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에 물만 부어 구우면 비스킷이 된다고 했다. 인터넷에는 가뿐히 성공했다는 인증사진이 수두룩했다. 비스킷은커녕 제대로 익지 않은 반죽 뭉치를 눈앞에 두고 실패를 인정할 수 없었다.

여기서 말하는 비스킷은 치킨으로 유명한 패스트푸드점에서 판매하는 구운 빵 종류다. 크기는 아기 주먹만 하고 바삭한 식감에 맛은 담백하다. 주로 딸기잼을 발라 먹는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우연히 이 비스킷을 집에서 만들어먹을 수 있는 제품을 판매한다는 걸 알았다. 외국에서 만든 믹스 가루 형태의 제품인데 필요한 재료도, 조리법도 간단했다. 물이나 우유를 부어 반죽한 뒤 적당히 나눠 오븐이나 프라이팬, 에어프라이어에 구우면 끝이었다.

패스트푸드 것과 정말 맛이 같은지, 그 점이 궁금했다. 궁금한 건 능력이 허락하는 선에서 해보자는 게 평소 생각이다. 특히 먹는 거라면 더욱. 슈퍼마켓이나 대형마트에선 제품을 구할 수 없어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배송료를 물지 않기 위해 여섯 봉지 값을 결재했다.

ⓒ심혜진.

택배가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한 봉지 뜯었다. 왕년에 오븐에 발효 빵도 구워본 나다. 믹스 제품이야 식은 죽 먹기다. 나는 간단하게 에어프라이어를 사용하기로 했다. 정량대로 물을 부어 반죽했다. 기름종이를 깔고 반죽을 숟가락으로 떠올린 뒤 에어프라이어를 돌렸다. 버터와 밀가루 익는 냄새가 집 안에 퍼졌다. 기대감을 안고, 조리법에 나온 대로 10분 후 꺼내보았다. 어찌된 일인지 윗면은 노르스름하게 익은 반면 밑면은 질척한 반죽 그대로였다. 반죽이 기름종이에 달라붙어 뒤집어지지 않았다. 낭패였다. 익은 윗분을 억지로 떼어내고 익지 않은 부분을 다시 구웠지만 모양도 맛도 기대와 달랐다. 남은 다섯 봉지를 생각하니 돈이 아까워 눈물이 찔끔 나려고 했다.

다들 쉽게 만든다는 비스킷을 나는 왜 실패한 걸까. 에어프라이어가 문제일까, 아니면 성공한 사람이 사용한 기름종이는 내 것과 다른 뭔가 특별한 게 있는 걸까. 물이 아닌 우유를 넣어야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름 이유가 있었다. 제품 포장지에 나온 조리법은 오븐 사용을 전제로 한 것이다. 나는 이 방법을 에어프라이어에 그대로 적용했다. 오븐과 에어프라이어는 공기를 데워 음식을 굽는, 작동방식이 같다. 그렇다고 내부 환경까지 같은 건 아니다. 크기가 달라 뜨거운 공기가 퍼져 내부 온도가 올라가는 데 걸리는 시간과 그 온도를 유지하는 시간이 다르다. 오븐 조리법을 에어프라이어에 그대로 적용하면 결코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없다.

원인을 짐작했으니 다시 한 번 해보기로 했다. 이전보다 온도는 낮게, 시간은 길게 잡았다. 질척했던 밑면이 다행히 꾸덕하게 구워졌다. 뒤집어 다시 한 번 구웠다. 윗면이 조금 탔지만 이 정도면 큰 진전이다. 다음엔 시간을 조금 짧게 하면 될 것 같다. 검증된 조리법이라 해도 상황과 조건에 맞게 변형하는 게 맞다.

사람 사이에서도 흔히 저지르기 쉬운 실수다. 타고난 기질, 경험, 현재 상황 등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내게 맞는 방법이 다른 이에겐 전혀 맞지 않을 가능성이 아주, 대단히 크다. 그럼에도 뭔가를 성공했다는 이유로 쉽게 다른 이에게 그 방식을 권하고 때론 그것이 정답인 듯 강요하기도 한다. 돌아보니 나 역시 그랬다. 세상에서 제일 쉬운 게 꼰대 되는 길인 것 같다. 앞으론 그러지 말자고 다짐하지만 사람이 하루아침에 바뀌진 않겠지. 그래서 슬프지만 그래도 다행인 건, 계속 하다보면 언젠가는 맛있는 비스킷을 구울 수 있으리란 희망이 생겼다는 거다. 오븐과 에어프라이어가 서로 다르다는 걸 잊지 않는 한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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