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선미 인천여성회 회장

[인천투데이] ‘국민남편’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2012년에 방영된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방귀남이다.

귀남이 국민남편으로 등극하기까지 다양한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지금도 회자되는 것은 귀남이가 가족들 앞에서 언어성차별에 대응했던 장면이다. 귀남은 12세 어린 처남에게 반말을 하고, 귀남의 배우자 윤희는 한참 어린 시누이에게 존댓말을 강요받으며 지낸다. 나이 어린 시누이에게 존댓말을 쓰기 싫다는 윤희와 당연히 존댓말을 써야한다는 귀남이의 막내 동생 시누이와의 싸움에서 가족들은 귀남에게 의견을 묻는다.

어느 날 귀남은 처남을 초대한 가족들과의 식사자리에서 “서로 존대하는 것이 좋겠다”며 “처남 많이 드세요”라며 존댓말을 한다. 귀남을 보고 처남은 어색해했고, 가족들은 왜 저러냐며 불편해했다. 귀남은 “아내가 제 동생들에게 존댓말을 하는 게 당연한 거면 저도 처남에게 존댓말을 해야죠”라고 덧붙인다. 결국 귀남과 윤희 모두 처남과 시누이에게 편안하게 말을 트게 된다.

작년에 젠더 전문가 교육에서도 호칭 차별 사례로 이 영상을 보여줬다. 여전히 귀남의 행동은 좋아보였지만 너무 당연한 것이 가족관계 안에서 차별 호칭으로 사용되는 것을 보며 불편했다.

지금은 호주제가 폐지되고 없지만, 혼인신고를 할 때 호주가 아버지에서 남편으로 바뀌는 걸 보고 순간 머뭇거렸던 기억이 난다. 내 호주가 아버지였다는 걸 별로 생각하지 않고 살다가 혼인신고를 하는데 이제 남편이 당연하게 호주가 되는 과정에서 여성은 왜 호주가 될 수 없나 생각했다. 관행과 관습, 익숙한 것들에 질문할 때, 누군가의 불편함에 귀 기울일 때 더 나은 사회로 다가갈 수 있는 것 아닐까.

지난해 국민권익위원회와 국립국어원은 ‘일상 속 호칭 개선 방안’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의견 8254건을 분석, 발표했다. 여성 응답자의 대부분은 물론 남성도 절반 이상이 도련님, 서방님, 아가씨를 다른 용어로 바꿔야한다고 했다. 여성가족부도 ‘국민생각함’ 사이트에서 호칭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 중이고, 그 결과를 토대로 5월에 개선 권고안을 발표한다고 한다.

‘언어의 줄다리기’의 저자 신지영 고려대 교수는 “과거 우리나라 사회는 남성 중심적으로 짜인 가족관계에 걸맞게 호칭체계가 발달해있었는데, 가족관계는 계속 축소되고 사회가 변하는데도 호칭이 그 속도를 따라오지 못했고 심지어 가족 호칭은 사회적 관계로까지 확대됐다”고 했다.

국립국어원은 성차별 언어가 5087개나 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성차별 언어와 속담, 관용 표현이 여전히 넘쳐난다.

서울시여성재단은 서울시 ‘성평등생활사전’을 발표하고 성차별 언어 호칭의 대체 표현을 제안했다. ‘집사람’은 ‘배우자’로, ‘외가’는 ‘어머니 본가’로, ‘미망인’은 ‘故(고) ○○○의 배우자’로 사용하자고 했다. 또한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남자는 돈, 여자는 얼굴’ ‘남자는 일생에서 세 번만 울어야한다’와 같은 성차별적 속담과 관용 표현 톱7을 선정했다. 속담은 사회현상을 압축해 묘사한지라 의식을 규정하는 힘이 있다. 성차별 요소가 담겨있는 언어들을 우리 사전에서 지워가야 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어떤 불편함과 문제를 주는지 살펴보고 바꿔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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