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투데이 심혜진 시민기자] 저녁이 되면 자꾸 시계를 흘끔거린다. 냉장고 앞을 서성이고 주방을 두리번거린다. 내게 음식물 섭취가 허용된 시간은 정오부터 오후 8시까지 하루 8시간. 그 이후엔 물 이외에 아무 것도 먹을 수 없다. 간헐적 단식 중이기 때문이다. 늦은 밤에 출출하지 않으려면 오후 8시 전에 뭔가를 먹어둬야 한다.

지난달 초, 간헐적 단식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본 뒤부터 한 달째 단식을 이어오고 있다. 간헐적 단식의 원칙은 오로지 하나, 정해진 시간에만 음식을 먹는 것이다. 8시간 동안 음식을 먹고 나머지 16시간 공복을 유지한다. 또 다른 방식으론, 일주일에 5일은 평소대로 먹고 2일은 저녁만 먹는 주 단위 간헐적 단식도 있다. 단식 후엔 몸이 원하는 음식을 찾아먹으면 된다.

다큐에서 특히 흥미를 끈 건 갈색지방에 관한 내용이다. 사람처럼 몸 내부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정온동물 몸속엔 갈색지방이 있다. 같은 지방이라도 백색지방과 갈색지방은 역할이 많이 다르다. 백색지방은 남은 지방을 저장해놓은 것에 불과해 너무 많으면 비만해지고 성인병 등 문제를 일으킨다. 반면, 갈색지방은 백색지방을 연료로 사용해 열을 만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갈색지방은 신생아 시기 이후 점점 사라져 성인의 몸에는 남아 있지 않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몸속 백색지방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운동이라는 게 학계 정설이었다. 운동 중 근육세포에서 나오는 이리신이라는 단백질이 저장용 백색지방을 갈색지방처럼 열을 내는 데 사용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2009년에 성인에게도 갈색지방이 수십 그램 남아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갈색지방이 활성화될 때 소모하는 에너지는 몸 전체 에너지 소비량의 최대 20%를 차지할 만큼 엄청나다. 갈색지방조직을 활성화할 수만 있다면 힘들게 운동하지 않고도 불필요한 백색지방을 없앨 수 있다는 얘기다.

예상하듯, 다큐에선 간헐적 단식이 백색지방을 갈색지방으로 바뀌게 한다는 것을 입증한 한 연구를 소개했다. 두 그룹의 쥐한테 똑같은 양의 고열량 먹이를 줬다. 단, 한 쪽은 먹이를 자유롭게 먹게 뒀고 다른 한 쪽은 하루 8시간만 먹게 했다. 16주 후, 자유롭게 먹은 쥐들은 비만해졌지만 간헐적 단식을 한 쥐들은 정상에 가까운 상태를 유지했다.

간헐적 단식이 갈색지방의 활성화에만 도움을 주는 건 아니다. 단식은 장 내 좋은 박테리아를 더 많이 활성화하고, 장의 줄기세포 기능을 강화해 다쳤을 때 회복속도도 빨랐다. 또, 인슐린 민감성이 높아져 혈당을 쉽게 조절할 수 있었고, 혈압도 떨어졌다. 모두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실험 결과다.

한 달 동안 나를 대상으로 실험해본 결과, 체중은 1킬로그램 정도 줄었다. 다른 건강 수치는 측정할 수 없어 알 수 없지만, 내가 느끼는 몸의 변화는 또 있다.

속이 편해지고 피곤이 빨리 회복된다. 인스턴트식품도 덜 먹게 됐다. 오전 9시쯤 일어나 정오까지 빈속인채로 움직이다보면 자극적인 라면을 먹고 싶다는 생각은 절대 들지 않는다. 담백한 것, 부드러운 것, 소화가 잘 되는 것을 찾는다. 밤에 배가 고파서라도 일찍 자리에 눕는다.

내가 한 달 동안 무난히 단식을 이어올 수 있었던 데에는 하루 일과를 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조건이 큰 도움이 됐다. 만일 내게 삼시 세끼를 차려야하는 부양자가 있거나, 회식이 잦은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면 단식을 이어갈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그래서 간헐적 단식은 살을 빼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닌, 내 삶을 어떻게 꾸려갈지 질문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언제 먹고 언제 쉴 것인가. 이 물음을 가능한 한 오래 지니고 있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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