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혜진의 사소한 과학이야기 181. 멀미
심혜진의 사소한 과학이야기 181. 멀미
  • 심혜진 시민기자
  • 승인 2019.01.28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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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김 채취 과정을 취재할 수 있느냐는 연락을 받았다. 흔히 해볼 수 없는 경험이라 욕심이 났다. 하지만 선뜻 응하지 못했다. 김 양식장을 오가는 배는 크기가 작은 탓에 흔들림이 심해서 멀미를 하는 사람은 아예 그 배에 타지도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어려서부터 멀미가 심해서 20분 이상 버스를 못 탔다. 언젠가부터 버스 정도는 맘 놓고 타지만 그렇다고 버스 안에서 책을 읽을 정도는 아니다. 몇 글자만 읽어도 바로 멀미 증상이 나타난다. 그러니 흔들리는 배는 꿈도 못 꾼다. 김 양식장 취재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멀미는 눈과 귀, 신체가 뇌에 보내는 정보가 서로 일치하지 않아 생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차에서 의자에 앉아 책을 본다고 가정하면, 뇌는 우리 몸이 움직이지 않은 채 앉아서 책을 읽고 있다고 받아들인다. 그런데 실제로는 우리 몸은 차와 함께 빠른 속도로 앞으로 달려가고 있고 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위아래로 움직이며 회전도 한다. 눈과 신체가 정보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할 뿐이다.

그런데 이 움직임을 귀만큼은 아주 예민하게 느낀다. 귀의 가장 안쪽엔 둥근 주머니 한 개와 관 몇 개가 서로 이어져 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림프액이라는 액체가 가득 들어 있다. 몸이 움직일 때마다 관성의 법칙과 원심력에 의해 림프액이 출렁거리는데, 이 림프액의 움직임으로 수직, 수평, 회전을 감지해 신호를 뇌로 보낸다. 이 기특한 일을 해내는 귀 속의 예민한 평형기관은 바로 몸의 균형을 담당하는 전정기관이다. 전정기관이 강한 자극을 받으면 어지럼증을 느끼고 구토가 난다. 바로 멀미 증상이다.

이 전정기관을 약하게 마비시키면 멀미를 막을 수 있다. 이때 사용하는 것이 귀 밑에 붙이는 멀미약이다. 아세틸콜린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을 차단해 전정기관이 보내는 신호를 뇌가 느끼지 못하게 한다. 다만 이 과정엔 시간이 필요해 4시간 전에 약을 붙여야한다.

먹는 약도 있다. 항히스타민제를 사용해 구역질이나 구토증상을 완화하는 방법이다. 중요한 건 붙이는 약이든, 먹는 약이든, 차에 타기 전에 사용해야한다는 점이다. 어떤 멀미약도 사후엔 소용이 없다. 일단 한 번 멀미가 나기 시작하면 탈 것에서 내리는 것밖에는 멀미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 그렇다. 멀미는 치료약이 없다.

치료약이 없는 이유는 아직 멀미의 정확한 원인과 멀미가 발생하는 과정이 명쾌하게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경우만 해도 그렇다. 시골에서 올라온 뒤에도 버스를 탈 때마다 멀미를 하던 내가 어느 날 갑자기 멀미를 하지 않았다. 혼자 처음으로 전학 온 학교에 가던 날, 무려 한 시간 가까이 버스를 타야 해서 걱정이 태산이었다. 조심스런 마음으로 버스에 올랐다. 놀랍게도 멀미를 전혀 하지 않았다. 집에 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너무 신기해 지금도 그때의 상황과 날짜를 또렷이 기억한다.

바로 그날, 전정기관과 눈이 뇌에 어떤 신호를 보낸 건지, 신호를 받은 뇌가 신체에 어떤 명령을 내린 건지, 어떻게 적응 과정도 없이 단번에 멀미를 하지 않는 몸이 된 건지, 나는 아직도 모른다. 심리적 요소가 작용했으리란 심증만 있다. 아직 의학이 밝혀내지 못한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심리와 멀미가 서로 관련돼있다는 많은 사례는 있지만, 그 작용 원리는 알지 못한다. 이왕이면 좀 더 강력한 명령을 내려서 버스에서 책을 읽거나 스마트폰을 보거나 낚싯배를 타도 끄떡없게 해줬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안타까움은 있지만, 그래도 이게 어딘가! 그저 인체가, 인생이, 신비로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