒤이은 헬레니즘 문화와 융합해 동방으로 전파됐을 터, 중국과 고대 한국 문화에 나타나는 서역 문명의 발원지로서 마르구스를 주목해야하는 이유다.

서둘러 본다고 했지만 어느덧 출발시각이 지났다. 돌아서야만 하는 아쉬움이 자꾸 카메라 셔터를 누르게 만든다. 올 때와는 다르게 사막이 아름답고 정겹게 보인다. 몸과 마음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마르구스의 기(氣)를 충만하게 받은 덕분인가. 실크로드 유적이 가득한 메르브는 분명 그 자체가 문명을 양산(量産)하는 강이고 산이었다. 또한, 실크로드야말로 인류 문명의 대동맥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는 감동의 순간이었다.

왕국의 하수도 자리. 왕국 규모가 매우 컸음을 알 수 있다.
왕국의 하수도 자리. 왕국 규모가 매우 컸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