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평론 - 살아야겠다

김탁환 | 북스피어 | 2018.10.31.

[인천투데이 이권우 도서평론가] 2년 전 우루과이 인근 남대서양에서 침몰한 ‘스텔라데이지’호 관련 기사를 보면서 어이없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우리나라 선원 8명을 포함해 22명이 실종됐는데, 사고 원인조차 알 수 없었다. 사고가 났을 당시에는 세월호 사건도 겪은지라 이 문제는 잘 처리될 줄 알았다. 그러나 기대한 바와 달랐다. 우리 선원이 탄 것으로 짐작되는 구명선을 놓고 진실공방이 한창 벌어졌다. 유가족의 끝없는 항의로 사고 지역에 심해탐사선을 투입해 블랙박스를 건져냈다. 정부는 어림없는 일이라 해왔지만, 예상보다 쉽게 일을 마무리 지었다. 그런데 어처구니없는 것은 유해와 유품 일부를 발견하고서도 계약 문제라며 수습하지 않는 상황을 방관했다는 것이다. 정말, 눈물을 닦아주는 정부와 관료는 기대할 수 없는 것인가?

착잡한 마음으로 기사를 읽다가 떠오른 장편소설이 있다. 김탁환의 ‘살아야겠다’. 한때는 호들갑을 떨었지만 이제는 기억하는 사람이 드문 2015년의 메르스 사태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소설이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 일종의 르포로 읽어도 된다. 짧은 기간에 확진환자 186명과 사망자 38명을 내 전 국민을 공포에 떨게 했다. 그때 환자의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번호로 불렀다는 기억은 어슴푸레 남아 있을 터다. 작가는 바로 메르스 환자에 붙은 번호표를 떼어내고 이름을 부르며 그들이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생생히 재구성했다.

이 작품에는 메르스 감염환자 여러 명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 가운데 긴박한 이야기를 주도하는 인물은 김석주와 남영아 부부다. 김석주는 치의학전문대학을 늦깎이로 나와 치과의원에서 월급 의사로 근무했다. 남영아는 간호사 출신이다. 비로소 꿈을 이뤄 마냥 행복해야만 하는 시절에 신이 샘을 냈는지 김석주가 림프종에 걸렸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지만 치료에 전념해 일단 고비를 넘겼다. 다시 치과에 나가 진료하다 검사를 위해 병원을 찾았는데, 응급실에서 대기하라는 지시가 내렸다.

의례적인 일이다. 자신도 환자에게 그런 식으로 말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입원실이 날 때까지는 응급실에 가 있는 법이다. 침대가 없어 사흘 동안 대기용 의자에만 앉아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가 메르스에 감염된 것이다. 하필이면 같은 날 같은 응급실에 메르스 환자가 있었다. 물론 당시에는 그 사람이 메르스 환자인지 몰랐다. 고열과 심한 기침에 시달리다 응급실에 온 환자였을 뿐이다. 이 단순한 우연, 그러니까 메르스 환자와 같은 응급실에 있던 환자들이 감염됐고, 김석주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바윗돌 하나를 다시 산마루까지 올리기도 힘들다. 그런데 이제 그는 바윗돌 두 개를 밀어 올려야하는 형벌을받은 셈이다.

역시 전문가다웠다. 치과의사와 전직 간호사가 힘을 합쳤는데 이겨내지 못할 병이 있을 수 없다. 물론 마음은 다급했다. 림프종이 재발한지라 메르스 치료를 서둘러 끝내야했다. 그런데 좀처럼 음성 반응이 나오지 않았다. 급기야 병원을 옮겨 새 의료진의 치료를 받아야했다. 지난한 투병이 끝나고 음성 판정이 나왔다. 그런데 석연치 않은 조건문이 붙었다. 석주는 특별한 경우다. 다 나았지만 설혹 양성이 나오더라도 전염력이 없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 적합한 기준은 없었다. 의료진이 자체 판단한 것이다. 만약 응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반드시 이 병원으로 와야 했다. 메르스 균이 없다고 믿고 항암 치료할 수 있는 데는 여기밖에 없으니 말이다.

소설은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는다. 석주가 재발했고 가장 가까운 응급실로 갔다가 양성 판정이 나와 림프종 치료를 못하고 메르스 환자로 분류됐다. 여러 차례 새로운 기준을 세워 메르스 확진을 인정하고 항암치료를 받게 해달라고 했지만, 질병관리본부는 받아주지 않았다. 그가 죽고 나서 닷새 후에 ‘메르스 관련 특별 사례팀 구성에 대한 회신’이 왔다. 살아서 행복한 삶을 살고자했던 의지를 관료주의가 짓밟아 버렸다. 다시 묻게 된다. 도대체 정부나 관료는 왜 존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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