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주 시민기자의 영화읽기 - 증인(Innocent Witness)

[인천투데이 이영주 시민기자]

이한 감독│2019년 개봉

양순호(정우성)는 한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하 민변)’에서 활동한, 사익보다는 공익을 추구한 정의감 넘치는 변호사였지만 파킨슨병에 걸린 아버지 길재(박근형)의 빚과 아버지 부양 등 현실적 문제로 대형 로펌에 취업한다. 유능하면서도 민변 시절 도덕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순호를 이용해 로펌 이미지의 변신을 꾀하려는 로펌 대표 병우(정원중)는 순호에게 새로운 사건 하나를 맡긴다. 10년 동안 한집에 살며 보살펴온 집주인 할아버지를 죽인 혐의로 구속된 가사도우미 미란(염혜란)을 변호하라는 것.

이 사건만 이기면 파트너 변호사로 승진하고 승승장구할 게 뻔히 보인다. 순호는 어떻게든 이 재판에서 이기고 싶다. 순호가 재판에서 이기려면 유일한 목격자인 지우(김향기)의 증언이 증거능력 없음을 증명해야한다. 순호에게는 ‘다행히도’ 지우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청소년이다. 그녀의 말과 행동은 세상이 일반적이라 말하는 상식 범위 바깥이라 비장애인이 보고 듣기엔 이해가 쉽지 않다. 이 점만 ‘이용’한다면 승산이 있다. 그러려면 지우를 법정에 증인으로 세워야한다.

지우를 법정에 세우기 위해 순호는 갖은 노력을 기울인다. 처음에는 지우의 말과 행동을 이해하지 못해 당황하지만 점점 지우의 세계로 들어가고, 낯선 순호를 경계하던 지우 역시 순호에게 마음을 연다. 그러나 지우와 소통하면 할수록 순호는 재판의 진실에 가까이 다가서고, 그것은 순호에게 엄청난 딜레마를 안겨준다. 재판에서 이길 것인가, 진실을 밝힐 것인가.

‘완득이’와 ‘우아한 거짓말’의 이한 감독의 새 영화 ‘증인’은, 서로 다른 존재가 소통하기 위해서는 다름이 틀림이 아닌 다름일 뿐이라는 것을 인정해야한다는 명확한 주제를 감독의 전작들이 그랬듯 따뜻한 휴먼드라마로 풀어낸다.

자기만의 세계에 갇힌 자폐라는 장애를 단순히 도구화하지 않고 편견 없이 이해하려는 선한 노력이 영화 곳곳에 묻어난다. 보통 사람들보다 집중력, 암기력, 청력이 ‘지나치게’ 높은 지우를 보며 “자폐만 없었어도”라고 말하는 순호에게 지우의 엄마 현정(장영남)은 단호하게 답한다. “그렇다면 그건 지우가 아니죠.” 자폐는 ‘결핍’이 아닌 지우라는 존재를 구성하는 하나의 정체성임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지우의 시선으로 보이고 들리는 화면과 소리, 무엇보다 캐릭터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 김향기의 빼어난 연기는 관객들이 그간 가졌을 장애에 대한 편견에 균열을 낸다.

거기까지는 딱 좋았다. 그러나 영화 ‘증인’은 여느 영화가 장애인을 비롯한 소수자를 다루는 오류를 그대로 반복한다. 자신이 몸담았던 민변이 앞장서고 있는 생리대 발암물질 소송에서 로펌의 입장대로 합리적인 척 기업의 입장을 대변하는 등, 점점 속물이 돼가던 순호는 순수한 자폐아(심지어 영화의 영어제목이 ‘Innocent Witness’, 즉 순수한 증인이다.)를 만나 각성하고 본래의 좋은 사람이 된다. 영화 초반부 그렇게 공들여 묘사한 지우의 자폐는 어느 순간 비장애인 남성 순호가 각성하기 위한 계기로 전락한다. 지우의 여자친구 수인(송윤아) 역시 순호의 노스탤지어이자 순수했던 시절의 재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소수자를 그렇게 수단으로 전락시켰으니 영화의 메시지는 주인공 순호의 직접적인 대사로 처리될 수밖에. 교과서가 따로 없다. 비장애인 남성의 입을 통해야만 장애에 대한 편견을 깨자고 말할 수 있다면, 이건 아무리 정우성이어도 용서가 안 된다.

장애에 대한 편견을 깨는 것은 좋은 사람, 착한 사람만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라 옳고 그름의 문제다. 장애인이 반드시 순수하고 착해야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깨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영화는 홍보문구로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라는 지우의 대사를 내세웠지만, 영화를 보고 나니 내게는 다른 지우의 대사가 계속 맴돈다. “아저씨도 나를 이용할 겁니까?” 확실히 영화는 지우의 장애를 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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