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혜진의 사연이 있는 요리이야기 64. 파르페
심혜진의 사연이 있는 요리이야기 64. 파르페
  • 심혜진 시민기자
  • 승인 2019.03.11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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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투데이 심혜진 시민기자] 내게는 나와 열 살 안팎으로 차이가 나는 어린 친구 여섯 명이 있다. 삼십 대 초ㆍ중반인 그들과 복작복작한 인연을 이어온 지 올해로 10년째다. 졸업과 취업, 결혼 등 변화를 겪으며 국내 각지에 흩어져 살지만 사회관계망 서비스 단체대화방에서 수시로 일상을 공유한다.

그래도 직접 만나 눈빛과 표정까지 주고받아야 대화의 맛이 산다. 1년에 한두 번은 날을 잡아 1박2일을 함께 보낸다. 하지만 이런 저런 사정으로 먼저 일어나야하는 친구가 한둘은 있게 마련. 나는 아쉬운 마음을 노래로 표현한다. “가지 마라~ 가지 마라~ 가지 말아라~” 신형원이 부른 ‘개똥벌레’의 한 부분이다. 내 노래를 듣고 친구들은 “대체 언제적 노래를 하는 거냐”며 면박을 준다. ‘개똥벌레’가 1987년에 나왔으니, 그들이 태어나기 전이거나 신생아 또는 돌잔치를 막 치렀을 때다.

ⓒ심혜진.
ⓒ심혜진.

내가 태어난 1970년대 후반에 유행한 노래를 검색해봤다. 최헌 ‘오동잎’, 샌드페블스 ‘나 어떡해’, 혜은이 ‘감수광’…. 음, 무척 오래된 느낌이긴 하다. 그래도 ‘개똥벌레’는 나름 국민가요라 생각했는데 너무 노골적으로 옛날 사람 취급을 받으니 살짝 서러웠다.

사실 놀림의 역사는 우리가 만나온 시간 만큼이나 길다. 이 친구들과 막 친해지기 시작할 무렵, 내가 무심코 “커피숍 갈까?”라고 한 것이 문제였다. “우와, 커피숍이래. 그거 옛날 말 아냐?” 나는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없었다. “요즘은 카페라고 하지, 커피숍이라고 하니까 무슨 옛날 다방 같네. 커피숍에서 쌍화차도 팔아?” 언제 커피숍을 카페로 부르기로 한 거지?

어쨌든, 친구들과 커피숍이 아닌 카페에 갔다. 아, 내 입이 방정이었을까. “요샌 왜 파르페가 없을까. 나 그거 좋아하는데.” 이 한마디에 또 한 번 난리가 났다. “그거 일본 만화책에서 본 것 같은데, 우리나라에서도 팔았어? 어떤 맛이야? 궁금하다.” 친구들의 표정은 아까와 달리 진지했다. 이 아이들은 파르페를 정말로 몰랐다.

나는 한때 ‘X세대’였다. 1990년대 중반, 20대 초반이었던 내 또래를 사람들은 그렇게 불렀다. 미지수 ‘X’처럼,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다양한 개성을 지닌 세대란 의미다. 국가적으론 경제 호황의 막바지였고, 풍요와 여유는 생활과 문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여성스러움’과 ‘예쁨’을 뛰어넘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남과 다른 머리 모양, 독특한 옷차림을 하고 다녀도 남의 시선이 전혀 신경 쓰이지 않던 아주 짧은 몇 년이었다.

당시 ‘커피숍’에서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파르페’라는, 음료도 아니고 아이스크림도 아닌 디저트였다. 파르페는 기다란 유리잔에 시리얼, 아이스크림, 후르츠칵테일, 주스, 생크림, 초콜릿 시럽, 웨하스, 초코과자 등 다양한 재료를 차곡차곡 예쁘게 쌓아 만든다.

프랑스어로 ‘완전한’이란 뜻이라는데, 정말 파르페 하나로 풀코스의 디저트를 즐길 수 있다. 나는 파르페를 무척 좋아했다. 보기에도 예쁘고 숟가락으로 이것저것 퍼먹는 재미도 좋았다. 어찌나 좋아했던지, 여운을 오래 남기려는 마음에 파르페 맨 꼭대기에 꽂혀있던 종이우산 장식을 따로 모으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 생과일주스가 인기를 끌면서 나도 한동안 파르페를 잊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파르페는 자취를 감췄다.

하여간 그날 이후로 쭉, 난 친구들 사이에서 완전히 ‘노땅’이 됐다. 뭐 그리 억울할 것도 없다. 내가 그들보다 나이가 많은 건 분명한 사실이고, 우린 세대가 다른 만큼 즐긴 문화도 다르니까. 당시의 ‘핫한’ 문화가 지금은 다른 것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끔 소외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위로가 되는 건, 연예인들도 커피숍이란 말을 사용한다는 거다. 최근 ‘밥블레스 유’라는 프로그램에서 최화정이 ‘커피숍’이라 말하는 걸 똑똑히 들었다. ‘연예인도 어쩔 수 없네.’ 나는 혼잣말을 하며 웃었다. 하지만 최화정과 함께 있던 송은이와 이영자, 김숙 중 그 누구도 커피숍을 ‘카페’로 정정해주지 않았다. 그들에게도 커피숍은 전혀 이상하게 들리지 않는 익숙한 단어였던 거다. 10여 년 전의 나처럼 말이다.

갑자기 그들에게 동질감을 느꼈다. 조금 전 최화정을 비웃은 걸 급히 취소하고, 내 어린 친구들을 향해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니들이 파르페에 꽂힌 종이우산 모으는 재미를 알아?” 아, 그때 그 시절의 파르페, 다시 한 번 먹을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