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투데이 심혜진 시민기자] 고양이와 함께 산 지 3년이 다 돼간다. 작년에 한 마리가 늘어 우리 집엔 사람 둘, 고양이도 둘이다. 녀석들과 사는 하루하루가 행복하다. 가끔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날마다 고양이 두 마리의 밥과 물을 갈아주고 화장실 모래를 청소하고 한두 시간씩 놀아줘야한다. 이런저런 돈과 시간 들어갈 일만 잔뜩 안겨주는 이 고양이들을 나는 왜 마냥 꿀 떨어지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걸까.

고양이가 경제적으로 무능하지만 그렇다고 내게 아무 것도 안 해주는 건 아니다. 고양이들은 내 의지로 만들어낼 수 없는 중요한 화학물질이 내 몸에서 분비되게 돕는다. 바로 ‘사랑의 호르몬’이라 불리는 옥시토신이다.

인간의 뇌는 행복을 느끼는 쪽으로만 진화한 것이 아니라 수시로 변하는 환경에서 위험과 불안 요소를 인지하고 그로부터 스스로 지키는 쪽으로도 진화했다. 그런데 위험과 불안이 지속되면 정신과 육체가 소모된다. 옥시토신은 스트레스 상태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신경호르몬으로 통증과 불안을 줄여 인간이 행복감과 안정감을 느끼는 데 대단히 중요한 물질이다. 문제는 옥시토신이 아무 때나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옥시토신은 사람 사이에서 신뢰감과 애착을 느낄 때 분비된다. 인간의 뇌에는 불안과 공포, 흥분 등 어두운 감정을 관장하는 변연계라는 영역이 있다. 변연계의 시상하부와 편도체는 스트레스와 불안을 담당한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 앞에서 연설을 하는 건 몹시 긴장되는 일이다. 심장이 쿵쾅대고 손에서 땀이 나고 호흡이 거칠어진다. 혹여 어이없는 실수로 비웃음을 사는 건 아닌지, 지금까지의 노력이 물거품이 돼 내 인생이 나락으로 곤두박질치는 건 아닌가 하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대부분 일어나지 않는 일에 대한 불안과 공포다.

이 상황에서 스트레스와 불안을 느끼는 건 자동으로 일어나는 뇌의 반응, 특히 편도체의 반응이다. 제 아무리 ‘맘 편히 먹자’ ‘스트레스 받지 말자’고 생각해봐도 편도체에서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반응을 억제할 순 없다.

그런데 극심한 긴장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이들 가운데 연설 전에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허용된 참가자는 그렇지 않은 참가자에 비해 스트레스 호르몬 수준과 불안감이 감소했고 더 차분해졌다. 옥시토신이 민감해진 편도체를 잠재웠기 때문이다. 옥시토신은 편도체의 반응성을 떨어뜨리고 감정이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지지 않게 조절하는 데 도움을 준다.

만성 통증을 앓는 환자가 배우자나 연인과 함께 있거나 때론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통증이 줄어든다. 심각한 고통을 느끼는 상황에서 누군가와 손을 맞잡는 일이 위안을 준다. 모르는 사람과 그저 잠시 가벼운 대화를 주고받는 것도 기분을 좋게 만든다. 포옹과 악수, 친구와 대화, 마사지 등도 마찬가지다. 모두 과학적으로 확인된 옥시토신의 작용 결과다.

그런데 이 효과가 반려동물과 함께 있을 때에도 똑같이 일어난다. 강아지나 고양이와 눈을 맞추거나 더 나아가 가볍게 쓰다듬는 것만으로도 옥시토신이 분비됐고 행복을 느끼게 하는 호르몬인 도파민과 엔도르핀까지 증가했다. 사회관계가 단절된 이들, 마음의 상처로 사람과 원만한 관계를 맺기 어려운 이들이 반려동물을 맞이했을 때 삶의 만족도가 크게 증가한다는 여러 연구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뇌는 근육과 마찬가지로 쓸수록 발달하고 안 쓰면 퇴화한다. 반려동물로 인해 옥시토신이 분비되는 횟수가 늘어갈수록 옥시토신계 전체가 발달하고 강화된다. 고양이와 작은 교감으로도 옥시토신이 마구 분비되는 결과를 얻게 되는 것이다. 고양이를 사랑할수록 내 행복감이 점점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참고 도서 : ‘우울할 땐 뇌 과학’ 앨릭스 코브 지음, 심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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