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의 말들] 시이저의 용기를 가진 한 여자의 영혼
[그림의 말들] 시이저의 용기를 가진 한 여자의 영혼
  • 문하연 시민기자
  • 승인 2019.03.25 10: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하연 시민기자의 그림의 말들 -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인천투데이 문하연 시민기자]

‘수산나와 두 노인들’

수산나와 두 노인 | 1610년경.
수산나와 두 노인 | 1610년경.

벌거벗은 여인이 고개를 돌리고 위의 남자들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검은 머리 남자는 빨간 망토의 남자에게 귓속말을 속삭이고 빨간 망토의 남자는 여인에게뭔가 말을 전하고 있다. 여인은 진저리를 치고 있다. 이 작품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1593-1652)가 그린 ‘수산나와 두 노인들’이다. ‘수산나와 두 노인들’은 성서에 나오는 이야기다.

수산나와 요아킴은 유대인 부부다. 남편 요아킴이 유명인사라 집에 많은 사람들이 방문했는데 유대인 재판관 두 명이 포함돼있었다. 이 두 재판관은 호시탐탐 수산나를 탐하려고 엿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손님들 모두 돌아가고 수산나가 정원에서 목욕하는 장면을 본다. 두 노인은 수산나에게 다가가 성관계를 요구하며 만일 거절할 경우 ‘젊은 남자와 간통했다’고 고발하겠다고 협박했다. 수산나는 거짓이 두려워 겁탈을 당하느니 죽음을 택하겠다며 거절했고, 결국 이들의 모략으로 간통죄로 사형선고를 받는다. 사형장으로 끌려가던 중 수산나는 하느님께 기도했다. 성령이 어린 다니엘의 몸에 내려와 다니엘이 진실을 밝히고 수산나의 누명이 벗겨진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수많은 화가들에 의해 복제됐다. 여자의 누드가 금지된 당시, 성경의 이야기를 매개로 여자의 누드를 그릴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정원 풍경 속 여자의 누드는, 그림을 매입하는 사람도 그리는 사람도 모두 남자인 사회에서 흥미와 가치가 있었다. 그러니 희생자인 수산나의 고통은 고려되지 않은 채 남자 화가들에 의해 두 노인을 유혹하는 여자로, 때로는 두려움에 떠는 연약한 모습으로 재현됐다. 하지만 아르테미시아가 그린 수산나는 이 상황이 몹시 불쾌하다. 여자의 누드에만 초점이 맞춰진 다른 그림들과는 달리 이 그림은 수산나가 느끼는 수치심과 저항감이 온몸으로 드러나 있다.

검은 곱슬머리의 남자가 노인이 아닌 이유

홀로페르세우스의 목을 치는 유디트 | 1614-1620 | 우피치미술관.
홀로페르세우스의 목을 치는 유디트 | 1614-1620 | 우피치미술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아버지는 당대 거장 카라바조의 영향을 받은 유명화가 오라치오 젠틸레스키다. 아르테미시아의 어머니는 그가 일곱 때 남동생 셋을 남긴 채 눈을 감았고, 아버지 혼자 네 남매를 키웠다. 미술학교 입학은 남자들의 전유물이던 시절, 그는 아버지 밑에서 물감을 섞고 안료를 빻으며 자연스레 미술을 배웠다. 그림에 뛰어난 재능을 보인 그가 17세에 그린 그림이 ‘수산나와 두 노인들’이다. 물론 아버지의 도움을 받았을 거라 추정된다.

아르테미시아는 다른 화실의 견습생인 기로라모 모데네제와 서로 연정을 품고 있었다. 남몰래 아르테미시아를 탐하던 아버지의 친구이자 화가인 아고스티노 타시가 사사건건 이들을 방해했다. 아르테미시아가 그린 ‘수산나와 두 노인들’에서 제목과 다르게 검은 곱슬머리의 남자가 노인이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르테미시아는 수산나의 모습에 자신이 느끼는 불쾌감을, 두 노인 중 한 명의 모습에 자신을 탐하는 타시의 모습을 그려 넣었다.

악연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타시는 당시 오라치오와 퀴리날레 궁 추기경회실에 프레스코화를 공동 제작 중이었다. 타시는 오라치오에게 딸의 그림선생이 돼주겠다고 제안한다. 원근법에 능했던 타시가 그를 지도해준다면 더할 나위없겠다고 생각한 오라치오는 그 제안을 받았고 타시는 그의 스승이 됐다. 수업을 핑계로 아르테미시아와 자연스레 만날 일이 많아진 타시는 마침내 그를 겁탈한다. 타시는 유부남이었지만 그와 결혼을약속하며 그를 다독였고, 순결을 잃은 여자에게 다른선택은 없었다. 몇 달을 더 그를 농락한 후에야 타시는 결혼 의사를 철회했고, 이 사실을 알고도 참아온 오라치오는 그를 강간죄로 고소한다.

알고 보니 타시는 상습범이었다. 그의 아내도 강간해서 그 죄를 모면하기 위해 결혼했고, 아내의 여동생(13세)도 강간해 임신을 시켰다. 당시는 아내의 여동생과의 성관계도 근친에 해당해 벌을 받았다. 이걸 피하기 위해 타시는 아내를 죽이고 처제와 결혼하기 위해 아내의 청부 살해를 의뢰한다. 그리고 그 와중에 오라치오의 그림을 훔치려던 계획이 탄로 났다. 놀랍게도 이게 실화냐 싶지만 때때로 현실은 드라마를 앞선다.

재판이 시작됐다. 재판의 쟁점은 타시가 ‘그를 강간했느냐’가 아니라 ‘그가 순결했느냐’였다. 여성의 순결만이 재산으로 간주되던 때였다. 그는 자신의 순결을 입증하기 위해 산파들 앞에서 부인과 검사를 받아야했고, 그의 말이 진실임을 입증하기 위해 타시와 대질 상태에서 ‘시빌레’라는 모진 고문을 견뎌야했다. 이것은 손가락 마디가 으스러질 때까지 조이는 고문으로, 고문이 끝났을 때 그녀의 손은 시퍼렇게 부어올라 마비됐다. 견디기 힘든 고통을 이기고 증언을 바꾸지 않으면 그 말은 진실로 입증되는 당시의 관례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아르테미시아는 풀려났고, 타시의 유죄가 확정됐다. 어이없게도 타시의 후원자들이 힘을 행사해 타시는 금세 풀려난다. 그림 좀 그리는 남자 화가들에게 세상은 한없이 너그러웠다.

‘홀로페르세우스의 목을 자르는 유디트’

이 사건 후 아르테미시아는 ‘홀로페르세우스의 목을 자르는 유디트’를 그렸다. 유디트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인물로 아시리아로부터 민족을 구한 유대의 영웅이다. 아시리아의 장수 홀로페르세우스의 군대가 쳐들어오자 남편을 사고로 잃은 젊은 유디트는 하녀를 데리고 적진에 들어가 장군을 유혹하고, 잠든 사이 그의 목을 베어 고향으로 돌아와 고향 베툴리아를 해방시킨다는 이야기다. 이 극적인 이야기는 카라바조, 루벤스와 같이 바로크시대 미술가들이 즐겨 그리던 주제다. 다른 작품들과 달리 아르테미시아가 그린 유디트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남자를 유혹해 함정에 빠뜨리는 여자’ 유디트는 보는 남자들의 입맛에 맞게 재생돼왔다. 살인을 저지르기에는 유약한 자세에 ‘아무것도 몰라요’ 하는 순진한 얼굴이거나, 장군의 목을 베면서까지 관능적 표정을 짓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아르테미시아가 표현한 유디트는 단호하다. 자신의 사명을 잘 알고 있으며, 망설임이 없다. 그리고 놀라우리만치 사실적이다. 장군을 꼼짝할 수 없게 위에서 짓누르는 하녀를 보자. 저 정도의 압박이 아니면 장수를 당할 수 없다. 그리고 유디트의 힘이 잔뜩 들어간 팔뚝과 장군의 목에서 솟구치는 동맥혈.

아르테미시아는 홀로페르세우스의 얼굴에 타시를 그려 넣고 유디트에 자신의 얼굴을 넣었다. 이렇게라도 표현하지 않으면 죽을 듯이 괴로웠으리라. 그의 절망과 고통과 분노가 얼마큼 극에 달했는지 작품에 고스란히 투영돼있다. 아르테미시아의 아픈 서사를 보여주는 이 작품은 감히 다른 작품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하다.

‘야엘과 시스라’와 ‘루크테리아’

야엘과 시스라 | 1620 | 부다페스트 쳅무페스제티 박물관.
야엘과 시스라 | 1620 | 부다페스트 쳅무페스제티 박물관.

오라치오는 재판이 끝나고 한 달 만에 아르테미시아를 피렌체에 살고 있는 피에트로 안토니오 스티아테시와 결혼시킨다. 피에트로 역시 화가였다.

하지만 실력은 미미해 견습생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고, 낭비가 심해 빚더미에 앉아있었다. 그의 빚을 청산해주는 조건으로 아르테미시아는 그와 결혼했다. 도망치듯 결혼했지만 다행히 피렌체로 간 아르테미시아는 짧은 시간이지만 인생의 행복을 맛보았다. 둘은 서로에게 푹 빠졌다.

피에트로는 자신의 소비를 충족시킬만한 돈을 마련할 목적으로 아르테미시아를 전면에 내세웠다. 이름도 지난날의 아픔을 지우고자 ‘아르테미시아 로미’로 바꿨다. 피에트로는 주로 주문을 받아왔고, 아르테미시아는 그림을 그렸다. 아르테미시아의 이름이 알려지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르테미시아는 초상화나 정물화는 물론 역사의 위대한 여인들의 싸움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그들을 표현했다. 유디트와 야엘 같은 성경 속 여성 영웅들. 그리고 루크레티아와 클레오파트라와 같이 자신들의 최후는 자신들이 결정하는 여자들.

대표적인 그림이 ‘야엘과 시스라’다. 구약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시스라 장군이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패하고 도망치던 중 야엘이 시스라를 그의 천막으로 불러 안심시킨다. 시스라가 잠들자 야엘은 장막을 치는 못을 그의 관자놀이에 박아 그를 죽인다. 야엘은 여호와의 적을 처단한 대담한 영웅으로 칭송된다. 영화 ‘추격자’를 만든 나홍진 감독은 이 그림을 알지 않았을까. 적을 처단하는 그의 표정에 허둥거림이나 두려움은 없다.

아르테미시아는 권력가 남성에게 성폭행 당한 후 그 사실을 남편에게 고하고 원수를 갚아줄 것을 당부한 후 스스로 자결하는 ‘루크테리아’도 그렸다. 이는 고대 로 마사에 나온 이야기다. 이 그림은 아르테미시아의 분신이며 자화상으로 읽힌다. 타시가 그의 욕정을 채우기 위해 저지른 행동이 평생 그의 가슴에 어떻게 남았는지를 그는 그림들로 말하고 있다.

그림으로 악몽을 떨쳐버리다

루크레티아 | 1621 | 제노바 카타네오 아도르노 궁전.
루크레티아 | 1621 | 제노바 카타네오 아도르노 궁전.

결혼 후 아이 다섯을 낳았으나 영아 사망률이 높았던 그 시절, 딸 푸르덴지아만 살아남았다. 아르테미시아는 카사 부나로티의 청탁으로 왕실 화가가 되고, 메디치 가문과 찰스 1세의 후원을 받는다. 그리고 여성 최초로 예술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협회인 한림원의 회원이 된다. 그의 인기가 올라갈수록 피에트로는 자격지심에 휩싸여 그의 재능을 시기하고 그의 품행을 의심하며 급기야 그를 폭행한다. 고달프기 그지없는 여자의 일생이 눈물겹다.

결국 아르테미시아는 딸과 함께 로마로 돌아오고, 피에트로는 종적을 감췄다. 다행히 그는 그림으로 그를 억누르던 지난날의 악몽을 떨쳐버리고 날아올랐다. 28세에 여성 최초로 ‘법률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사회적 지위를 획득한다. 사별한 귀족 여자가 아니면 절대 가질 수 없는 각종 공증서류에 사인할 수 있는 권리. 그의 화실은 모든 사람들의 방문 코스가 됐고, 그의 그림은 로마, 나폴리, 피렌체를 넘어 영국 왕실까지 넘어간다. 59세에 눈을 감은 그는 어느 날, 그에게 그림을 의뢰한 고객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다.

“나는 여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줄 것입니다. 당신은 시이저의 용기를 가진 한 여자의 영혼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서적] 불멸의 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알렉상드라 라피에르, 함정임 옮김, 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