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무더기 틈에 핀 민들레. 최근 동네에 들어서고 있는 작은 책방을 볼 때마다 민들레꽃이 떠오른다. 자본과 규모로는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는 대형 서점과 인터넷 서점 틈에서 자신만의 색깔로 존재를 드러낸 작은 책방은 동네 풍경을 바꾸고 주민의 삶에 빛과 향기를 더한다. 하루하루 책을 팔아 생존을 이어나가기에 여념 없는 인천의 작은 책방들을 세 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 나비날다 책방

‘나비날다’ 책방의 주인은 ‘청산별곡’이라는 별칭을 사용한다.

배다리 헌책방 거리에 있는 ‘나비날다 책방’(동구 송림로 8). 이곳에 들어서면 책보다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것이 있다. ‘반달이’라는 이름의 고양이다. 이곳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반달이가 지키는 무인책방으로 유명하다.

이곳 주인은 ‘청산별곡’이란 별칭을 쓴다. 2009년 배다리에 들렀다가 셔터가 닫힌 채 방치된 상가들을 보고 그의 마음이 움직였다. 인근 작은 상가를 월세로 얻어 자신이 사 모은 책 1000여 권을 옮겨 놓고, 책을 읽으며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을 열었다. 2012년 지금 자리로 옮겨온 뒤, 이곳에서 다양한 문화기획을 하며 무인책방을 운영하고 있다.

중고 책이 대부분이던 나비날다에 몇 년 전부터 새 책들이 수시로 들어온다. 청산별곡이 한 권 한 권 신중하게 구입을 결정한 책들이다. 그는 대형 서점처럼 일단 책을 진열한 뒤 팔리지 않은 책을 반품하는 방식을 거부한다. 모든 책은 그때그때 현금으로 계산을 치르고 들여온다. “이 책들이 다 돈이에요. 책 팔아서 돈 조금 생기면 또 책을 사요.”

그가 책을 사오는 기준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그 책과 어울리는 사람이 생각나는 책, 다른 하나는 자신이 소개하고 싶은 책이다.

책과 소품들이 어우러진 나비날다 책방은 아기자기하다.

“지인 중에 음식 만드는 걸 좋아해서 언젠가는 작은 식당을 열고 싶어 하는 이가 있어요. 음식이야기가 담긴 책을 보면 그 분이 생각나요. 그 책을 잘 보이는 곳에 두고 지켜보는 거죠. 절대 직접 권하진 않아요. 그런데 그 사람이 바로 그 책을 구입하는 일이 종종 있어요. 저는 그게 그렇게 재밌고 신이 나더라고요.”

관계가 늘어날수록 책방의 책도 늘어갔다. 책방이 살아남는 방법은 어쨌든 책을 파는 것. 그는 작은 서점이 살아갈 방법을 날마다 고민한다. 최근에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책방에서 강의한 작가 네 명에게 각각 세 권의 책을 추천받고 그 작가들이 쓴 추천사를 책과 함께 진열했다. 시인은 시집을, 소설가는 문학책을, 번역가는 번역서를 소개하는 식이다. 책방을 찾은 이들은 추천사를 꼼꼼히 살피며 책을 골랐다. “작가들은 책방에서 강의해서 좋고, 책방은 작가들의 추천 책을 소개하고 팔아서 좋고, 손님들은 책 선택에 도움을 받고, 서로 이롭게 하잖아요. 이런 관계 좋지 않아요?”

그는 문화기획자이기도 하다. 문화기획을 해서 번 돈으로 책방의 적자를 때운다. 나비날다는 배다리에서 책을 매개로 다양한 강의와 행사를 여는 거점이다.

그는 “책방이 작다고 할 일도 적은 건 아니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만큼 바쁘다”면서도 올해는 동네에서 어떤 사업을 벌일 건지 생각하며 눈을 반짝인다. 나비날다가 문을 연 지 올해로 만 10년이다. 일곱 평의 작은 책방을 지켜온 녹록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 청산별곡이 추천한 책

 

청산별곡이 추천한 책.

- 소설집 ‘2회 아코디언북 짧은 소설 프로젝트’
나비날다에선 2017년과 2018년 짧은 소설 공모전을 열었다. 어떤 지원금도 없이, 책방에서 시간과 인력, 비용을 들여 진행했다. 전국에서 많은 이들이 소설을 써서 이메일로 보냈고, 이 가운데 수상작 열편을 골라 책으로 엮었다. 나비날다에서만 살 수 있는 책이다.

- ‘같이 읽고 함께 살다’ (장은수 지음, 느티나무책방 펴냄)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는 독서공동체를 찾아가 인터뷰한 책이다. 달동네 야학에서 맺은 인연으로 38년째 함께 책을 읽는 상록독서회, 충남 홍성의 한 시골 마을에서 1985년부터 서른 해 넘게 같이 책을 읽는 할머니 독서모임, 한 해 만에 마흔한 곳의 독서모임이 생겨나는 기적을 이룬 강원도 홍천의 홍천여고 등, 독서공동체 24개가 소개돼있다. 청산별곡은 이 책을 읽고 책모임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추천 이유로 꼽았다. 

# 책방 모도

책방 모도의 허름해보이는 외관은 서점 같지 않다.

오르막내리막이 심한 동구 화수동 주택가 골목. 도무지 책방이 있을 것 같지 않은 곳에 ‘책방 모도’(동구 화수로 47번길 14)가 있다.

모 대표, 도 대표로 각자를 지칭하는 이십대 동갑내기 친구 둘이서 지난해 1월 문을 열었다. 인천의 신도시에서 자란 이들에게는 동인천이야말로 ‘진짜 인천’의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동인천 인근에서 “재미있는 뭔가”를 해보고 싶던 중, 제주도의 한 책방에서 잠시 일을 하면서 책방의 매력을 느꼈다. 임차료가 싼 곳을 찾다보니 화수동까지 왔다.

내부 공사를 하는 이들에게 이웃 주민들은 한 목소리로 말했다. “장사 안 될 거라고, 여기 사람도 안 다니고 동네에 노인들밖에 없다고, 엄청 말리셨어요.”

그래도 멈출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모 아니면 도’ 하는 심정으로 해보자고 결심한 터였다. ‘모도’란 이름도 여기서 따왔다.

반전은 작은 책방에서도 일어났다. 책방 문을 열자 그렇게 말리던 동네 주민들이 책방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이 동네에서 제일 가까운 서점에 가는 것도 어르신들에겐 힘든 일이었어요. 그분들은 인터넷 이용도 잘 못하시잖아요. 어르신들은 약초도감이나 한국사 관련 책을 많이 찾으세요. 필요한 책은 주문도 하시고요. 어르신들이 우리 책방을 이 정도로 이용하시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는데, 정말 기쁘죠.”

노인들뿐만이 아니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과 초등학교 아이들도 이곳을 놀이터처럼 드나든다. 여성주의 책이 꽂혀 있는 서가에서 한참을 머무는 중학생들을 보며 그들이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을 주문해 꽂아 두기도 했다. 책방 앞 어린이집 아이들이 볼 수 있게 입구엔 그림책도 진열해놓았다.

이들이 책을 들여오는 첫 번째 기준은 ‘내가 읽고 싶은 책, 읽고 좋았던 책’이다. 문학을 전공한 모 대표는 문학에, 사회과학을 전공한 도 대표는 사회과학에 관심이 많다. 두 번째는 사회와 연대하고 공유할 수 있는 책이다. 최근엔 과학이나 예술 분야의 책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그 분야의 책을 의식해서 들여놓기도 했다.

‘책방 모도’ 내부는 일반 가정집 서재와 비슷해 보인다.

책방을 운영한 지난 1년 사이 이들에게는 강렬한 인상을 남긴 사건이 있었다. 지난해 9월 동인천 북광장에서 인천퀴어문화축제가 열릴 때, ‘모도’도 그 뜻에 함께 하고자 일주일 동안 성소수자 책을 모아 진열하고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 스티커를 제작해 무료로 나눴다. 퀴어축제는 일부 기독교 세력의 반대로 엉망이 됐다.

이후 근처의 한 도서관에서 ‘나의 첫 젠더수업’을 쓴 김고연주 작가의 북콘서트를 모도에서 열겠다며 장소 대여를 요청했다. 지역 서점 활성화 사업의 일환이었다. 그런데 ‘젠더’라는 말 때문인지, 도서관으로 행사를 취소하라는 민원전화가 빗발쳤다. 결국 행사는 취소됐다.

“퀴어축제가 제대로 열리지 못하고 북콘서트까지 취소되는 걸 보니, 오히려 이런 행사는 우리가 비용을 들여서라도 여는 게 맞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작가에게 연락하고 관객을 모집했죠. 예상보다 훨씬 많은 분이 참여해주시고 반응도 좋았어요.”

이 일을 계기로 두 대표는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을 때 반응도 좋고, 성취감도 크고, 의미가 크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 책방에선 특별한 프로젝트를 계획 중이다. 일명 ‘책방 모도의 비밀스러운 권유’다. 한 달에 책 한 권을 정해 제목을 숨긴 채 판매하는 방식이다. 책에 대한 두 대표의 글도 함께 보낼 생각이다.

이들의 목표는 일단 3년을 버티는 것. “인터넷 약정기간이 3년이라 그 전에 그만두면 위약금을 물어야하기 때문”이란다. “우리가 이 공간에서 그냥 오래 버티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꾸준히 버티는 것만으로도 무언가를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두 대표의 바람은 3년이 5년으로, 5년이 10년으로 이어지는 것이다.(개점 시간 오후 1~9시, 수요일 휴무)

# 모 대표와 도 대표가 추천한 책

 

모 대표와 도 대표가 추천한 책.

- ‘나의 첫 젠더 수업’(김고연주 지음, 창비 펴냄)
직업, 사랑, 다이어트, 모성 신화를 비롯해 최근의 여성 혐오 이슈까지 남녀를 둘러싼 오래된 오해와 궁금증에 쉽고 명쾌하게 답하는 책이다.

“십대들이 편하게 읽을 수 있는 페미니즘 도서에요. 우리 책방에 교복 입고 오는 친구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아서 추천해요. 책방에서 처음으로 북콘서트를 연 책이라 더욱 의미가 깊답니다.”

- ‘보통여자 보통운동’(이민희 지음, 산디 펴냄)
일하는 여성 열 명이 어떻게 각각의 운동을 지속할 수 있었는지, 어떻게 시간을 쪼개서 운동을 삶에 정착시켰는지, 그리고 운동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담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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