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조양방직과 도시재생
[세상읽기] 조양방직과 도시재생
  • 인천투데이
  • 승인 2019.03.25 10: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홍인희 인천문화재단 인천역사문화센터 연구원
홍인희 인천문화재단 인천역사문화센터 연구원
홍인희 인천문화재단 인천역사문화센터 연구원

[인천투데이] 작년 강화군 신문리에 문을 연 조양방직이 요즘 이른바 ‘핫플레이스’다. 이곳은 폐 방직공장을 리모델링해 만든 빈티지 분위기 카페다. 조양방직은 일제강점기에 문을 열었는데, 80여년이 지났지만 당시 건물이 상당히 남아 있다. 옛 소유주는 이곳을 고물상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폐허로 남아있던 조양방직은 카페로 탈바꿈하면서 화려했던 그 시절로 돌아갔다. 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텔레비전 방송에 다수 출연했다. 게다가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 이곳을 찾는 사람은 나날이 많아지고 있다. 기존 건물의 골조 등을 그대로 활용해 노출하고, 추억 가득한 옛날 물건을 가져다 놓아 마치 미술관을 방불케 해 사람들의 이목을 끈다. 덕분에 평일은 물론이고 주말에는 주차장에 차가 못 들어갈 정도로 붐빈다. 음료를 주문하려면 50m 줄은 예사로 서서 기다려야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조양방직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방직공장이다. 1936년 강화 지주였던 홍재묵, 홍재용 형제가 설립했다. 건축연면적 700여 평의 2층 건물을 세우고 일본 나고야, 오사카 등에서 기계 50대를 수입했다. 자본금 50만 원(불입자본금 12만5000원)으로 시작했으며 주로 인조견을 생산했다. 홍씨 형제는 경영이 어려워지자 1942년, 일본의 미쓰이(三井) 기업에서 일하던 이세현에게 조양방직을 20만 원에 인도했다. 그 후 1958년에 폐업했다.

조양방직을 설립한 홍씨 가문은 강화도에서 이름난 유지였다.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토지는 강화도 땅의 상당 부분이었고, 이러한 토지 자본과 고리대자본이 일제강점기 산업자본으로 전환하는 대표적 과정이라고 본 학자도 있다. 조양방직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지만 그 과정은 우리 역사에서 의미가 있으며, 강화 직물산업에 보탬이 됐다.

‘조양방직’이라는 이름의 카페가 생기기 전까지 그곳이 조양방직이 있던 곳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카페가 인기를 끌면서 조양방직을 조명해보는 기사도 나오고, 이전에 생기긴 했지만 평화직물을 활용한 소창체험관, 심도견직, 십자당, 이화견직, 경도직물 등 강화 직물산업 역사에 관심이 많아져 재조명되고 있다. 이쯤 되면 조양방직은 20세기에는 직물산업으로 강화의 산업을 이끌고, 21세기에는 관광객을 맞이하면서 강화 직물 역사까지 재조명하게 하는 효자가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옛 건축물을 헐어 새로 짓지 않고 기존 건물을 활용해 새로운 기능으로 탈바꿈하는 곳이 많아졌다. 그런 곳이 대중들에게 인기를 끌고, 도시재생이 현 정부의 국책사업과 맞물리면서 더욱 활기를 띠고 있다. 옛 건물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이 가지는 역사까지 활성화된다면 그것은 참 좋은 방향이다.

하지만 단순이 옛 건물을 리모델링해 카페로 활용하고 거리를 예쁘게 해서 관광객이 많이 오게 하는 것이 끝은 아닐 것이다. 옛 건물이 있고, 그 건물을 활용한 장소가 있고, 그 곳을 이용하는 동네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살수 있는 집이 있고, 그 사람이 다닐 직장이 있고, 주말이나 여가시간에는 그 옛 건물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관련 세미나, 책, 자료 등을 함께 찾아볼 수 있는 행사까지 이어져야한다고 생각한다. 리모델링, 사람, 주거, 일자리, 이야기가 함께하는 것이 도시재생의 완성이다. 이것이 모두 갖춰질 수 있게 함께 노력해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