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전세력' 횡포 앞에 힘없는 중소기업
청호전자통신 노동자들 “열심히 일만한 우리는 어떡해”

▲ 금속노조인천지부 조합원과 인천지역 시민사회 회원들은 27일 청호전자통신 회사 정문에서 경영정상화를 촉구하는 집회를 정기주주총회 전에 개최했다.
인천시 계양구 효성동 604번지에 위치한 청호전자통신(이하 청호)은 휴대전화 등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수정진동자를 생산하며 한때 1000여명의 노동자를 고용할 정도로 튼실했던 전자회사다.

한독시계를 모체로 한 고니정밀이 1976년 창립해 빠르게 성장했고, 그 고니정밀이 청호로 이름을 바꿨다. 하지만 1999년 경영권 분쟁으로 대주주가 청호컴넷으로 바뀐 뒤 청호에는 구조조정 바람이 불었다. 이제는 50여명만이 남아 현장을 지키고 있다.

30년 동안 건실했던 청호는 몇 년 만에 작전 세력에 의해 공중 분해될 위기에 놓여있다. 청호에서 젊음을 바쳐 일해 온 노동자들은 현재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마지막 투쟁을 준비 중이다.

비대위원장을 맡고 있는 황윤정 전국금속노동조합 청호지회장은 현 청호사태에 대해 “신자유주의 세상에서 투기자본의 행태가 어떠한지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던 노조 간부들조차 "”기술력도 자본도 없는 이 회사에서 이익을 챙길 게 뭐가 있다고 투자를 하지? 의아한 생각을 했다”라고 청호사태 초기를 회상했다. 

과연 청호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한때 1000명 이상을 고용할 만큼 튼실한 중소제조업체 청호는 90년대에 중국 연태에 생산 공장을 설립하면서 대규모 감원을 실시했다.

하지만 2007년 8월 회사 매출의 80%를 차지하던 중국 공장을 팔아버린 뒤 물량 주문이 급격히 줄었다. 2007년에 15억원의 영업 손실을 기록하더니 2008년 9월말 기준 영업 손실이 50억여원에 달했다.

이로 인해 청호 대표이사는 회사를 인수합병(M&A) 시장에 내놓았다. 이를 인수하기 위해 자산운용사를 포함한 9개의 법인과 개인이 모여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컨소시엄은 41.59%를 소유하는 대주주가 돼 공동 운영에 들어갔다. 컨소시엄에 일명 ‘작전세력’이 포함되면서 청호의 어려움은 더욱 심각해졌다.

작전세력으로 알려진 김 아무개씨은 1998년 모바일 시스템통합(SI) 전문업체인 ‘모디아’를 설립해 코스닥 시장에 상장시킨 후 2만원 대 주가를 11만원 대로 끌어올리며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은 벤처 사업가다. 하지만 그는 몇 년 뒤 ‘가장 납입’ 등의 방법으로 유령 주를 발행한 혐의로 구속됐다.

김씨는 작년 8월 청호 경영권을 인수하면서 자신의 돈을 한 푼도 들이지 않았다. 김씨는 사채 업체를 끌어들여 '무자본 M&A'를 통해 청호를 인수했다. 청호를 인수할 당시 컨소시엄에는 J씨, 이스트블루, 노기원 K&P Investment 등이 참여했다. 이중 J씨의 자금과 노기원, 이스트블루의 자금은 모두 사채 업체에서 나온 자금인 것으로 검찰 수사결과 드러났다. 

김씨는 사채를 얻어 부실 기업을 사들이는 ‘무자본 M&A’라 방법을 통해 청호를 인수한 것이다. 컨소시엄에 참가했던 캐피탈파트너스는 지난 해 12월 인천지방법원에 '장부열람 신청'을 요구했다. 법원은 이를 받아 들였다. 

작전세력에게 넘어간 청호는 지난달까지 대표이사가 다섯 차례나 교체됐다. 그러면서 청호에는 일반 상식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일들이 일어났고, 청호는 이제 공중 분해될 처지에 놓였다. 작전세력의 개입 이후 청호에서는 300억원 이상이 빠져나갔으며 부채도 100억원 늘어났다.

컨소시엄은 청호 인수 후 제일 먼저 20억원을 투입해 ‘이미지캐피탈(주)’를 설립했다. 건실하게 성장해온 청호의 알짜배기 자금이 작전세력에 의해 유출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이미지캐피탈을 통해 K나라테크(나라테크)라는 회사에 두 차례에 걸쳐 117억원을 투자한다. 나라테크는 이 중 29억원을 다시 이미지캐피탈에 대여하고, 이미지캐피탈은 이 돈을 케이에스피 지분을 취득하는 자금으로 사용한다. 나라테크는 태양광 부품, 반도체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진공장비, 태양전지 모듈을 만드는 데 쓰는 실리콘 장비를 제조하는 회사다. 청호가 이 회사에 투자한 돈은 117억여원에 이른다.

이와 관련, 비대위는 “작전세력이 투자 당시 태양광전지 사업이 크게 부각되면서 주가를 띄우기 위한 작전이거나, 자금을 다른 곳으로 빼돌리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비대위에 따르면, 나라테크와 이미지캐피탈이 29억원의 대여와 관련한 금전소비대차약정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청호는 연대보증을 섰는데 보증 사실에 대해 증권거래소나 사업보고서에 공시하지 않았다. 이는 증권거래법상 공시의무를 위반한 것이다.

나라테크는 2006년에 이미 자기자본가치가 마이너스 13억원으로 완전 자본잠식인 부도 상태 였다. 그럼에도 작전세력들은 투자를 한 것이다. 또한 이들은 당시 나라테크 주식의 가치가 주당 5만 4520원에 불과했는데 이를 주당 9만에서 12만 5000원으로 구입했다. 실제 가치보다 2배 이상으로 지분을 인수한 것이다.

이미지캐피탈은 청호 출자금, 나라테크 대여금 29억원, 김씨 등이 대표이사로 있던 청람디지탈 등의 회사로부터 대여 받은 수 십 억원으로 (주)케이에스피 지분을 취득한다. 이 회사는 선박용 엔지밸브를 만드는 건실한 중소기업이다. 김도현이 케이에스피 지분을 취득한 후 8개월부터 케이에스피도 회사가 엉망진창으로 변했다.

김씨는 회사 운영 자금을 빼돌려 법인 명의로 대출을 받는 수법으로 회사 돈 260억원을 유용했으며, 600억원에 육박하는 회사어음과 당좌수표를 발행해 횡령했다. 김씨는 현재 서울중앙지검으로부터 이런 혐의를 받고 조사를 받고 있다.

또한 김씨는 무기로비사건으로 물의를 일으킨 린다 김의 돈을 떼먹어 화재를 일으키기도 했으며, 금융당국의 조사를 무마하기 위해 금융감독원 부원장에게 5만 달러의 뇌물을 전달해 배임 및 횡령 등의 혐의로 검찰 조사도 받고 있다.

이밖에도 청호는 지난해 7월 자본금 5000만원을 출자해 청호솔라텍(주)를 설립했지만, 사실상 유령회사다. 문제는 솔라택을 통해 청호 자금 수십억원이 빠져나갔다. 빠져나간 자금은 지금도 회수되지 않고 있다. 비대위는 작전세력에 의한 회사 공금 유용 또는 횡령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비대위는 작년 10월 “회사가 부도 위기이니 노동조합이 나서서 싸워 달라”는 노무담당 이사의 부탁을 받고 회사 경영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다. 조사 결과, 기숙사를 담보로 대출을 신청했고, 사원에게 지급할 임금 일부가 남의 회사에 가 있고, 타사의 어음을 위조해 회사가 고소될 위기에 처해 있었다.

투기세력으로 들어온 일부가 이사회라는 공적구조를 통해 자신들이 투자한 회사의 주식을 올리는 데 자금을 사용하거나, 공장 담보 등의 방법으로 자금을 모아 다른 회사의 경영권을 취득하는 데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황윤정 비대위원장은 “투기화된 자본주의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뼈저리게 확인시켜주고 있는 것이 청호다. 한국은 이런 투기자본에 대한 제도적 감시와 통제수단이 없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건실한 중소기업을 망가트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금융당국과 사법당국도 이들에 대해서는 뒷북치기, 속수무책으로 일관해 노동시장을 불안하게 만들고 서민의 생계를 위협하고 있다”면서, “모디아를 통해 1000억 대의 돈을 만지며 각종 범죄행위를 저질렀음에도 김씨는 2년 6월의 징역살이 후 여전히 코스닥 시장을 휘저으며 투기행각을 일삼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황 위원장은 “투기자본은 너무 치밀하게 회사를 먹기 위해 들어오지만, 대다수 노조들은 이런 인식조차 부족하고 사건이 발생한 후 수세적으로 대처하고 있다”면서, “전체 노동운동이 투기자본에 대해 공동투쟁 해야 하며, 법과 제도를 통해 투기자본을 제어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한 활동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 청호전자통신주식회사는 27일 제33기 정기주주총회를 진행했다. 이날 일부 주주들은 회사 운영에 문제점을 강하게 제기했다.

도움말ㆍ여상경 월간 <노동세상>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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