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은 인천청년광장 대표

1월 28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두 분이 돌아가셨다. 한 분은 1993년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피해사실을 증언한 이후 미국ㆍ일본ㆍ유럽 등에서 피해사실을 증언하며 인권활동가로 살아오신 김복동 할머니다.

내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언제부터 알았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문제로 처음으로 눈물을 펑펑 흘린 순간을 기억한다. 서울 마포구에 있는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에 방문했을 때다.

그 박물관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일어난, 혹은 일어나고 있는 전쟁에서 여성인권이 얼마나 무참히 짓밟혔는지를 기록한 곳이다.

박물관에는 피해자 할머니들이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에 고국 땅에 다시 돌아오셨을 때부터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처음 밝혀지기까지, 그 침묵의 세월을 기록한 전시관이 있다. 할머니들은 고국으로 돌아온 뒤에 피해를 위로받고 치유받기도 전에 자신의 삶을 일궈야했다. 그 과정에서 과거의 고통은 다른 사람에게 숨겨야할 것이, 부끄러운 것이 돼버렸다. 가족과 고향의 품으로 돌아왔는데 손가락질을 당해야했고, 남편과 자식들에게 과거를 들킬까봐 노심초사하며 그 긴 세월을 침묵으로 사셔야했다. 그 피해사실을 역사로 기록하기 위해 증언하셨을 때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가해자가 존재하고, 피해자의 아픔이 묻어있는 역사는 언젠가 밝혀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언젠가’가 오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용기가 필요하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그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용기를 냄으로서 세상에 알려졌다. 그럼에도 이 문제가 박물관에 쓰인 ‘아직 해방은 오지 않았다’라는 문구처럼 광복으로부터 74년이 지난 지금도 해결되지 않은 까닭은 무엇일까.

두 할머니의 별세 소식을 접하고,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내용을 찾다가 작년 8월 <한겨레>에서 김복동 할머니를 인터뷰한 영상을 보았다. 영상의 첫 시작은 김복동 할머니의 자기소개다. “응, 나는 책 주인공 김복동입니다. 올해 나이는 93세. 피해자.”

할머니의 첫 마디로 나는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피해자. 그렇다. 김복동 할머니는 피해자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할머니가 강조하신 것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잊힌 역사가 아니라, 나 여기 살아있노라’고, ‘아직 사과도 받지 못한 채 피해자로 살아가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으셨던 게 아닐까? 할머니의 그 말은 분명히 일본 정부를 향하고 있는 것이지만, 이상하게 나를 고개 숙이게 만들었다. ‘일상에서 나는 무엇을 했나’라는 반성으로 인한 반응일 것이다.

할머니는 마지막까지 “아베한테 진심 어린 사죄를 받는 일이 소원”이라 하시고 우리 곁을 떠나셨다. 그리고 자신이 어린 시절에 일본군에 끌려가 제대로 받지 못한 교육을, 지금의 아이들이 돈이 없어서 받지 못하면 안 된다고, 일본 정부에 사과 받고 배상금을 받으면 아이들을 위한 장학금에 쓰겠노라고, 그것을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고 생전에 하신 말씀은 우리의 숙제가 됐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해방은 아직 오지 않았다. 언젠가는 올 것이다. 하지만 그 ‘언젠가‘를 역사의 당연한 물결이라며 방관자나 관찰자로 기다리고 있기에는 생존해계신 스물 세 분의 할머니들에게 너무 큰 짐이 아닐까. 우리가 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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