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 더 많이 알리고 응원하고 싶어요”

[인천투데이 심혜진 시민기자]

돌무더기 틈에 핀 민들레. 최근 동네에 들어서고 있는 작은 책방을 볼 때마다 민들레꽃이 떠오른다. 자본과 규모로는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는 대형 서점과 인터넷 서점 틈에서 자신만의 색깔로 존재를 드러낸 작은 책방은 동네 풍경을 바꾸고 주민의 삶에 빛과 향기를 더한다. 하루하루 책을 팔아 생존을 이어나가기에 여념 없는 인천의 작은 책방들을 소개한다.

북극서점 주인장 슬로보트.

‘북극서점’(부평구 원적로 477-2) 주인장 슬로보트(예명)는 이력이 독특하다. 앨범을 낸 싱어송라이터고 독립출판물 두 권을 낸 작가이며 책 관련 축제 기획자이기도 하다. 4년 전에는 13년 차 초등학교 교사였다.

“‘그리스인 조르바(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에 이런 장면이 나와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노인 조르바가 경험하지 않고 앉아서 머리로만 세상을 이해하려는 인간 유형에 일침을 날리면서 ‘삶은 겪어내야하는 것’이라고 말하죠. 저를 두고 한 말 같았어요. 지금 여기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람도 만나보고, 세상일도 겪어보고, 좀 더 넓은 인생을 살아보고 싶었어요. 그 책이 교사를 그만두는 데 영향을 미쳤죠.”

그는 “퇴직금을 다 쓸 때까지만 자유롭게, 맘껏 놀아보자”고 다짐했다. 노래를 만들어 음반을 내고, 원래 꿈이었던 소설 쓰기도 맘껏 해봤다. 이때 쓴 단편소설과 필름사진을 엮어 독립출판물로 만들었다. 뭐가 딱히 되겠다기보다 그냥 정해지지 않은 삶을 살아보고 싶었다.

세계여행을 몇 달 다녀온 후, 딱 1년만 독립서점을 하기로 했다. 책을 좋아하는 그는 책을 읽을 공간이 필요했고, 책방을 열면 책을 좋아하는 사람도 만날 수도 있을 터였다.

“아주 어렸을 때 외딴 섬에 사시는 외할머니 댁에 맡겨진 적이 있어요. 아버지였나, 외삼촌이었나…섬으로 그림책을 보낸 거예요. 글도 못 읽을 때였는데 책들을 보고 또 보면서 아빠를 기다렸어요. 그 책들은 섬에서 제가 느낀 유일한 아름다움이었고 집중할 수 있는 가장 큰 것이었죠. 그때부터 책을 좋아했고, 교사가 된 후에도 아이들과 늘 책을 함께 읽었어요. 제 삶이 되게 많이 힘들었는데, 책에서 구원받았다고 생각해요.”

책방을 해야 할 이유는 또 있었다. 그가 보기에 가장 ‘힙한’(고유한 개성과 감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최신 유행에 밝고 신선함을 나타내는 말) 문화가 독립서점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가 가장 멋지다고 생각하는 공간인 독립서점, 그 ‘자아’를 탐했다. 굳이 ‘1년만’이라고 기한을 정한 건 그때쯤이면 돈이 바닥날 거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책방을 내고 싶던 동인천 일대는 월세가 너무 비쌌다. 부평 번화가에서 한 블록 떨어진 한적한 길가에 월세 15만 원짜리 가게가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두 시간만에 계약을 마쳤다. 공간을 채우는 조건은 단 하나, 무조건 좋아하는 것만 들여오기. 1년 시한부 책방이니 기간이 끝나면 남은 건 다 본인 몫이었다. 2016년 12월, 싫어하는 건 단 하나도 갖다 놓지 않은 ‘힙한’ 북극서점이 문을 열었다. ‘북극’은 추운 곳일수록 책을 불씨로 삼아 앞으로 나아가자는 뜻이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기대감

자개장을 이용해 책들을 전시해놓았다.

책방 일은 예상만큼 좋았다. 어느 날은 책이 많이 팔렸고, 손님이 한 명도 없는 날도 있었다. 그래도 지인들이 자주 드나들었고, 돈이 생기면 다시 책을 샀다. 가져가는 돈은 없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기대가 작았기에 만족감이 컸을지도 모른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 그걸 기대했어요. 항상 정해진 것들을 하고 살았잖아요. 실제로 이번 주에 상상하지 못한 일이 다음 주에 일어나고, 생각하지 못했던 사람들을 만나고. 그런 게 재밌었어요.”

‘1년만’ 하겠다던 예상은 적중했다. 1년 하고도 4개월이 더 지났을 때, 통장엔 70만 원만 남아있었다. 책방에선 책방 유지비 정도만 겨우 벌리는 상황이었다. 책방에 매여 있으면서 동시에 생활비를 벌어야하는 모순적 상황에서 외줄타기를 하며 문을 닫을까 고민하던 순간, 마지막으로 재밌는 일 한 번 해보자는 생각이 머릿속에 스쳤다. 독립서점, 독립출판, 일러스트, 수공예 관련 사람들이 모여 시민들과 축제를 여는 ‘아트북페어’를 열고 싶었다.

부스를 차릴 탁자와 의자를 빌릴 생각으로 무작정 관공서에 전화를 하던 중, 부평구문화재단에서 그의 기획을 반기며 지원을 자처했다. 작년 5월, 지역의 여성ㆍ이주민 단체, 작은출판사, 독립서점, 예술인 등 70여 개 팀이 모여 신트리공원에서 ‘휘파람 마켓’을 열었다. 독립출판물을 소개하는 축제로, 인천에서 첫 번째 열린 축제였다. 신선한 시도에 시민들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이후 다른 곳에서도 책을 주제로 한 축제 기획을 제안했고, 이곳저곳에서 다양한 주제의 강의를 의뢰했다. 축제 기획과 강의로 받은 급여로 서점을 조금 더 이어갈 수 있었고 비슷한 일상이 지금도 진행 중이다.

“축제 기획자가 된다는 건 상상도 못해본 일이에요. 모두 서점을 연 덕분이죠. 이곳을 통해 만난 사람들, 만나게 된 일, 만난 모든 것들이 저를 성장하게 해요.”

“독립출판, 내가 한 것 중 최고”

북극서점 내부 모습.

책방 주인으로서, 서점을 찾는 손님들이 좋아할 만한 책을 소개하기 위해 그는 신간 목록을 열심히 살핀다. 특히 요즘 젊은이들이 어떤 책을 좋아할지에 관심이 많다. 그런 책을 그도 좋아하기 때문이다.

“저는 보편적이지 않은 감성, 혹은 보편적인 감성을 보편적이지 않게 표현한 개성 있는 책을 좋아해요. 깊이도 좀 있으면 좋고요. 긴 소설은 잘 못 읽고, 에세이나 일러스트 북, 기획이 참신한 책이 잘 읽히더라고요. 그런 책들을 들여오려 최선을 다해요.”

그는 특히 독립출판물에 관심이 많다. 독립출판이란 창작부터 인쇄, 광고, 유통까지 모든 과정을 작가 스스로 떠맡는다. 유통망을 통해 대형 서점에서도 책을 판매할 수 있는 ‘1인 출판’과는 다르다. 서점에서 독립출판물을 들여놓기 위해선 저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직접 연락해야한다. 독립서점 주인과 저자의 관계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이미 독립출판으로 책 두 권을 발행한 그에게 독립출판의 의미는 남다르다.

북극서점 출입구.

“누가 알아주지 않고 돈을 벌지 못해도 그게 너무 재미있어서 창작하는 사람들이 독립출판제작자들이거든요. 창작자로서 자아를 갖게 되면 세상을 보는 눈과 일상이 달라져요. 특별한 걸 만드는 게 아니라 평범한 것을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만들기 때문에 나를 더 잘 알게 되죠. 무엇을 소중히 여기는지, 내가 좋아하는 감정이나 가치가 무엇인지 깊이 들여다보게 돼요. 사실, 저한테는 (독립출판물을 만든 것이) 최고 좋은 것 중 하나였기에 이걸 하지 않는 분들이 안타까울 정도예요. 정말 좋거든요. 돈도 많이 들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책방 손님들에게 책을 만들어보길 자주 권한답니다. 그들의 책을 더 많이 알리고 싶고, 그 과정을 응원하고 싶어요.”

북극서점은 예상과 달리 2년을 훌쩍 넘겼다. 슬로보트는 “다음 달 월세만 있으면 그리 불안하지 않다”며 “이 기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에너지 넘치고 행복했던 순간”이라고 말한다.

“이것도 어느 시절이면 끝날 거란 걸 알고 있어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울 수도 있고, 더 좋아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고, 앞일은 모르는 거잖아요. 그래도 저는 이 공간을 매우 사랑하게 됐고, 사실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을 만큼 속이 시원해요. 아, ‘죽어도’라는 말은 좀 과격하게 들리겠네요. 하여간, 당장 다음 달에도 문을 닫을 수 있겠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지만, 지금은 되게 큰 만족감을 느껴요. 행복해요.”


* '북극서점' 주인장이 추천한 책

일간 이슬아 |이슬아 지음| 헤엄 출판사 펴냄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 |이슬아 지음| 문학동네 펴냄

이슬아 작가의 책은 요즘 시대정신이랑 잘 맞아요. ‘이런 걸 말해도 되나?’ 싶은 것들, 일상에서 터부시할 수 있는 감정이나 섬세한 순간들을 아주 자연스럽고 세련되게 말해주거든요. 그게 자유잖아요. 사람들이 말하지 않는 것에 대해 멋지게 쓴 글을 읽으면서 ‘이 정도까지 표현해도 되는구나’하는 생각을 했어요. 생각과 언어에 자유를 주는 거죠. 아마 이 책들을 읽고 자유로워지신 분들 많을 거예요. 요즘 제일 재밌게 읽은 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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