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선미 인천여성회 회장

[인천투데이] 최근 뉴스를 도배하고 있는 버닝썬 게이트, 정준영, 그리고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거제도 조선소 성폭행 피해자입니다’ 모두 디지털 성범죄가 표면에 떠오른 사건이다. 성범죄로 얼룩진 현실에서 몇몇 범죄자를 처벌한다고 해서 디지털 성범죄의 일상화가 줄어들 수 있는지, 의문이다. 무엇부터 어떻게 바꿔내야 할지 막막하다.

‘거제도 조선소 성폭행 피해자’의 청원 글을 보면 괴롭다. 직장 상사이자 연인이었던 남자에게 3년간 불법촬영을 당했고, 그 영상물이 다수에게 유포됐다는 내용이다. 남자가 몰래 촬영한 것을 알고 지우라고 항의하면, 자기만 보고 지우겠다고 약속했단다. 그런데 이 부분이 재판에서 문제가 됐다. ‘강하게 거부하지 않았으면 묵시적 동의’이고, 법에서는 ‘묵시적 동의도 동의’라고 인정한단다. 피해 여성은 지금도 배신감과 불안에 떨며 사람들이 알아볼까봐 일상을 유지하는 것도 어렵다는데 말이다. 불법촬영과 유포, 사이버 성적 괴롭힘 등 디지털 성범죄 피해는 일상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양진호 사건’ 이후 한 방송에서 웹하드 카르텔을 집중 보도했다. 그동안 웹하드에서 불법 음란물이 유통돼도 필터링업체가 제대로 걸러내지 않았고, 피해자로부터 유료로 삭제 의뢰를 받은 디지털 장의업체의 수익을 서로 나눠 갖는 등, ‘웹하드-필터링-디지털 장의업체’ 간에 카르텔이 형성됐다. 더 끔찍한 것은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의 죽음 이후 유작으로 포장돼 다시 업로드 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다운로드해 보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권미혁 국회의원은 이른바 ‘웹하드 카르텔 방지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먼저 사전 대책으로서 기술적 조치 강화로 불법 촬영물이나 저작권을 허가받지 않은 영상물이 웹하드 사이트에 못 올라가게 업체의 필터링을 의무화했다. 이어서 즉시 삭제로 피해자 보호를 강화했고, 끝으로 가해자 처벌 강화로 범죄 수익 몰수와 추징을 강화했다. 이 법안이 발의된 지 110일이 넘었고, 그 사이 디지털 성범죄는 계속 발생하고 있다.

정부도 올해 1월 불법 음란물 유통 근절을 위한 웹하드 카르텔 방지 대책을 발표했다. 웹하드 카르텔 주요 가담자를 구속 수사하고 각 지방경찰청 사이버 성폭력 수사팀을 중심으로 웹하드 카르텔이 근절될 때까지 집중 단속한다고 밝혔다.

얼마 전 인천경찰청에서 진행한 ‘불법촬영, 데이트폭력 등에서 사회적 약자 보호를 강화하기 위한 간담회’에 다녀왔다. 사회적 범죄에 대응하기 위한 여러 대책을 세워내는 과정이었다. 간담회에서 사례로 보여준 불법촬영용 초소형 카메라는 참가자들을 경악하게 했다. 음료수병, 안경, 화분 등에 숨겨놓을 수 있을 정도다. 누구든 당할 수밖에 없다. 방지 대책이 실행되고 있지만, 범죄는 더 횡행하고 있다.

‘계단을 올라갈 때는 가방으로 치마를 가리라’는 지하철 광고가 있었다. 범죄자들에게 경고하고 주의시켜야지 왜 피해 대상자에게 조심하라는지 항의가 쏟아졌다. 그 후 광고는 ‘불법 촬영은 범죄’라는 내용으로 교체됐다. 이렇게 사람들의 관심과 적극적 요구가 변화를 만들어낸다. 법과 제도 개선과 정부의 적극적 대응이 필요한 동시에 사회적 인식 개선에 모두 함께해야한다. 좋지 않은 토양에 씨 뿌리고 잡초 몇 개 뽑는다고 훌륭한 열매를 맺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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