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우범 시민기자의 ‘사라진 도시를 찾아서’ 39
메르브, 그레이트 카라

[인천투데이 허우범 시민기자]

‘사랑의 오아시스’ 아쉬하바드

사랑의 도시 아쉬하바드에 있는 황금 사원

투르크메니스탄의 수도인 아쉬하바드는 ‘사랑의 도시’라는 뜻이다. 이 도시는 사막 속 황금 낙원이지만, 도시를 벗어나면 사막과 벌판만이 휑뎅그렁할 뿐이다. 천국과 지옥의 차이라면 지나친 비유일까. 이토록 극렬한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한 것일까. 바로 무진장 매장된 석유와천연가스 때문이다. 이 마르지 않는 천연자원이 아쉬하바드를 사랑의 오아시스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런데 다른 지역 사람들은 왜 불만을 토로하지 않을까. 여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휘발유 1리터가 한화로 200원 정도다. 매달 120리터는 무료로 준다. 잘만 쓰면 기름 값도 들지 않는다. 수도와 가스, 전기는 아예 공짜다. 생활 기반시설이 대부분 무료이고 저렴하니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정치의식보다 경제력이 우선이라는 자본주의 논리를 사회주의 체제에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유목적 기질이 남아 있음인가. 국민들은 정치에 관심이 없다. 땅은 넓고 국민은 적은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이 우리와 다르다고 해서 과연 업신여길 수 있을까. 게다가 ‘자원부국’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으니 카라쿰사막과 함께 살아온 투르크멘 민족 나름의 통치방법이 있는 것이다.

‘고귀한’ 메르브

메르브 유적지로 가는 길

마리(Mary)로 향하는 비행기가 이륙해 고도(高度)를 잡는다. 깜빡 잠이 들었던가. 어느덧 비행기는 꿈속에서조차 보고 싶었던 마리공항에 착륙한다. 유적지를 찾아가는 내내 극대화된 흥분을 감출 수 없다. 내 손은 차창 밖으로 스치는 풍정(風情)을 담느라 카메라 셔터를 바삐 눌러댄다.

인구 8만의 조용한 공업도시 마리는 아침을 시작하는 사람들로 바쁘다. 이곳에서 동쪽으로 3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실크로드의 영화(榮華)가 서린 메르브
(Marv) 유적이 있다.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곳은 2500여 년간 중앙아시아와 페르시아를 잇는 오아시스 도시로 번성했다. 특히, 11~12세기에는 셀주크의 수도가 돼 ‘고귀한 메르브’로 알려진 그야말로 세계적 도시였다.

메르브는 적어도 시대별로 다섯 차례에 걸쳐 수도(首都)가 건설됐다. 하지만 ‘떠도는 도시’라는 별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 장소에 계속해서 도시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시대마다 인근에 새로운 터를 잡아 도성(都城)을 쌓았다.

아! 그레이트 카라

많은 유적지 중에서도 기원전 6세기 조로아스터인들이 만든 도성인 에르크 카라(城)가 가장 오래된 것이다. 당시에는 높이가 110미터 되는 웅장한 성벽이었다고 한다. 지금도 성벽 터에 올라서니 드넓은 메르브의 유적이 한눈에 들어온다. 성벽 높이가 100미터를 넘는다면 쌓는 것도 보통 기술이 아니다. 당시의 첨단기술이 총동원됐으리라. 또한, 거대한 성벽은 황량한 대지 위에 산처럼 우뚝 솟아 그 자체만으로도 위력을 발산했을 것이다.

7세기 사산조 시대까지 약 1000년을 지탱해온 게오르 카라는 불교 유물 여러 점이 발견된 곳으로 유명하다. 이곳에서 발견된 불두(佛頭)를 보면 헬레니즘 미술이 융합된 간다라 불상이다. 실크로드가 이르는 오아시스마다 동서양의 문화가 융합돼 또 하나의 새로운 문화를 창조했던 것이다.

그레이트와 키즈 카라는 6세기에 만든 이슬람 초기 궁전이다. 높이 15미터 성벽을 수직으로 주름잡듯이 쌓았다. 이는 재료를 절약하고 태양의 복사열을 막기 위해 고안한 건축기법으로 헬레니즘 건축문화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또한, 이 카라는 실크로드 중개지로서 이름이 높던 메르브를 대표하는 건축물이다.

대상(隊商)뿐만 아니라 군인, 악단, 학자, 종교인 등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사막 가운데 우뚝 선 그레이트 카라를 오가며 자신의 꿈과 소망을 이루었으리라. 독특한 건축기법과 웅장한 모습을 자랑하는 그레이트 카라. 오매불망 사진으로만 그리워하다가 이렇듯 직접 와서 바라보니 ‘고귀한 메르브’ 시절의 낭만적 가객(歌客)이 된 듯 감회(感懷)가 깊다.

마리박물관과 독보적인 유물들

셀주크의 전성기를 이끈 술탄 산자르 영묘

술탄 산자르(1118-1157) 영묘(靈廟) 또한 빠뜨릴 수 없는 유적지다. 술탄(sultan)은 이슬람국가의 왕을 말한다. 술탄 산자르 영묘는 하루 종일 걸어도 영묘의 돔이 보일 정도로 거대한 건축물이었다고 하니, 셀주크시대의 전성기를 구가한 그의 권세가 어떠했는지 가히 짐작되고도 남는다.

여행을 하다보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일정은 정해져 있는데 볼 것은 많기 때문이다. 유적마다 그것이 차지하는 비중에 맞게 시간을 투자하지 못하고 매번 간략하게 답사를 마치니 더욱 그렇다.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이 메르브 유적을 훑어보고 마리박물관을 들렀다. 찬란했을 고대 문명의 면모를 박물관에서나마 느낄 요량이었다.

마리박물관은 게오르 카라에서 발굴한 불상뿐 아니라 인근 유적지에서 발굴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어둡고 낡은 전시실이나, 카메라는 쉴 틈이 없다. 진열된 유물들은 가히 독보적이어서 우리나라 국립박물관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다.

사회주의 체제 유지에 따른 정치적 고립, 경제자립도의 미약함에 따른 산업후진국을 면치 못하고 있지만, 수천 년을 축적해온 역사적 보배는 문화선진국이 되고도 남음이 있으리니 부럽고 또 부러울 따름이다. 특히, 직물관에 전시된 물레와 3000년 전에 만들었다는 맷돌은 우리가 사용했던 것과 똑같다. 모방(模倣)은 창조의 어머니라고 했던가. 전파(傳播)와 모방으로 새로운 문명의 창출(創出)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흡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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