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인천서 한반도 정세 강연

[인천투데이 김현철 기자] “전쟁 위협으로 국민들은 빼앗긴 것이 많다. 이제 ‘평화배당금’으로 돌려줘야할 때다.”

평화만들기인천네트워크와 인천평화복지연대가 지난 19일 인천사회복지회관에서 개최한 한반도 정세 강연회에서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가 강조한 말이다.

정 대표는 평화네트워크를 창립한 1999년부터 20년간 평화 만들기 외길을 걸어왔으며, ▲한반도 시나리오 ▲오바마의 미국과 한반도 그리고 2012년 체제 ▲핵의 세계사 ▲평화학과 평화운동 ▲사드의 모든 것 ▲비핵화의 최후 등을 집필했다.

정 대표는 오는 27~28일 베트남에서 열리는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의 성과를 전망하며 평화체제 수립 후 바뀔 국제 질서와 국내 정세를 우려했다. 또한 전쟁준비금으로 지출하는 비용을 평화배당금으로 전환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아래는 정 대표의 강연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국제정치학 전공자 입장에서 이해 못하는 상황

북한이 핵과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실험을 하는 등 ‘핵무장’을 선언한 지 몇 개월 만에 ‘완전한 비핵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현재 결과만 놓고 보면 비핵화하기 위해 핵 무장을 한 상황이다. 이른바 북한 전문가라고 하는 국제정치학자들 입장에서는 믿지 않자니 보이는 상황이 믿기지 않고, 믿자니 자존심 상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그들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거짓말을 한다고 주장한다.

김 위원장을 믿지 않는 사람은 주로 미국 펜타곤과 정보기관 사람들이다. 그들은 북한의 유일한 생존수단은 핵이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말하면 핵을 포기하면 생존수단을 잃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1992년 소련 붕괴 당시 우크라이나는 세계 3위의 핵보유국(8000여 기)이었다. 당시 열강들이 핵 포기 시 경제와 안보를 책임지겠다며 설득했다. 우크라이나는 비핵화 조치를 취했으나, 크림반도 병합 당시 열강들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당시 우크라이나에서는 “8000여 기 중 80기만 가지고 있었어도 이렇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자조했다. 미국의 펜타곤과 정보기관은 누구보다 이를 잘 알고 있다. 그들은 김 위원장이 바보가 아닌 이상 비핵화 조치를 취할 수 없다고 단언하고 있다.

트럼프 기질과 김정은 결단력이 만들어낸 상황

지난해 3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 실무회담에서 김 위원장이 북미 정상회담을 요청했고, 이틀 후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북미 정상회담을 제안했다. 우연적 요소가 겹쳤으나 트럼프 대통령이 4월 안에 만남을 수락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독특한 기질을 먼저 이해해야한다. 첫 번째로 트럼프 대통령의 경쟁상대는 클린턴 전 대통령 부부와 오바마 전 대통령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2년은 ‘Anything But Obama(반 오바마)’로 대표되며, 클린턴ㆍ오바마 정부의 정반대로 가고 있다.

두 번째로 공화당 경선에서 대통령 후보로 선출돼 전당대회 수락 연설에서 “세계가 개판이다. 미국은 더 개판이다”라며 “이런 모든 문제를 나 혼자 해결할 수 있다(By my self)”라고 했다. 나르시즘(자기애 혹은 자아도취)이 굉장히 강하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역대 미국 대통령이 한 번도 못한 북미 정상회담이 굉장히 구미를 당겼을 것이다.

이제 우연적 요소를 살펴보자. 지난해 3월 10일은 트럼프 대통령의 불륜 상대를 자청하는 여성의 기자회견(선거 때 불륜을 밝히지 않는 대가로 13만 달러(약 1억4500만 원)를 지급한 사실을 폭로)이 예정돼있었다. 그 때 정의용 실장의 제안이 있었고,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기자실을 열어 정 실장이 직접 북미 정상회담 성사 발표를 하게 했다. 모든 이슈는 북미 정상회담에 집중됐고, 그 여성은 결국 기자회견을 취소했다.

또, 작년 이맘때까지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을 동시에 친구로 둔 지구상 유일한 사람은 데니스 로드맨이었다. 2013년 오바마 정부 시절 김 위원장이 로드맨에게 “당신은 농구 선수고, 나도 농구를 좋아하고, 오바마 대통령도 농구를 좋아하니 당신이 중재자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며 “그 전에 전화라도 좀 하고 싶다”고 한 말을 로드맨이 SNS(사회관계망 서비스)에 올렸다. 이 후 미국으로 돌아간 로드맨은 이른바 ‘종북(미국 전역의 왕따)’으로 찍혔다.

당시 토크쇼 진행자로 활약한 트럼프는 로드맨을 초청해 “당신이 진정한 외교관”이라고 추켜세웠다. 당시 트럼프가 한 말이 “미국에 이익이 된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 아니냐”이다. 이후 트럼프는 대선 출마를 선언했고 로드맨이 지지선언을 했다.

김 위원장은 할아버지(김일성), 아버지(김정일)도 가지지 못한 힘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미국을 협상장으로 불러낼 수 없다고 판단했다. 2017년 북한에 엄청난 경제 제제가 들어가고 미국이 핵전쟁을 암시하는 등의 위기 상황에서도 김 위원장은 핵무장을 선언했고, 2018년 신년사에서 비핵화를 대가로 협상을 제안했다. 그 결단으로 현재 상황이 기적처럼 이뤄졌다. 한 번이 아닌 두 번, 이후 교차 방문도 상상해볼 수 있는 상황이다.

제1차 북미 정상회담 합의문을 보고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다. 이전의 북미 합의는 통상적으로 ▲비핵화 ▲평화협정 관련 소극적 표현 ▲관계 정상화 순으로 나열됐으나, 작년 싱가포르 합의는 ▲북미 간 새로운 관계 수립 ▲한반도의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비핵화 순으로 나열됐다. 이는 북한이 수십 년간 주장한 것이 그대로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미국 내 가장 큰 세력은 분단체제 유지 바라는 세력

제1차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후 7개월간 교착상태에 빠진 이유는 주한미군과 연관이 있다. 밥 우드워드(워터게이트 특종 기자)의 책 ‘공포(Fear)…백악관 트럼프’가 화제가 됐다. 책의 결론을 먼저 말하면, 미국의 현직 고위 관료들이 대통령을 상대로 행정적 쿠데타를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한국(Korea)이다. 그 중에서도 북한(North Korea)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책 발간 전까지 두 얼굴(전쟁광의 얼굴과 김 위원장과 절친한 사이가 된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 고위층 입장에서는 모두 받아들일 수 없는 모습이다. “그냥 이대로”를 외치며 전쟁도 평화도 싫어한다.

미국 고위층이 트럼프 대통령을 공부시키기 위해 작당했다. 전 세계 미군 배치도가 그려져 있는 펜타곤 지하벙커로 데려갔다. 트럼프 대통령은 설명을 다 듣고 “그래서 어쩌라고?(So what?)”라며 “운영하는 데 돈이 얼마나 드느냐. 주한미군 철수하라”고 했다. 이에 미 국방부 장관은 “한반도에 배치된 사드는 북한이 미국을 향해 미사일을 쏘면 7초 만에 탐지할 수 있다. 알래스카 탐지는 30분 걸린다”며 “사드 배치 이유는 겉으로 한국 보호지만 미국 보호다”라고 주한미군과 사드의 필요성을 피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그래서 어쩌라고?(So what?) 얼마짜리냐?”며 철수를 주장했다. 미 고위층 입장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무슨 일을 할지 몰라 공포에 쌓여있다. 그래서 책 이름을 ‘공포’로 지었다.

이 책을 읽고 믿지 않았다. 미국의 정치체제상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틀 후 현직 고위 관료가 <뉴욕타임즈>에 익명으로 기고문을 보냈다. 그는 본인을 미국 행정부 레지스탕스(저항자) 중 한 명이라 칭했다. 실제로 트럼프 행정부 안에 저항세력이 적지 않게 존재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을 이해하지 못한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 한국과 북한의 경제력을 비교하면 ‘한국이 북한을 왜 1대 1로 상대하지 못하지?’라는 의문을 갖게 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항상 ‘철수하거나 한국이 모든 비용을 부담하거나’의 입장을 취한다. 미국 국민들도 이전에 경기가 호황일 때는 몇 개 나라에 군인을 파견하든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미국 경제가 어려운 상황임을 고려해야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부분도 신경 쓰고 있다. 실제로 미국은 탈레반과 평화협정을 논의 중이며, 마무리 되면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이 철수한다. 미국 고위 관료 입장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스몰딜 아닌 빅딜, 종전선언 아닌 평화협정

종전선언이라는 단어의 가장 큰 문제점은 미국과 한국이 서로 그 의미를 다르게 생각한다는 것과 관료들도 종전선언이라는 단어를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 종전선언이 갖는 의미는 전쟁을 종결한다는 상징성 이외의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김 위원장은 작년 7ㆍ27(북한 전승기념일)을 기해 종전을 선언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했고, 작년 10월부터 북한에서는 종전선언 얘기가 사라졌다. 대신 올해 신년사에서 평화협정을 목표로 하는 다자(남ㆍ북ㆍ미ㆍ중)협정을 제시했다. 북한은 7ㆍ27이라는 상징적 날에 하는 종전선언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고 판단하고 바로 평화협정을 제안했다.

스티븐 비건 미국 대북정책 특별대표도 얼마 전 “우리도 전쟁을 끝낼 준비가 돼있다”고 하는 등, 관련 정황은 많다. 이번 북미 정상회담에서 최소한 평화협정의 시작을 알리는 성과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스몰딜이냐 빅딜이냐 물어보면, 빅딜이다. 핵시설 폐기는 협상의 출발점이고 시기를 조율하는 협상(핵무기와 핵물질을 처리하는 방식과 시기)이 이뤄질 것이다. 마찬가지로 평화협정은 위의 진행속도에 맞춰 진행될 것이다. 핵 폐기 방식 중 가장 확실한 방법이 제3국 폐기인데, 북한이 부정적 의견이다가 최근 들어 바뀌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는 마지막 핵이 북한을 떠나는 순간 평화협정이 체결되는 방식을 기대한다. 스티븐 비건 대표도 “마지막 핵무기가 북한을 떠나고 성조기가 걸리는 완벽한 결말을 기대한다”고 했다. 기대한대로 될지는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것은 스몰딜보다는 빅딜이 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스몰딜보다 빅딜이 나올수록 저항세력의 저항도 커진다는 것이다. 미국을 비롯해 한반도, 일본에 분단체제 유지를 원하는 세력이 있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 이들의 반격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평화를 원했던 정권(DJ정부, 참여정부)이 항상 미국에 건 전제조건을 생각해봐야한다. ‘평화가 유지돼도 주한미군 철수 주장하지 않게 하겠다.’ 이 메시지가 저항세력의 저항을 누르기 위한 조치였다. 그래서 속도가 중요하다. 힘든 건 알지만 저항하는 세력이 공고해지기 전에 빠르게 추진해야한다. 김 위원장의 신년사에서 ‘빠르게’라는 말이 눈에 띄는 이유이기도 하다. 빅딜이 끝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빅딜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전쟁 위협으로 국민들 잃은 것 많아···이제 보상해줘야 할 때

뜬금없지만 기본소득 얘기를 해보자. 기본소득제도를 정의해보면, 최소한의 인간적 삶을 보장해주는 제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평화를 주장하는 진영에서도 ‘평화배당금’을 얘기하지 않는다. 그동안 전쟁 준비로 쓴 돈을 이제 복지로 돌려야한다. 문재인 정부 5년 국방비 지출 계획이 270조7000억 원(올해 46조7000억 원)이다. 북한 GDP(국내 총생산)의 1.5배, 일본 국방비의 80% 수준(이 추세면 3~4년 후 일본 추월)이다. 이 수치만 볼 때 우리가 일본의 군비 증강을 지적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예를 들어 5년간 올해 수준으로 동결한다고 했을 때 5년 누적 55조 원을 아낄 수 있다.

또한 현재 한국의 국방비는 GDP 대비 2.6%(일본 0.93%)다. 문재인 정부는 국방비를 GDP대비 2.9%까지 늘리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10년 계획으로 GDP 대비 2.0%로 낮춘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10년간 아낄 수 있는 금액이 250조 원으로 추산된다. 이 정도면 기본소득의 종자돈은 되지 않을까. 많은 정치인을 만나서 이 얘기를 하지만, 아무도 듣지 않는다. 심지어 정의당 사람들조차 꺼리는 분위기다. 기본소득이 아니더라도 평화배당금의 사용처를 논의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아이젠하워 전 미국 대통령은 “만들어진 모든 총과 진수된 모든 전함과 발사된 모든 로켓은 궁극적으로 굶주려도 먹지 못하고 헐벗어도 입지 못한 사람들로부터 빼앗은 것입니다. 진정한 평화는 우리가 빼앗은 것을 돌려줄 때 가능합니다”라고 말했다. 전쟁 위협으로 국민들은 빼앗긴 것이 많다. 이제 평화배당금으로 돌려줘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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