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11월까지 근현대 건축물 ‘보존가치 파악’ 전수 조사
시민단체, 전문성 결여와 기존 등록 건축물 재탕 '우려'

인천시가 근현대 건축물의 가치를 파악하기 위해 전수 조사를 벌인다. 조사 용역 기간은 올해 11월까지다. 시는 2억 7000만원을 들여 인천에 소재하는 모든 근현대 건축물을 조사할 계획이다.

이번 조사는 근현대 건축물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건축자산 가치를 평가하기 위한 것이다. 한옥 등 건축자산의 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른 것이다. 해당 법에 따르면 건축물 중 멸실 위기에 처한 건축물에 대해 지자체는 보존을 위한 일정 수선비를 지원할 수 있는데, 시는 조사를 통해 건축 자산으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건축물을 보존할 계획이다.

시는 건축 자산 평가를 위해 1차 조사를 마쳤고, 전문가 자문을 토대로 2차 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아울러 시는 건축물 보존 여부를 판단할 자산가치 평가 기준을 마련할 방침이다.

시는 올 상반기 중 현장조사를 마무리하면, 하반기쯤 건축자산 평가 대상 후보 건축물의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고있다. 시는 후보 건물을 토대로 심의를 거쳐 소유주 등과 협의해 건축물 보존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아직 후보 건물은 정해지지 않았으나, 중구 답동에 소재한 인천부윤 관사(부천군수 관사) 등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았지만 근현대 건축물로 보존가치가 있다고 평가받는 건물이 주된 대상이 될 전망이다.

시는 건축자산으로 결정한 후보 건축물 중 문화재로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할 경우, 문화재 지정 심의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시가 조사대상 근현대 건축물 중에서 가장 관심을 받는 대상은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건축물이 다수를 이룬다. 이 시기는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배라는 암울한 시기이면서 공교롭게도 봉건제에서 근대로 이행하는 시기다.

현재 남아 있는 일제 강점기 문화유산은 사실상 ‘네거티브(부정적)’ 유산이다. 즉, 일제 조성된 건축물은 우선 네거티브 문화유산 그 자체로 당시 역사를 직시하게 하는 유산가치가 있다.

아울러 봉건제에서 현대로 넘어가는 근대의 건축 변화의 매개 역할을 했기에, 건축 자산으로서 가치가 있다. 인천부윤 관사 등 형태가 온전하게 남아 있는 근대건축물은 과도기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경사’ 사태를 경험한 인천의 역사계와 문화계, 시민사회단체는 시의 이 같은 조사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조사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했다.

2017년 5월 30일 철거된 옛 애경사 건물.(인천투데이 자료사진)

조사 전문성 결여와 재탕 우려… “연도별 계획 수립해야”

애경사는 중구에 소재한 비누공장으로 100년 넘은 근대건축물이었다. 그러나 인천 중구는 2017년 5월 이 건물을 허물었다. 인천의 시민사회단체가 거세게 반발했지만 중구는 밀어 붙였고, 중구는 그것도 모자라 인천 민주화운동의 상징인 답동성당 앞 가톨릭회관도 철거했다.

인천지역 시민사회단체는 이 같은 일을 경험했기에 시의 이번 근현대 건축물 전수조사를 반겼다. 아울러 최근 인천에서 촬영한 영화 <극한직업> 흥행을 계기로 인천의 근현대 건축물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 또한 부쩍 높아졌다.

하지만 시의 조사 실태를 보면 조사의 전문성이 결여 된다는 비판과 새로운 근현대 건축물이 아니라 기존 알려진 건축물 목록을 재탕한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이광호 인천평화복지연대 사무처장은 “근현대 건축물 조사라고 하면 기본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은 자산을 발굴하는게 핵심이다. 그러기위해서는 일제 강점기에 작성한 등기부를 찾아 해석을 해야 한다”며 “이 연구를 하지 않으면 기존에 등록된(알려진) 건축물을 확인하는 데 그치고 말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조사기관의 전문성도 문제다. 인천연구원과 지역 대학이 조사기관에 선정됐지만 하청을 줬다. 원청인 연구원과 대학의 전문성이 근현대 건축물에 조예가 있는 게 아니라 도시계획이다. 그런데 민간업체에 하청을 줬다. 과연 제대로 조사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이에대해 시 관계자는 “아직 조사 초기 단계다. 시민사회가 제기하는 우려를 반영해 인천의 근현대 건축물이 제대로 평가받고 보존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계획”이라며 “1회 성 사업에 그치면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적으론 예산이 부족한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이 사무처장은 “예산이 부족하면 올해 사업으로 끝낼 게 아니라 연도별 계획을 수립해 지역과 조사범위, 기록 기간 등을 단계적으로 조사하면 된다”며 “시 조사가 기존 건축물을 재탕하는 수준에 그치면 제2의 애경사 사태를 막기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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