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언제부터 술을 마셨나

당분과 효모, 그리고 알코올

인류는 언제부터 술을 마셨을까? 주당이라면 한 번쯤 품어봤을 의문이다. 알코올은 태초부터 존재했다. 대략 40억 년 전, 태초의 지구에 생겨난 최초의 단세포 생명체는 아마도 걸쭉한 단당질 액체로 덮인 지구 표면에서 당을 섭취하고 에탄올 즉,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를 배출했을 것이다. 그러니 태초부터 알코올음료가 존재했음은 거의 틀림없는 사실이고, 따라서 지구상의 생명체는 알코올과 함께 진화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태초에 알코올을 만든 효모는 오늘날 맥주를 발효하는 사카로미세스 세레비지에(Saccharomyces Cerevisiae)와 사카로미세스 파스토리아누스(Saccharomyces Pastorianus) 효모로 진화해 알코올음료를 만들고 있다. 알코올은 이 효모들이 단당을 분해할 때 생성되는 것이니, 알코올의 존재는 곧 효모의 먹이이자 동물의 에너지원인 당분의 존재를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가 본능적으로 단 것을 좋아하고 알코올에 빠지게 된 것은 유전적 본능에 의한 것이다. 그러니 주당들은 죄책감을 너무 가질 필요 없다. 술을 좋아하는 것은 생존 본능의 일종이니까.

자연발효 과일주의 신묘한 효능

먹을 것이 풍부하지 않던 옛날, 당분이 풍부한 과일은 매우 효율적인 영양공급원이었다. 그러나 과일은 흔하지 않았고, 오래 보존되지도 않았다. 따라서 우리 조상들은 과일을 발견하면 먹을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많이 먹었다. 그런 본능이 아직도 우리 DNA에 남아있기에 음식이 풍부한 지금도 당을 과다하게 섭취하고 비만이 된다. 운동량이 부족한 현대 인류가 본능에 너무 충실해 필요이상의 영양분을 섭취하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를 알면서도 본능을 억제하기란 쉽지 않다.

당분이 풍부한 과일, 특히 포도와 같은 과일은 오래 익으면 껍질에 자생하는 효모와 대기에 떠도는 효모에 의해 발효된다. 우리 조상들은 훌륭한 에너지원인 과일을 찾아다니며 먹었고, 그러다 발효돼 알코올이 생성된 과일주를 우연히 먹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내 자연산 와인의 매력에 빠졌다. 달콤한 향과 영양분, 더불어 기분이 한껏 좋아지게 만드는 술의 매력을 피할 수 없었을 테고, 그 신묘한 효능을 즐기기 위해 직접 술을 만들어 마시게 됐을 것이다.

※전영우는 인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일했다. 직접 재배한 홉으로 맥주를 만드는 등, 맥주 세계에 흠뻑 빠져있다.

알코올은 동·식물 공생관계의 산물

인류가 언제 처음 술을 마셨는지 정확하게 알 길은 없다. 기록이 남아있는 것도 아니고, 술을 마신 흔적이 남는 것도 아니다.

다만, 구석기 시대에 자연 발효된 알코올을 마시기 시작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술을 마시는 것은 인간뿐 아니라 다른 동물들의 본능이기도 하다. 야생 코끼리나 원숭이도 발효된 과일을 먹고 취하는데, 인류와 마찬가지로 동물들에게도 발효된 과일은 영양공급원이자 기분을 좋게 만드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곤충학자들은 벌레를 잡을 때 나무 밑동에 발효음료를 발라 꾀어낸다. 찰스 다윈도 아프리카 개코원숭이를 잡을 때 맥주를 이용했다. 초파리들도 알코올 대사 작용의 부산물인 향이 나오는 곳에 알을 낳는데, 발효된 과일은 유충에게 매우 효과적인 에너지공급원이기 때문이다. 야생의 많은 생명체가 이렇듯 알코올을 찾으니, 인류가 술을 좋아하고 마시는 것은 당연한 자연의 섭리다.

식물이 당이 풍부한 열매를 맺고, 이 열매가 발효해 달콤한 향을 풍기는 것은 동물을 유인하기 위해서다. 발효한 열매에서 풍기는 향은 동물들에게 풍부한 영양공급원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고, 이 향기에 끌려온 동물들이 열매를 먹고 씨앗을 배설해 식물은 번식한다. 결국 알코올은 생존과 번식을 위한 동ㆍ식물 간 공생관계의 산물이니, 차라리 신성한 물질이라 하겠다.

음주는 우리 DNA에 새겨있는 본능

발효된 과일에서 알코올이 생성돼 술이 되는 것은 효모의 작용에 의한 것이고, 이것은 치열한 생존경쟁의 산물이다. 술을 만드는 효모인 사카로미세스 세레비지에는 당을 분해하며 알코올을 생성해 다른 경쟁자를 제거했다. 다른 효모나 박테리아는 알코올 함량 5% 이상인 환경에서 생존할 수 없다. 그러나 세레비지에 효모는 알코올 함량 10% 이상에서도 생존이 가능하다. 즉, 당을 섭취하는 다른 경쟁자를 효율적으로 제거하기 위해 알코올을 생성한 것이다.

효모가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해 생산한 알코올이 갖는 살균기능은 인간에게도 도움을 준다. 깨끗한 물이 귀했던 시절 알코올음료를 마시는 것은 유해한 미생물이 살균된 물을 마시는 것이었다. 인간의 몸은 3분의 2가 물이고, 하루 평균 2리터의 물을 마셔야한다. 알코올은 정화되지 않은 물에 들어 있는 세균과 기생충 등 병원균을 소독해주기에 알코올음료를 마시는 사람은 소독하지 않은 물을 그냥 마시는 사람보다 더 건강할 확률이 높다.

결국 술을 마신다는 것은 에너지원을 효과적으로 확보하려는 본능에 기인한 것이다. 더불어 건강과 위생이라는 효과도 있고,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는 효과까지 덤으로 따라온다. 따라서 음주는 우리 DNA에 새겨있는, 가장 깊숙한 의식 속에 자리 잡은 본능이다. 인류가 술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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