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작은 책방 2. 책방 산책
인천의 작은 책방 2. 책방 산책
  • 심혜진 시민기자
  • 승인 2019.03.04 14: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책을 매개로 다양한 이야기가 마을 안에서 생겨나길”

[인천투데이 심혜진 시민기자] 

돌무더기 틈에 핀 민들레. 최근 동네에 들어서고 있는 작은 책방을 볼 때마다 민들레 꽃이 떠오른다. 자본과 규모로는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는 대형 서점과 인터넷 서점 틈에서 자신만의 색깔로 존재를 드러낸 작은 책방은 동네 풍경을 바꾸고 주민의 삶에 빛과 향기를 더한다. 하루하루 책을 팔아 생존을 이어나가기에 여념 없는 인천의 작은 책방들을 세 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계양구 계산동 경인교육대학교 근처 주택가. 어느 2층 집 대문 옆에 붙은 간판을 눈 밝은 이라면 알아볼 수 있다. ‘책방 산책’이다. 홍지연 씨가 2016년 이곳으로 이사 오면서 1층엔 책방을, 2층엔 살림집을 들였다. 아담한 공간엔 사방이 책으로 빼곡하다. 유리문 안으로 햇빛이 닿는 구석마다 의자가 한두 개씩 놓여 있다. 의자에 기대어 마냥 책 속으로 빠져드는 상상을 하게 된다. 감상적 기분을 잠시 내려놓고 생각하면, 주택가와 서점은 그리 어울리는 공간은 아니다.

“처음에는 지인들이 전부 말렸어요. 인터넷으로 원하는 책 주문하면 당일에 편하게 집에서 받아볼 수 있는 세상인데 동네에 작은 책방이 웬 말이냐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주택가에 책방을 연 것은 오랜 꿈이었기 때문이다.

책방 문화 자양분 먹고 자라
 

‘책방 산책’ 주인 홍지연 씨.
‘책방 산책’ 주인 홍지연 씨.

어릴 때부터 학창시절까지 줄곧 그의 놀이터는 동구 배다리 일대였다. 예닐곱 살 때부터 헌책방에 드나들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꼭 책을 읽었다기보다는 책이 탑처럼 쌓여 있는 게 신기했고, 책등(책을 책꽂이에 꽂았을 때 보이는 부분)에 적힌 제목 보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빨리 지나갔어요. 아직도 머릿속에 헌책방의 잔상이 있어요.”

용돈이 생기면서부터 문고판 책을 사보기 시작했다. 그의 무대는 동인천역 남광장 대한서림으로 확장됐다.

대한서림은 만남의 장소이기도 했다. 그곳에서 책을 읽으며 친구를 기다렸다. 고등학생 언니들이 가던 만화방에도 자주 드나들었다. 책이 있는 곳에서 놀고, 사람을 만나고, 용돈을 아껴 책을 사고, 선물로 책을 주고받는 동안 책은 점점 그와 떼어놓을 수 없는 어떤 것이 됐다. 그는 책과 관련한 모든 경험이 자신이 책방을 열게 된 자양분이라 말한다.

“지금 생각하면 굉장한 책방문화 안에서 성장한 것 같아요. 막연히 마흔 살 즈음엔 나도 책방을 하고 싶다고 생각해왔어요. 아이를 키우다보니 동네에 책방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더욱 커졌고, 그게 실현된 거죠.”

아이들이 용돈으로 책 사는 경험 중요해

‘책방 산책’ 입구.
‘책방 산책’ 입구.

책방을 열기 전 3~4년 동안 남편, 아이와 함께 서울에서 부산까지 전국의 작은 책방을 찾아다녔다. 책방 운영방식에서부터 책방마다 어떤 특색이 있는지 배우기 위해서였다. 하루에 200종 넘게 쏟아져 나오는 신간 가운데 어떤 책을 선별해 서가를 채울지도 문제였다. 그는 아동과 청소년이 맘껏 드나들 수 있는 책방을 만들기로 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을 직접 고르고 살 수 있는 책방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들이 좋아할 만한 책과 문학작품 위주로 책을 들여놓았다. 그러자 아이와 함께 책방에 들른 어른들도 자신이 읽을 책을 사기를 원했다. 결국 책방은 종합서점이 됐다.

그가 생각하는 책방의 주 고객은 여전히 아동과 청소년이다. 자신이 배다리 헌책방에서 누린 문화적 자양분을 지금 어린 세대들도 향유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의 책방엔 새 책과 헌책이 나란히 손님을 기다린다.

좁은 서가임에도 불구하고 계속 헌책을 취급하는 이유는, 바로 ‘어린 손님’들을 위해서다. 그는 용돈 500원으로 어린 동생에게 선물할 책을 사러 온 초등학교 3학년 아이의 사례를 들며 “아이들이 자신의 용돈으로 책을 사보는 경험을 해보는 것이 중요해요. 헌책이라면 아이들 용돈으로도 충분히 구매할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책방 계속 해야 할까? 아이들의 명쾌한 대답

“아이들 게임 아이템을 책으로 이겨보겠다”는 다짐으로 책방 문을 열었지만 운영은 예상대로 녹록하지 않았다. 대형 서점과 인터넷 서점은 소비자가 원하는 책을 대부분 구비하고 있는 데다 책값 할인과 적립도 된다. 곳곳에 도서관도 많이 생겼다. 마을에서 이웃과 함께 책 문화를 만들어 나가고 싶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이 발목을 잡았다. 그는 언젠가 단골 고객인 아이들에게, 자신이 책방을 계속 해야 할 필요가 있을지 진지하게 물었다. 아이들의 대답은 명쾌했다.

“‘당연히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 이유가 재밌었어요. 자기들이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사기가 힘들대요. 인터넷뱅킹을 하기가 어렵잖아요. 여기 오면 책을 실제로 볼 수 있고 용돈 모아서 살 수 있어 좋대요. 도서관 하고는 뭐가 다른지 물어봤더니, 도서관 책은 빨리 갖다 줘야한다는 압박감이 있어 편하게 읽지 못하는데 돈 주고 산 책은 언제든 읽을 수 있고, 머리맡에 놔둘 수도 있다는 거예요. 그럼 대형 서점하고는 뭐가 다르냐고 물었죠. 부모님하고 대형 서점에 가면 책을 고르는 자유를 빼앗긴대요. 부모님이 사라고 하는 책을 사게 된다는 거죠. 또, 너무 넓어서 고르기 어려운 점도 있고요. 아이들 말에 큰 힘을 얻었죠.”

이미 읽은 책 사겠다는 아이, 그 이유는?
 

‘책방 산책’ 내부 모습.
‘책방 산책’ 내부 모습.

그는 남편과 아이에게도 책을 판다. 이유가 있다. 스스로 구매한 책은 각별하게 대하기 때문이다. 그는 어른들이 아이들의 책 선택권을 존중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어른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아이가 고른 책에 부정적 코멘트를 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거예요. 책에 대한 안목이라는 것도 결국 스스로 실패와 성공을 경험해봐야 생기는 거거든요. 저는 이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또 한 가지, 어른들은 ‘그 책 읽었는데 왜 사. 안 읽은 책 사’라는 말을 많이 해요. 그런데 읽은 책인데도 또 사고 싶다는 건 아이가 정말 그 책을 좋아한다는 거잖아요. 본 책을 또 보고, 또 보고, 반복해 보면서 아이는 그 책을 사랑하게 돼요. 그러니 아이가 읽었던 책을 사려고 한다면 바로 그 책을 사주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의 책방에선 달마다 책을 매개로 한 프로그램이 열린다. 저자와 만남을 진행하거나 시인을 초청해 시낭송을 한다. 그는 올해 청소년과 부모가 함께 할 수 있는 자리를 자주 마련할 계획이다. 부모와 청소년 자녀가 책을 매개로 대화를 나누고 서로 알아가는 계기가 될 거라는 생각에서다. 책방 행사가 열리면 언제나 의자가 가득 찬다. 강의를 열어 놓고 사람이 모이지 않을 걱정은 이제 하지 않는다. 책을 팔아 인건비를 벌 수준까지는 한참 멀었지만 돈 대신 사람은 많이 벌어 놓은 셈이다.

“책을 매개로 다양한 이야기들이 마을 안에서 생겨나면 좋겠어요. 책방은 책이 주인공이고, 그 책을 깨우는 건 독자들이에요. 무엇보다 아이들이 책방을 동네 슈퍼마켓처럼 슬리퍼를 끌고 찾아올 수 있는 편한 곳으로 여겨 주길 바라요. 아주 천천히 느리게 그렇게 돼가는 것 같아요.” 

* ‘책방 산책’ 주인이 추천한 책

 

‘책방 산책’ 주인 추천 책.
‘책방 산책’ 주인 추천 책.

‘이것은 왜 직업이 아니란 말인가?’ / 박정훈 지음, 빨간소금 펴냄

전 알바노조 위원장이자 현 맥도날도 배달 노동자(라이더) 박정훈의 책. 저자는 알바 노동시장을 정규직(제1 노동시장), 비정규직(제2 노동시장)과 구분해 ‘제3 노동시장’이라고 부른다. 이 책은 제3 노동시장에서 벌어지는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근로기준법 위반과 폭언ㆍ폭행, 손님들의 갑질과 알바들의 추노 현상들의 본질을 맥도날드, 편의점, 영화관 등에서 일하는 알바 노동자들의 증언으로 파헤친다.

“우리 곁에 굉장히 많은 알바 노동자가 있는데 그들의 삶을 별로 생각해보지 않은 것 같아요. 요즘은 알바도 하나의 직업이 돼가고 있어요. 앞으로 알바노동자가 될 수 있는 고등학생이나 청소년을 자녀로 둔 어른들이 함께 읽고 노동과 인권을 생각해볼 수 있는 책입니다.”

‘독립운동가가 된 고딩’ / 이진미 지음, 초록서재 펴냄

신기고등학교 2학년 태웅이는 현장체험학습을 위해 한국역사박물관에서 여는 경성거리 기획전에 간다. 그곳에 설치된 특별 역사체험관에서 믿지 못할 경험을 한다.

현재의 인물이 과거 속으로 뛰어 들어가 당대 사람들과 함께 그 시대를 몸으로 체험하며 직접 교류하는 장치를 만나는 것이다. 믿지 않았지만 태웅은 경성거리 한복판으로 순간 이동하게 된다.

“우리 동네에 사는 분이 쓴 청소년 소설이에요. 우리 책방에 오시면 사인 본을 구매하실 수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