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은실 문학평론가

[인천투데이] 1990년대에 발간된 한 잡지를 읽었다. 페미니즘을 화두로 한 이 잡지에는 소설이 꽤 여러 편 실려 있었다. 마침 ‘오늘날의 페미니즘’을 특집으로 삼았기에 대부분의 소설들은 여성과 관련한 사회문제를 반영하고 있었다.

그 중 한 소설을 읽고 큰 충격에 빠지고 말았다. 작품의 시사점이나 완결성을 떠나 그 안에서 재현되고 있는 언어ㆍ신체적 폭력 때문이었다. 그 소설에는 아내를 상습적으로 폭행하는 남편이 등장한다. 남편은 잔심부름을 하지 않았다거나 남자를 우습게보았다는 핑계를 들어 아내를 팼다. - 특히 후자는 오늘날 ‘여혐범죄’에서 수도 없이 언급되는 ‘범행 동기’와 동일하기에 아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 남편은 한 날 맞대응하는 아내의 머리 위로 연탄집게를 집어던졌고, 아내는 사망한다.

그 이후 남편이 아이 양육 등의 이유로 ‘상해치사’로 풀려나는 것 또한 통탄할 노릇이나 그에 앞서 그가 욕을 하는 장면, 아내를 때리는 장면을 읽어 내려가며 마음이 쇠약해지고 말았다.

잔심부름을 하는 것 이상의 용서 받지 못할 죄를 저질렀어도 저렇게 때려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닌가,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욕을 실감나게 적어놓은 것인가…. 이렇게 맞아 죽느니 차라리 죽이는 게 낫지 않은가.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자 온몸이 무기력해졌다. 죽느니 죽이는 게 낫지 않느냐니. 아주 밑바닥에 닿은 것만 같았다. 자꾸만 밑바닥으로 떨어져야만 하는 삶이어야하는가, 생각하니 막막했다.

이 소설이 90년대 혹은 그 이전 시기의 폭력을 다루고 있다 한들 ‘그 옛날’의 이야기로 두고 말 것이 아니거니와 이러한 폭력 사태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검색창에 키워드 몇 가지만 입력하면 남편이 아내를 학대했다거나 살해했다는 기사가 하루도 빠짐없이 올라와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보복 등의 이유로 차마 신고하거나 보도되지 못한 폭력도 수두룩할 것이다. 오늘날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이뿐만이 아니다. 폭력은 더욱 교활하고 또 대담하게 행해진다. ‘승리’와 연루된 수없이 많은 성범죄는 그 단적인 예이다.

‘버닝선’에서의 강제 약물 투여와 성폭행부터 시작해, 승리 카톡방에서의 불법 촬영과 소지, 유포까지 줄줄이 끌려나오는 형국이다. 이제 막 수사에 착수한 불법 촬영과 유포에 관한 건으로 보건대 기술의 발전과 억압ㆍ학대의 기술은 비례하는가 하는 절망적 물음이 떠오른다. 90년대에 폭력을 휘두르는 방법이 직접적 육체 손상에 준하는 것이었다면, 근래에 들어 각종 기술력이 이용되고 있다는 점을 새삼 특기하지 않을 수 없다.

신체에 상해를 입히는 것만이 폭력인가. 위의 사례로써 그 이상의 존재론적 폭력이 자행되고 있음을 보아야하는 것은 아닌가. 특정한 성을 관음의 대상으로 삼고 손쉽게 그들의 권리를 침해한 역사가 너무 오래 지속돼왔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주위를 둘러보라. 폭력 기사 아래에 ‘나는 아니다’를 적는 자, 피해자도 죄가 있다는 주장을 펼치는 자, 학교에서마저 자행되는 공공연한 성차별과 문화ㆍ사회 영역 각 계에서 드러나는 미투까지. 지금에 와서도 폭력이 어느 날 외람된 개인 한 명에 의해 일어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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