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주 시민기자의 영화읽기 - 생일(Birthday)

[인천투데이 이영주 시민기자]

이종언 감독│2019년 개봉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순남(전도연)의 삶은 멈추어버렸다. 다른 유가족들도 만나지 않고 아들 수호(윤찬영)의 죽음을 외면한 채 슬픔을 끌어안고 산다. 어린 딸 예솔(김보민) 역시 동굴 속에 살고 있는 엄마를 보며 일찍 철이 들어버렸다.

몇 년 만에 귀국한 남편 정일(설경구)은 집주소를 들고 이사한 집을 찾지만 순남은 남편이 돌아온 걸 모니터로 확인하면서도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정일은 사고 당시 타국에 있었고, 해외근무 중 일어난 불미스러운 일 때문에 아들 수호(윤찬영)의 사고 소식을 듣고도 귀국하지 못했다. 아들의 죽음 이후 홀로 고통의 터널을 지나온 순남에게 정일은 남보다 못한, 원망스런 존재. 너무 늦게 도착한 남편이었다.

세월호 유가족들과 대책위, 그리고 가족보다 살뜰히 순남과 예솔을 돌봐온 옆집 우찬 엄마(김수진)는 수호의 생일모임을 함께 열자고 제안한다. 쭈뼛거리며 순남과 예솔에게 다가가려 애쓰는 정일은 제안을 수락하지만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 생각이 없는 순남은 단호히 거절한다.

영화 ‘생일’은 여전히 우리에게 깊은 상처로 남아 있는 세월호 참사를 다룬 극영화다. 참사 5주기를 앞두고 4월 3일 개봉했다. 세월호 영화이니 봐야 한다는 생각과 더불어, 세월호 참사를 다룬 영화이기에 피하고 싶은 마음도 컸다. 더 정확히는 걱정과 우려가 많았다. 너무 많은 이들에게 크나큰 상처가 된 실제 사건을 픽션인 영화로 만든다고 할 때, 아직까지는 괜찮은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 거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솔직히 참사 이후 지금까지 나온 영화들이 걱정과 우려를 더욱 키우기도 했다.

다행히 영화는 나의 걱정과 우려로부터 비껴나 있었다. 놀라우리만치 감정을 억누르고 참사의 피해자, 생존자, 유가족, 이웃들, 그리고 별일 아닌 듯 지나치는 평범한 이들의 삶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특별한 주장도 없다. 극적 연출도 없다. 영화로 무언가를 설득하거나 전달하겠다는 욕심도 없어 뵌다. 다만, 곁에서 응시한다. 2시간 동안 건조한 카메라의 응시를 따라갔고, 어느새 수호의 엄마가 돼 아빠가 돼 동생이 돼 친구가 돼 이웃이 돼 통곡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순남의 반대에도 어찌어찌 수호의 생일모임이 열린다. 영화는 수호 친구들의 부모이기도 한 세월호 유가족, 수호의 친구들, 이웃들이 참석한 생일잔치 장면을 극영화임에도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느린 호흡으로 보여준다. 수호의 탄생부터 2014년 4월 16일까지 사진으로 기록한 영상이 흐르고 수호를 따랐던 옆집 동생, 초등학교 때부터 늘 붙어 다녔지만 고등학교를 다른 곳으로 진학한 단짝 친구, 수호가 건네준 구명조끼로 생존한 같은 반 친구까지 수호에 대한 기억을 털어놓는다.

꽤 긴 시간을 할애한 생일모임 장면은 5년 전 그날 이후 잊지 않겠다고 눈물로 다짐했던 우리가 잠시 잊고 있었던 사실을 상기시킨다. 304명의 세월호 희생자들에게는 304개의 이런 기억이 있었겠구나. 수호처럼 304명 모두 누군가에게 소중한 존재였겠구나. 하루아침에 그 소중한 존재를 잃고 5년의 시간을 살아낸 가족, 친구, 이웃이 있었겠구나.

참사 당시를 지키지 못한, 그래서 아들의 죽음을 실감하지 못하는 정일의 시선에서 시작한 영화는 수호의 부재를 견뎌낸 이들의 고백 속에 비로소 상실을 자각하는 정일의 통곡으로 끝이 난다. 시종일관 건조함을 잃지 않았던 영화 덕에 순남과 이웃들 곁을 맴돌 수 있었던 나 역시 잊고 있었던 304개 우주의 상실을 비로소 깨닫고 통곡한다.

‘생일’의 이종언 감독은 2015년부터 안산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나고 아이들의 생일을 함께 치러왔다. 단원고 희생자 친구들의 이야기로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도 했다. 사건을 해석하거나 비평하는 게 아니라 묵묵히 피해자들의 ‘곁’에 있는 감독의 위치는 영화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참사 피해자의 곁을 지킨 이들만이 할 수 있는 이토록 건조하면서도 섬세한 응시야말로 영화 ‘생일’의 미덕이다. 세월호 참사 5주기를 어떤 식으로든 기억하고자 한다면, 2시간 동안 이 영화의 응시를 따라가 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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