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대한민국 7호 제과명장, 안창현 안스베이커리 대표
일본 유학 시절 가업 잇는 전통 보고 느낀 점 많아
자연의 선물 ‘천연효모종’···삶이 더욱 건강해질 것

[인천투데이 류병희 기자] 제과명장을 만났다. 40년 넘게 빵을 만드는 대한민국 7호 제과명장 안창현(60). 어린 시절 그는 작은 아버지 집에 자주 갔다. 사탕과 과자 등을 만들어 파는 그 집에서 꿈을 키웠다. 그 꿈은 소박하지만 어쩌면 삶을 결정하는 중요한 문제였다. 빵을 만들 수 있으면 배고픈 삶을 이어가지 않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이었다.

그런 그가 2009년, 당시 50세 최연소로 대한민국 명장에 선정됐다. 1991년 인천 남동구 구월동에 터를 잡고 시작한 작은 가게가 이제는 직영점 아홉 개를 운영하는 큰 가게로 성장했다.

그는 인천에서 대를 이어 전통을 이어가는 빵집을 운영하고 싶다고 했다. 화학첨가물이 넘치는 시대에 ‘천연발효종’은 자연의 선물이라고 했다. 천연발효종을 20년간 이어오며 건강지키미로 나서고 있는 그를 안스베이커리 인천 연수점에서 인터뷰했다.

 안창현 안스베이커리 대표.

▶ 인천과 인연은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 인천에 온 것은 제빵 기술을 배우기 위해 일본을 다녀온 직후였다. 1991년인데, 친형과 의기투합해 남동구 구월동에 작은 빵집을 열었다. 자본금이 거의 없어 어려웠지만 꿈에 부풀어 있었다.

친형은 인천에서 거의 40년 정도 살았다. 가구공장에서 일하기도 했다. 형이 아니었으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보잘 것 없지만 내가 가진 재능과 기술을 알아보고 인천에서 함께 손을 잡았다.

▶ 제빵을 평생 업으로 여긴 이유

서울 남산 밑 해방촌이란 곳에서 자랐다. 먹고 살기 힘든 가난한 시절이었다. 굶은 적도 많았다. 초등학교 때는 정부에서 주는 옥수수 빵과 분유 덩어리를 먹었다. 맛은 없었지만 먹을 것이 없었다.

그 당시 작은 아버지께서 사탕과 과자 등을 만들어 장사하고 계셨다. 가끔 그곳에 가서 빵을 얻어먹었는데, 처음 먹었을 때는 어린 마음이지만 인생의 맛이랄까, 그런 것을 느꼈다. 그리고 ‘내가 이걸 만들면 최소한 굶고 살지는 않겠지’라고 생각했다. 그 때부터 막연하지만 빵 만드는 것을 업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빵은 내 인생에서 매우 매력적이고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 제빵을 본격적으로 배운 때는

고등학교 때부터 빵을 본격적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일찌감치 사회생활을 했다. 빵 만드는 곳에서 일했는데, 그곳에 있는 선배들이 빵과 관련한 책을 많이 봤다. 일본에서 나온 책인데, 물론 일본어라서 처음에는 그림만 봤다. 어깨 너머로 보면서도 많이 놀랐다. 그동안 보지 못한 빵들과 다양한 종류의 과자가 책에서 빛나고 있었다. 일본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배우려는 욕구가 점점 커졌다.

▶ 일본 유학은 언제

유학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일본에 가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해 기초적인 기술을 배우는 처지에서 쉽지 않았다. 가정형편도 어렵고 수중에 모아둔 돈도 없었다. 당장 실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어서 일본어를 독학했다.

실행에 옮긴 것은 서른 살에 접어들 때다. 결혼했고, 첫아이도 낳았다. 당시 제과학원에서 2년간 강사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문뜩 현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난 기술자이고 다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앞선 기술을 배우고 싶은 의욕이 가라앉지 않아 독하게 마음먹었다.

▶ 일본에서 생활은

쉽지 않았다. 1년 동안 있었는데 하루에 서너 시간씩 자면서 생활했다. 일하고 돈 벌어 생활비로 쓰고, 집으로 분유 값도 보내줘야 했다. 또 학비도 내고 배움도 이어가야 했기에 쉼이 없었다. 힘들었지만 일본에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일본은 기술과 관련해 장인정신이 있다. 사실 일본 하면 선입견이 있지 않나. 일제강점기에 우리에게 했던 억압과 수탈, 핍박 등. 그러나 인정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기술이다. 1년간 배웠는데, 국내에서 30년간 배운 것과는 차원이 전혀 달랐다. 그 기간에 배우면 얼마나 배웠겠나 하는데, 일본에 가지 않았다면 그냥 평범한 동네 빵집 주방장으로 지냈을 것이다.

일본에서 경험은 좀 특별했다. 2~3대를 이어 가족이 경영하고 후대까지 이어가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런 경우 잘 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검증됐다는 것이고, 전통과 기술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르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장사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런 면에서 느끼는 것이 많았다.

▶ 귀국 후 무얼 했나

일본을 다녀온 직후 친형과 구월동에 작은 가게를 냈다. 1991년이다. 구월동 가게는 우리 가게의 본점이다. 어려웠지만 자신감이 넘칠 때다. 기술에 대한 자부심과 지식, 경험, 가족들의 배려로 지금까지 이어왔다.

여기다 배움을 더욱 이어가고 싶었다. 단기 과정이지만 일본을 계속 왕래했고, 유럽에도 다녀왔다. 새로운 것들을 접하고 경험하면서 배움의 욕구가 더욱 커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러한 과정과 결정이 내 인생에서는 결과적으로 옳았던 것 같다.

▶ 현재 가게 규모는

안스베이커리 직원 수가 250명이다. 매장 아홉 개를 운영한다. 모두 직영이다. 연매출은 1인당 1억 원 정도로 보면 된다. 200억~300억 원 정도 연매출을 올리고 있다.

고용 창출을 많이 하려고 노력한다. 일과 학습을 병행할 수 있게 후학에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취업 성공 사례도 많다.

▶ 후학 양성은 어떻게

특성화고등학교 ‘멘토멘티’ 사업에 계속 참여하고 있다. 또, 수원여대에서 15년을 겸임교수로 강의했다. 앞에서 이야기했지만 학원 강사를 하기도 했고, 기술자로서 많은 곳에서 일을 하면서 관련 분야 후배들에게 도움을 줬다.

전문기술인은 오랜 연마 기간을 거쳐 습득한 기술과 지식을 후학들에게 나눠줄 수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며 40년 이상의 노하우를 후학들에게 기꺼이 나눠야겠다고 생각했다. 나 또한 배움의 욕구가 높았고, 어려웠기 때문이다.

▶ 사회공헌 활동은

기업은 사업을 키워서 성장한 만큼 지역사회에 환원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빵을 만들어 나눔 행사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푸드뱅크를 통해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또, 인천 초록우산과 협약해 일부 품목 판매수익의 일부를 기부한다. 포장에도 그러한 표기를 해 놨다. 사회적 약속이다. 함께 가야 멀리갈 수 있다. 앞으로도 좀 더 다양한 기부활동을 기획해 사회공헌을 늘려나갈 생각이다. 이것이 경영철학이다.

▶ 대한민국 명장으로 선정됐을 때 소감

2009년이다. 10년 전이니 50세가 됐을 때다. 명장이 되겠다는 생각은 특별히 하지 않았다. 당시 선배들이 조언하고 추천했기에 가능했다.

비교적 어린 나이였지만 활동을 열심히 했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훈장도 받고, 상장도 110여 개를 받았다. 세계 대회에서 우승을 10여 차례 해봤다. 무엇보다 지역 봉사를 200여 차례 다녔고 기술 발전에 공헌한 것을 잘 봐줬던 것 같다.

▶ 동종업계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어렵지 않았나

같은 업종에서 일하는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것은 물론 쉽지 않다. ‘저 사람이 무슨 명장이야’라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명장에 선정됐을 때 여러 지역에서 활동하는 선후배들이 화분과 난 등 150여 개를 보내줬다. 명예스럽게 생각했다.

후배들이 “선배님이 그렇게 되면서 희망이 생겼다. 목표가 생겼다. 우리도 한 번 도전해보겠다”라고 진심을 표현해줘, 매우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 이후로 많은 후배들이 명정에 도전했고, 결과도 좋았다.

견인효과라고 볼 수 있는데, 나는 욕을 안 먹고 산다. 아직도 다른 지역에 출장가면 대우를 잘 받는 편이다.(웃음)

▶ 천연발효종이란

맛있는 한식이나 전통음식을 파는 곳은 김치를 담가 묵은 지를 내온다든지, 된장과 간장 등을 오랜 세월 발효시켜 사용한다. 우리는 천연발효종을 만든 지 20년 가까이 됐다. 일종의 ‘씨 간장’이라고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천연발효는 자연이 준 선물이다. 흙, 공기, 나무, 꽃, 과일, 곡식 등에는 미생물이 존재한다. 즉, 천연발효라는 것은 자연에 존재하는 미생물을 이용해 기술적으로 적정한 환경을 조성하고 빵에 맞는 상태로 배양하는 것을 뜻한다. 주재료는 밀가루와 물, 공기, 정성이다.

시골에서 된장을 만들 때 콩을 삶아 덩어리로 만들어 보관한다. 메주는 시간이 지나면서 발효ㆍ숙성되고, 그 안에는 매우 다양한 미생물들이 서식한다. 향을 내거나 맛을 내는 등, 미생물들의 복합적 작용에 의해 더욱 오랜 시간을 숙성하면 깊은 맛이 난다.

빵도 그와 같다. 반죽해 놓아두면 그 속의 미생물과 공기 중 미생물들이 어울려 조금만 지나도 변화를 일으킨다. 미생물들이 전분을 분해하면 당이 나오고, 당은 미생물들의 먹이다. 미생물들이 번식하면서 발효가 되고, 향이 나면서 맛을 내는 것이다. 이런 과정이 이어지면서 일부를 제품으로 만들어 팔고, 다시 새로운 먹이 환경을 만들어주면서 오래 유지할 수 있다. 우리는 20년을 이렇게 해왔다.

▶ 빵을 만들면서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것

정성과 기다림이다. 그 다음이 좋은 재료와 환경이다. 급하면 질적으로 떨어지게 돼있다. 천천히 진행하는 과정에서 깊은 맛이 나게 된다.

오랜 숙성을 거치지 않으면 소화 흡수에 도움이 안 된다. 왜냐하면 미생물들이 탄수화물을 분해하는데, 더 오랜 시간을 분해하면 우리 몸에서 소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제대로 분해되지 않은 채 섭취하면, 몸속에 탄수화물이 들어왔을 때 유산균 등이 분해하는 과정이 그만큼 늘어난다.

우리 선조들은 경험적으로 이를 잘 알고 있었다. 할머니께서 만들어주신 된장만 해도 밥만 있어도 소화가 잘 된다. 특히 보리밥은 소화가 잘 되는 효소들이 많고 분해가 빠르기에 먹고 나면 배가 일찍 꺼진다. 오래 숙성한 음식은 절대 배탈이 날 수 없다. 그만큼 좋은 미생물들이 작용해 그런 것이다.

우리 혈액 속에 적혈구와 백혈구가 균형을 맞춰 존재한다. 이 균형이 깨지면 질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 우리 소화기관에도 유산균 등이 일정 비율을 유지하며 작용하는데, 이러한 균형이 깨지면 탈이 나는 것이다.

만병통치약은 없다. 우리 몸에 있는 미생물들을 건강하게 할 수 있는 음식물을 섭취했을 때 결국 몸이 건강해진다. 천연발효식품을 먹으면 보약이 된다. 건강한 삶을 유지시켜줄 수 있다. 기다리지 않고 급하게 가면 균형은 깨진다.

▶ 우리 기술을 다른 나라와 비교한다면

서양은 물론 가까운 일본은 천연발효종을 잘 이어가고 있다. 수백 년 된 집도 있고, 대를 이어 발효종을 이어가는 집도 많다. 안타깝지만, 우리는 전통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이탈리아는 파네토네라는 빵이 유명하다. 150년 이상 된 천연발효종을 자식한테 물려주면서 이어간다. 가족 중에서 누군가가 종 지킴이를 하는 것이다. 매일매일 반죽하는 데 사용하고 덧붙이는 등, ‘리플레쉬’ 작업을 한다. 독일에는 ‘샤워종’이 있다. 오래 묵은 씨 간장처럼 발효종을 사용하는 전통의 명가들이 많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나라는 상업적인 면에서만 발전했다. 깊이가 없고 철학과 전통이 부족하다. 다만 근래에는 프랑스나 일본 등지에 유학을 다녀온 사람들도 늘어나고 교류도 많아지면서 우리나라도 기술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 요즘 관련 업계 상황은

프랜차이즈 전성기라 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지금은 양과 저렴한 가격보다는 질적으로 옮겨갈 때다. 공장에서 생산한 것보다 수제를 선호하는 경향으로 소비가 변하고 있다고 본다. 맛은 정직하다. 정성으로 만든 음식은 찾아가서 맛을 보게 돼있다.

자본금만 가지고 무턱대고 음식장사를 해보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많다. 본인이 좋아하고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것들도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연구하고 기술을 습득해야지, 노력을 게을리 하면 안 된다. 특히, 본인이 직접 할 수 있어야한다. 음식이나 환경 변화가 왔을 때 본인이 수습할 수 없으면 실패한다. 준비와 노력, 기다림 없이 급하게 가면 좋은 성과를 볼 수 없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은 철학이 있어야한다. 특히 불특정 다수가 먹는 음식은 정직해야한다. 이른바 ‘장난질’을 치면 안 된다. 또, 그 집만의 전통과 차별성을 키워나가야 한다.

▶ 안스베이커리의 향후 목표는

아직 성공했다고 볼 수 없다. 진행형이다. 물질적 성장보다는 앞으로 인천에서 50년, 100년을 이어가는 명가가 되길 바란다. 향후 목표는 고객들에게 신뢰를 더욱 두텁게 쌓는 것이고, 더 많은 나눔과 사회공헌을 하고 싶다. 좋은 사람들과 봉사단체를 만들고 싶다.

안스베이커리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가족이다. 찾아주시는 분들도 가족이고, 직원들도 가족이다. 가족이 행복하고 건강했을 때 비로소 삶에 보람이 있는 것 아니겠는가.

안스베이커리 연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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