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투데이 심혜진 시민기자]

돌무더기 틈에 핀 민들레. 최근 동네에 들어서고 있는 작은 책방을 볼 때마다 민들레꽃이 떠오른다. 자본과 규모로는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는 대형 서점과 인터넷 서점 틈에서 자신만의 색깔로 존재를 드러낸 작은 책방은 동네 풍경을 바꾸고 주민의 삶에 빛과 향기를 더한다. 하루하루 책을 팔아 생존을 이어나가기에 여념 없는 인천의 작은 책방들. 마지막으로 강화의 책방 두 곳을 소개하며 연재를 마친다.

딸기책방 (강화군 강화읍 동문안길 33)

딸기책방 실내 모습

강화군청과 가까운 골목길에 연파랑 지붕과 창틀이 시선을 사로잡는 단층 건물이 있다. 자세히 보면 건물 오른쪽에 빨간 간판이 보인다. 박종란, 위원석 두 사람이 작년 3월 문을 연 ‘딸기책방’이다.

둘은 각각 25년 넘게 출판 디자인과 편집 일을 했다. 출판사가 있는 서울과 경기도 파주에서 지내다 2007년 강화에 들어온 건 좋은 환경과 저렴한 땅값 때문이다. 위원석 대표는 건강상 이유로 작년에 직장을 그만둔 뒤 강화에 출판사를 차렸다. ‘딸기책방’은 책방 이름이면서 출판사 이름이기도 하다.

“출판사를 하게 되면 이름을 ‘딸기’로 하자고 오래 전부터 농담처럼 말해왔죠. 출판사 이름이 좀 무겁고 폼나는 게 많은데 우린 경쾌한 느낌으로 하고 싶었어요. 도서출판 딸기, 딸기출판사 등 여러 이름을 놓고 고민하던 중 지인이 ‘딸기책방’ 어떠냐고 하더라고요.”

출판사 이름을 ‘딸기책방’으로 하고 나니 정말 책방을 해도 될 것 같았다. 어차피 출판사 사무실이 필요할테니 사무실을 책방으로 꾸미는 것도 적당했다. 출판사 사무실과 책방을 겸하는 공간은 두 사람이 오랫동안 작업해온 분야인 그림책과 그래픽 노블(만화와 소설의 중간 형식을 취하는 작품) 위주의 책들로 채웠다.

동네 사람들로부터 ‘책방이 들어선 뒤 골목 분위기가 밝아졌다’는 이야길 자주 듣는다.

“원래 여기가 막걸리집이었대요. 책방을 연 뒤로 아이와 엄마들이 자주 왔다 갔다 해서 그런지 골목이 예뻐졌다고 좋아하시더라고요. 이런 이야기 들을 땐 기분이 좋죠.”

문을 열고 1년이 지나는 동안 ‘딸기책방’ 출판사 이름으로 그림책 두 권과 만화책 세 권을 출간했다. 이들은 책을 출간할 때면 “세상에 나올 가치가 있는 책인지” 늘 생각한다.

“책을 만드는 의의가 분명한가, 이걸 중요하게 생각해요. 한 권의 책이 세상에 나올 땐 독특한 이유가 있을테고, 그걸 강조하는 게 편집이라 생각해요. 따뜻하고 재밌고 소통할 수 있는 책을 만들려고 노력하죠.”

한편, 책방에서는 판매하지 않는 그림책 여덟 권도 세상에 나왔다. 책방에서 기획한 그림책 워크숍으로 주민들이 만든 책들이다. 3개월 동안, 평소 거의 그림을 그려본 적 없는 주민 여덟 명이 워크숍에 참여해 어엿한 그림책을 만들었다.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모여 각자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고 직접 그린 그림으로 책을 만드는 과정은 놀라움 자체였다.

“그림을 그려서 누구에게 보여주는 걸 언제 해봤겠어요. 어릴 때 해보곤 안 해본 일이니 다들 선뜻 그림을 못 그리시더라고요. 그러다 한 사람이 시작하니까 다른 분들도 용기 내시더니 서로 칭찬하면서 정말 빠져들어 열심히 하셨어요. 같은 그림을 여섯 번이나 그린 분도 있었어요.”

딸기책방 대표 이원석, 박종란 씨

그림책 워크숍을 올해도 이어갈 생각이다.

지역 주민들과 타지에서 온 관광객들이 골고루 책방에 들른다.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뭐든 편하게 집에서 받아볼 수 있는 ‘택배 천국’에 살면서도, 굳이 책방에서 책을 주문하고 직접 들러 찾아가는 주민이 꽤 많다.

“우리 책방이 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웃음) 이런 공간이 계속 유지되길 바라시는 거죠. 또 택배로 받는 것과 이곳에 와서 책을 받아가는 거랑 기분이 다르기도 하잖아요.”

올해 책방에선 작가와 만남과 책모임 등, 책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들을 운영할 계획이다. 곧 출간할 그림책도 한창 작업 중이다. 큰 수익이 없더라도 “밥만 먹을 수 있으면” 책방을 쭉 이어갈 생각이다.

“우리가 살면서 늘 행복하고 평화로울 순 없잖아요. 사람들이 책방에 머무는 동안 편하고, 즐겁고, 재미를 느꼈으면 좋겠어요. 책이 있는 공간에서 차도 한잔 마시면서 잠시라도 행복감을 느꼈으면 해요.”

뭐니 뭐니 해도 이들에게 가장 큰 감동과 웃음을 주는 건 아이들 고객이다.

“미취학 아이들과 함께 책방에 오는 분 중에서 ‘우리 애가 가자고 해서 왔어요’ 하시는 경우가 많아요. 우리도 각자 취향이 있듯이, 아이들도 자기에게 만족스러운 공간이 있고 그 공간을 누리고 싶은 욕구가 있더라고요. 그런 아이들은 책을 꼭 여러 권 사달라고 졸라요. 뭔가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 같아요(웃음). 이공간에서 한 경험이 아이들이 책을 가까이 여기고 즐기는 계기가 된다면 정말 좋죠.”

박 대표의 말을 받아 위 대표가 일화를 소개했다.

“말을 잘 못하던 어린 아이였는데 ‘민준이 왔어?’ 하면서 눈높이를 맞춰주니까 갑자기 와락 안기는 거예요. 아, 이렇게 늙어도 괜찮겠다, 이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동네 책방아저씨로 나이 들어도 괜찮겠다 싶더라고요.”

* 책방 주인장이 추천한 책

이야기 기다리던 이야기 | 마리안나 코퍼 지음, 레지나 옮김 | 딸기책방 펴냄

새하얀 종이에 사랑스런 주인공들이 나타났다. 자신들이 책 속에 있다는 걸 깨닫고 이야기를 기다린다. 하지만 기다려도 이야기는 오지 않고 주인공들은 궁금해 한다. 이 책은 이야기를 기다리고 이야기를 만드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우리는 모두 작가’라고 말한다.

묵호의 난, 1374 제주 | 정용연 지음 | 딸기책방 펴냄
제주 4.3사건 같은 일이 고려시대에도 제주에서 일어났다. 잊지 말아야 할 숨겨진 제주의 역사를 담은 그래픽노블이다. “이 책을 읽으면 제주가 다시 보일 거예요. 다음 제주행 비행기를 타기 전에 꼭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국자와 주걱 (강화군 양도면 도장리 682)

책방 '국자와 주걱' 외부 모습

초지대교에서 전등사를 지나 차로 5분여 달리면 책방 ‘국자와 주걱’이 나온다. 김현숙 대표가 2016년 문을 연 책방이다. 오랜 도시살이 끝에 2007년 강화에 온 건 “수백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냥 오고 싶어서”였다.

“돈이 많으면 도시에서 누리며 살겠죠. 얼마나 편해요. 문화생활도 하고. 도시는 참 좋은 곳이더라고요. 너무 풍요로운 거예요. 근데 돈 있는 사람이나 그렇게 할 수 있는 거고, 시골은 돈 없는 내가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곳이죠. 집값이 도시와는 비할 수 없이 쌌거든요.”

김 대표가 이곳에 올 때만 해도 책방을 열 계획은 없었다. 도시에서 가져온 이삿짐엔 책이 많았다. 늘 책과 함께해온 삶이었다. 책을 좋아하는 그에게 책방을 열면 좋겠다고 말한 지인이 있었다.

“여기서 먹고 살아야하니까 책방을 한 거죠. 내가 책을 좋아하고, 책 팔다 남으면 내가 보면 되고. 나중에 도서관에 기증하면 되잖아요.”

도시만큼 인구밀도가 높은 곳도 아니고 유동인구도 거의 없는 시골 마을에서 책방으로 먹고 산다는 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일 수 있다. 그는 책방을 열면서 동시에 남는 방을 손님들이 하룻밤 책과 함께 머물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 북스테이를 시작했다. 책방에선 한 달에 한 번 작가를 초청해 작가와 만남을 열고 가수를 초청해 공연도 했다.

책방 '국자와 주걱' 실내 모습

‘엊그제 시작한 것만 같은 책방이 어느덧 1년 하고도 반이 지났다. 서너 달에 걸쳐 집안 살림을 모조리 정리하고 시골집 좁은 마루에 책장을 짜서 들여놓았다. 책을 채워야 하는데 암담했다. 어디서 책을 사야 하는지, 어느 곳이 더 싸게 주는지, 작은 책방과 거래를 틀 서적도매상이 있는지 등등. 게다가 돈도 없었다. 그런데 이곳저곳에서 불쑥불쑥 책을 보내왔고, 책장에 책이 채워지자 사람들이 드나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갈 때는 절대 빈손으로 가는 법 없이 책을 사서 들고 갔다. 사람들이 찾아온다고는 하지만 꼬불꼬불 구석진 시골 마을에 근사한 간판 하나도 없는 한적한 시골 책방. 이웃에 사는 시인이 책방 이름을 지어주었고, 어떤 손님은 하얀 벽에 붓글씨로 책방 이름을 써주었다. 그러니까 책방 이름도 짓기 전에 손님들이 오기 시작했고, 그들은 작고 보잘것없는 ‘국자와 주걱’을 아끼고 사랑해주었다.‘

김 대표가 <한국일보>에 기고한 글이다. ‘국자와 주걱’은 평소 알고 지내던 이웃 함민복 시인이 지어주었다. 각자 사용하는 숟가락, 젓가락과 달리 ‘국자와 주걱’은 퍼주고 나누는 도구다. 책방이 지식을 넘어 삶과 정을 나누는 공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

그의 바람처럼 이곳엔 책이 좋아서 왔다가 다른 무언가에 끌려 단골이 된 사람이 많다. 기자가 찾아간 날 이곳에서 만난 이는 “주인장 때문에 와요. 책은 어디에나 있잖아요. 근데 여기 책은 좀 특별해요. 주인장의 손길과 숨결이 녹아들어 있어서 같은 책이어도 다른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책을 더 잘 들여다보게 돼요.”

김 대표의 바람은 한 가지, 장소의 의미를 나눌 수 있는 이들로 공간이 채워지는 것이다.

“책방이 아니라 반찬가게를 했어도 이렇게 공유하는 문화공간으로 꾸몄을 거예요. 우리 집은 구석에 있고 집 자체가 편리하고 좋은 집이 아녜요. 그 불편함을 좋아하는 사람들, 좋은 책과 함께 쉬면서 이 공간을 깊이 느끼고, 공간에 공을 들인 주인의 마음을 헤아리고 존중하는 분들이 오셨으면 좋겠어요. 대신 책은 사 가셔야죠.(웃음)”

언제까지 이 책방을 할지, 김 대표는 묻지 말라고 했다.

“계획을 세우면 계획대로 되나요? 하기 싫을 때 그만할 거고 그건 아무도 모르죠. 불안할 게 뭐가 있어요. 그냥 재밌게 살면 돼요.”(‘국자와 주걱’ 북스테이 예약 : 010-2598-3947)

* 책방 주인장이 추천한 책

다라야의 지하비밀 도서관 | 델핀 미누이 지음, 임영신 옮김 | 더숲 펴냄
한 달에 600여 차례의 폭격이 쏟아지는 곳, 8년간 35만 명이 넘는 사망자와 1000만 명 이상의 난민을 낳은 시리아 내전의 중심 도시 다라야. 독재의 포탄에 맞서 지하에 도서관을 지은 젊은 청년들의 이야기를 다룬 실화. 저자가 2년에 걸쳐 이들과 대화한 기록이 담겨 있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 | 보후밀 흐라발 지음, 이창실 옮김 | 딸기책방 펴냄
버려진 폐지를 압축하다가 우연히 지식의 세계로 빨려들어간 노인이 뜻하지 않게 현자가 된다. 책과 ‘나’를 한 몸으로 만드는 방법을 찾아간다는 내용의 소설로 노동하는 인간의 사색을 잘 표현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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