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주 시민기자의 영화읽기 -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2019년 개봉

[인천투데이 이영주 시민기자] 18세기 초 영국. 스튜어트 왕조의 마지막 군주 앤 여왕(올리비아 콜맨)이 통치한 시절. 스페인 왕위 계승 문제로 영국과 프랑스가 한창 전쟁 중이다.

앤 여왕의 곁에는 친구이자 엄마, 애인인 사라(레이첼 와이즈)가 있다. 사라는 공식 직책을 가지고 있지 않은, 말버러 공작의 부인일 뿐이지만 늙고 병들어 총기가 떨어진 여왕의 직무까지 대리하며 국정의 실권을 쥐고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자다. 사라를 통해야만 절대군주인 여왕의 얼굴이라도 보고 말할 수 있기에 쟁쟁한 각료들도 사라 앞에서는 꼼짝을 못한다.

어느 날 친척 애비게일(엠마 스톤)이 일자리를 찾아 사라를 찾아온다. 애비게일은 몰락한 귀족의 딸로 인생의 진창까지 경험한 인물이라 눈치가 빠르다. 고작 맨 밑바닥 허드렛일을 하는 하녀로 왕궁생활을 시작하지만 필사적으로 노력한 끝에 최고 권력자인 여왕의 호감을 사고, 결국 사라의 자리까지 위협한다.

절대왕정 시절. 유약한 왕과 그를 이용해 권력을 차지하려는 이들의 암투. 절대군주가 존재하는 시대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서사다. 물론 우리에게 익숙한 사극에서는 그 주인공 모두 남자였다. 중전이나 대비, 후궁 간 갈등이 주된 서사인 드라마도 있긴 했지만 그녀들은 그녀들을 궁에 들여보낸 집안(가부장)의 대리인일 뿐, 권력투쟁의 실제 주인공은 아니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에서는 왕도 여자고 왕의 총애를 통해 권력을 휘두르는 이도 모두 여자다. 이들은 남편이나 아버지를 대리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의 욕망을 따라 투쟁한다.

프랑스와 전쟁, 토리당과 휘그당의 격렬한 대치 등 정치적 격변이 일고 있는 시대 배경이지만 배경은 말 그대로 배경일 뿐 영화는 왕실의 사적 공간에 초점을 맞춘다. 사라와 애비게일은 앤이라는 한 여자의 사랑을 얻기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고군분투한다. 사라는 앤의 어린 시절부터 함께 한, 앤의 희로애락을 모두 알고 있는, 영혼의 반쪽 같은 존재다. 가까운 만큼 직설적이고 솔직하다. 그런 사라를 앤은 사랑한다. 뒤늦게 등장한 애비게일은 사라가 주지 못하는 관대함과 입 안의 혀처럼 구는 달콤함으로 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세 여자의 욕망과 질투와 변덕은 이성애가 아니라는 것만 빼고는 여느 멜로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서사이지만 그것이 고스란히 전쟁과 종전, 양당 전세역전의 원인과 결과가 된다. 어떤 대의나 명분도 들어설 자리가 없다. 왕의 사랑을 얻기 위한 두 여자의 치정극은 곧 권력투쟁이 된다. 사랑과 권력은 경계가 불분명해진다. 사사로운 감정과 행동들이 정치가 된다.

흔한 이야기에 성별만 바꿨을 뿐인데, 그 때문에 이 영화는 흔한 시대극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 다른 재미를 준다. 각본가 데보라 데이비스가 이 영화의 첫 각본을 쓴 것이 1998년이었으나 여자 셋의 삼각관계 이야기에 투자해주는 이가 아무도 없어 빛을 못 보다가 20년 만에 영화로 만들어졌다고 하던데, 아이러니하게도 여자 셋의 이야기가 아니었다면 이런 신선함은 결코 만들지 못한 채 그렇고 그런 시대극이 됐을 것이다.

여기에 앤과 사라, 애비게일을 연기한 세 여배우의 빛나는 연기는 어찌 보면 막장일 수밖에 없는 치정극에 강한 흡인력을 만든다. 변덕스럽고 예민한 최고 권력자와 유약한 개인 사이에서 균형을 잃지 않는 올리비아 콜맨, 권력의 화신인 듯 보이지만 종국에는 사랑을 선택하는 품위 그 자체 레이첼 와이즈, 약삭빠르고 영민해 최종 승리자인 듯하나 여전히 위태로운 엠마 스톤의 연기는 어느 하나 치우침 없이 팽팽한 긴장감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이 영화가 유의미한 메시지를 던지는 훌륭한 영화라고는 말 못하겠다. 다만,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익숙한 남성 중심, 이성애 중심, 남자배우 중심의 서사를 뒤집기만 해도 이렇게 다른 이야기, 다른 재미를 줄 수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보여준다. 우리는 다른 이야기를 들을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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