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연중기획] 仁川, 마을이 살아야 도시가 산다 (6)
서구 ‘청라푸르지오 재능기부봉사단’

[인천투데이 장호영 기자] 

<편집자 주> 경제 성장에도 불구하고 사회 양극화와 주민 간 갈등, 각종 지역 문제로 인해 지역공동체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특히 함께하는 삶의 시작점인 ‘마을’을 나와 우리를 풍요롭게 하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마을공동체 운동과 사업에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다. 인구 300만 명의 대도시 인천은 8개 구와 2개 군으로 이뤄져있고, 구ㆍ군마다 수십 개의 동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는 수많은 마을들이 있다. ‘마을’이란 동단위보다는 작은 규모의 공간이다. 하지만 물리적 공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일상생활을 함께 하면서 소통을 바탕으로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간을 의미한다. 주민들이 모여 자신들이 속한 마을에 관한 일을 스스로 결정하고 해결하는 마을공동체를 이룰 때 진정한 마을이라 할 수 있다.

마을은 도시를 구성하고 지탱하는 세포와 같고, 그래서 마을이 살아야 도시가 살 수 있다. 마을공동체에 대한 시민의 관심도를 높이고 참여를 넓히기 위해 <인천투데이>는 올해 인천의 다양한 마을공동체를 만나 그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한다.

공동육아, 마을공동체 활동의 출발점

콘크리트 벽에 높은 건물이 가득해 삭막해보일 수 있는 아파트단지. 아파트는 우리나라 주택 유형 중 60%가 넘을 정도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만 층간소음 등으로 이웃과 정이 없는 공간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아파트는 이웃과 정을 나누는 마을의 개념을 가질 수 있을까?

이런 고정관념을 깨고 2017년 국토교통부의 공동주택 공동체 활성화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고, 2018년 1월에는 인천시 마을공동체 만들기 우수 사례로 선정된 아파트가 있다. 바로 서구 청라국제도시에 있는 청라푸르지오아파트다.

청라푸르지오아파트가 이런 영광을 얻은 데는 ‘청라푸르지오 재능기부봉사단(단장 김원진, 이하 봉사단)’의 역할이 컸다. 봉사단은 2016년 6월 결성됐는데, 아파트 입주민 몇 명이 시작한 공동육아가 계기가 됐다.

2014년부터 입주를 시작했는데, 이듬해 11월 아이엄마 몇 명이 모여 이웃끼리 친하게 지내고 소통하자며 공동육아를 시작했다. 영어를 잘하는 엄마는 영어를, 음악을 전공한 엄마는 음악을 가르치는 등,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나누는 품앗이 공동육아를 했다.

이게 입소문이 나면서 다섯 명으로 시작한 공동육아는 열 명으로 늘었다. 더 많은 재능을 나누게 되자 자연스럽게 아파트 전체 주민을 대상으로 강좌를 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함께할 수 있는 주민들을 더 모아 봉사단을 결성했다.

봉사단은 ‘쉐어 웰 위드 아더즈(Share well with others)’라는 슬로건을 걸었다. 자신이 가진 재능을 이웃과 함께 나누자는 것. 봉사단 결성 후 아이뿐 아니라 남녀노소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2016 청라푸르지오 재능기부봉사단 썸머 스쿨(Summer School)’을 개설했다. 유아 영어, 비즈공예, 동화구연, 아트풍선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주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공동육아부터 함께한 김원진 단장은 “무엇보다 폐쇄적이고 삭막한 아파트의 분위기를 소통하고 나누는 분위기로 바꾸고 싶은 마음이 컸다”며 “육아로 경력이 단절된 엄마들의 재능이 너무 아까워 이를 끌어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재능이 없다. 강의 못한다’라고 말하던 엄마들에게 막상 강의를 시키니, 프리젠테이션(시각적 보조자료)까지 준비하고 열성적으로 훌륭하게 해냈다”며 “동네 아이들이 이제는 ‘누구 엄마’나 ‘아줌마’라고 부르지 않고 ‘선생님’이라고 부른다”고 덧붙였다.

인천시 마을공동체 지원 공모사업으로 ‘품앗이 마을학교’ 운영

2018년 9월 주민 대상으로 진행한 전통 떡 만들기 강좌. (사진제공·청라푸르지오 재능기부봉사단)

재능기부라는 단어가 붙은 것처럼 봉사단 강사들은 무료로 강의한다. 강의를 듣는 주민들도 무료다. 2016년 처음 진행한 썸머 스쿨도 모두 무료였다. 하지만 자비로 수업을 진행하다보니 어려움이 있었다. 수업을 지속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대책이 필요했다.

그러던 중 인천시에서 진행한 마을공동체 만들기 공모사업 설명회를 듣고, 2017년 공모사업에 ‘품앗이 마을학교’라는 이름으로 예산 지원을 신청했다. 공모사업 선정으로 예산을 지원받아 1년간 푸드 앤 플래이팅, 플로리스트, 성인 영어회화, 풍선아트, 웰빙요리, 비즈공예, 유아 한자, 키즈 쿠킹, 초등 역사 교육, 진로 컨설팅 등 다양한 강좌를 진행했다.

이렇게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은 예산 지원뿐 아니라 아파트에 호텔리어, 이비에스(EBS) 강사, 클래식음악 전공자, 플로리스트, 바리스타 등 다양한 전문직 종사자들이 살고 있는 덕분이었다.

2018년에도 인천시 마을공동체 만들기 공모사업 지원을 받게 된 봉사단은 한국무용 수업을 진행하며 마을학교 한국무용단을 발족하고 공연을 하기도 했다. 도예수업, 주니어와 시니어 코딩 교실, 영재와 유아과학교실, 천연화장품 클래스, 시니어 쿠킹 클래스, 전통 떡 만들기 클래스, 리본공예 수업, 헬스장 그룹 피티(PT) 등, 더 다양한 강좌로 확대됐다.

봉사단은 마을공동체 활동을 아파트에서뿐만 아니라 인천지역 소외계층으로 넓히는 활동도 했다. 매해 11월 봉사단이 한 자리에 모여 리본공예 수업을 듣고 리본 800여 개를 만드는데, 이를 인천 전체 지역아동센터에 전달한다.

아파트 내 작은도서관도 운영

2017년 9월 진행한 키즈 쿠킹 강좌.(사진제공 청라프르지오 재능기부봉사단)

봉사단은 작은도서관(푸른도서관)도 운영하고 있다. 활용 가치가 떨어진 아파트단지 내 기존 도서관과 주민휴게실을 포함한 유휴공간을 활성화하기 위해 2015년에 ‘작은도서관 살리기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어린이와 노인을 위한 다양한 독후활동과 독서연계 문화수업을 진행했다.

2017년 2월에는 노인 독서동아리와 유아ㆍ어린이 독서동아리를 발족했고, 3개월간 봉사단원들이 만든 커리큘럼으로 독서논술, 창의미술 등 독서수업을 진행했다. 서구로부터 우수 작은도서관으로 선정돼 도서 구입비와 순회 사서 지원비 등을 지원받고 있다.

751세대가 거주하는 아파트단지에 2016년부터 매주 두세 개의 강좌를 운영하고, 강좌 당 주민 15명 정도가 참여하고 있으니 누적하면 참여주민이 1000명은 넘을 것이라고 봉사단은 설명했다.

조은영 봉사단 총무는 “마을공동체 활동을 하면서 이웃들이 누구인지 알게 되고 친해졌다. 층간소음 문제도 웃으며 넘어갈 수 있는 사이가 됐다”며 “마음이 좋아지니 내 삶이 풍요로워지고 아파트도 풍요로워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봉사단은 올해에는 인천시가 아닌 서구의 마을공동체 만들기 공모 사업에 지원할 계획이다. 인천지역 다른 기초자치단체에 비해 마을공동체 관련 지원 예산이 없어 지난해부터 봉사단이 강력하게 예산 마련을 요구한 덕분에 예산이 편성됐다.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저녁 ‘품앗이 마을학교’도 계획 중이다.

김원진 단장은 “우리의 활동이 모든 주민을 만족시킬 수는 없지만, 누구나 참여 가능한 마을공동체 활동을 하고 싶다”며 “재능기부로 강의하는 주민도 다른 주민이 하는 강의를 들을 수 있으니 무료라도 가능한 것 아닌가. 이렇게 주민이 주도하는 마을공동체 활동이 다른 아파트에도 많이 퍼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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