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에서 잠만 잔 ‘대형마트규제법안’, 18대 국회는?

자영업자 한 달 만에 22만 4000명 실직

신자유주의 금융위기에서 비롯된 경제 불황이 깊어지면서 취약계층인 비정규직과 영세 자영업자가 실업으로 내몰리고 있다.

통계청이 올 2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자영업자 수는 597만명으로 2007년보다 7만 9000명이 감소했다. 이는 97년 IMF 외환위기 직후인 2000년(586만 4000명) 이후 8년 만에 처음으로 600만명 밑으로 떨어진 것이다. 자영업자 수는 2005년 617만명까지 늘어난 뒤, 지난해까지 3년 연속 줄어들고 있다.

특히 지난해 12월 자영업자 수는 577만 9000명으로 11월 600만 3000명에 비해 한 달 사이 무려 22만 4000명이나 감소했다. 이는 경제 불황으로 인해 자영업의 대다수를 이루는 도소매업과 음식업 등의 폐업이 속출한 데서 기인한다.

때문에 자영업자들은 최소한의 수익을 보장 받기 위해 3~4년 전부터 가맹점 카드수수료율(3.0~4.5%)을 인하하고 대형마트를 규제해야한다고 주장해왔다. 자영업자들은 대형마트(1.5~2%)에 비해 두 배 이상 높은 카드수수료율을 지불하고 있다.

96년 유통시장 개방과 더불어 공룡으로 성장한 대형마트로 인해 중소상인의 몰락과 납품업체의 채산성 악화, 비정규직 양산 등의 사회적 문제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때문에 이를 법으로 규제해야한다는 목소리가 지속돼왔다.

주유소연합회와 슈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대형마트규제대책위 등의 지속적인 관련법 제ㆍ개정 운동으로 17대 국회 때 3당(한나라당ㆍ열린우리당ㆍ민주노동당)에서 각각 대형마트 규제를 위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과 ‘대형마트 규제 특별법’ 등을 발의하긴 했지만, 토론 한번 되지 못하고 잠들고 말았다.

이는 한국정치 구조상 당론으로 정해지지 않으면 민감한 법안이 통과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당시 당론으로 정한 곳은 민주노동당뿐이었으며, 다수 의석을 차지한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은 당론으로 정하지 않았다.

한나라당 국회의원도 규제법 찬성했건만

그러한 가운데 2008년 총선이 시작됐으며 자영업자가 집중돼 있는 부평의 경우 모든 당의 후보자가 시장 활성화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특히 18대 국회 입성에 성공해 국회 행정안전위원장을 맡고 있는 한나라당 조진형(부평 갑) 국회의원도 당선 직후 ‘대형마트 규제는 지금이라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18대 국회가 개원한지 1년이 지났지만, 지역상권 보호와 자영업자와 중소유통업자 육성을 위한 ‘대형마트규제 관련법’ 제ㆍ개정 논의는 전혀 다뤄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18대 국회가 개원하기 전 상공의 날(3월 19일)을 기념해 ‘대형마트규제와 중소상공인육성을 위한 인천대책위’는 국회에서 대형마트 규제법안 제정을 위한 ‘600만 입법청원’운동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고 운동에 돌입했다.

이후 18대 국회가 들어서면서 대형마트 규제를 위한 야당 일부 국회의원의 입법 추진과 전통재래시장 상인들의 입법 청원운동이 본격화됐다. 18대 국회가 개원하면서 대형마트 규제는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다.

자유선진당 이상민 의원, 민주당 강창일 의원이 대형마트 규제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여기에 전국상인연합회 소속 16개 광역시ㆍ도 회장단은 지난해 9월 정부가 대형마트 규제에 나설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자영업자 보호위해 ‘초당적 협력’ 절실

그렇게 다시 1년이 흘러 상공의 날이 다시 찾아왔다. 대형마트 간 출혈경쟁을 무릅쓴 추가입점과 SSM(슈퍼슈퍼마켓)의 확산, 대형유통망을 앞세운 편의점의 구멍가게 잠식은 여전하다. 이로 인해 도소매업자들은 통계청 발표처럼 폐업으로 내몰리고 있다.

19일 상공의 날을 기념해 국회에서는 18대 국회 개원 이래 처음으로 민주노동당 이정희 국회의원과 전국상인연합회는 공동으로 대형마트 규제와 자영업자 보호를 위한 토론회와 기자회견을 열기로 했다. 이정희 의원실은 여야 국회의원들에게 국내 자영업자의 실상과 이에 대한 대책마련을 환기시키기 위해 자리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이정희 의원은 “지난 2월 임시국회 때도 ‘MB악법’ 대신 민생안정 차원에서 민생특위를 제안했다”며 “대형마트 규제법안은 민생법안이다. 폐업과 실직으로 내몰리는 자영업자와 납품단가 후려치기로 고생하는 중소제조업, 고용이 불안하기만 한 비정규직을 위해 초당적인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신근식 전국상인연합회 대형마트규제위원장과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김경배 한국슈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장, 신규철 대형마트규제와소상공인살리기인천대책위 집행위원장이 참석해 대형마트 규제법안 도입을 역설할 예정이다.

그동안 정부는 대형마트에 대한 규제가 세계무역기구(WTO) 규범 위반이라며 관련법 제정을 거부해왔다. 이와 관련해 18일 토론회에 경희대 최승환 법대 교수가 나와 WTO 규범 내에서도 대형마트를 규제하는 것이 위법이 아님을 설명할 예정이다.

이번 토론회는 국내 유통산업 전반을 책임지고 있는 지식경제부에서도 참석하기로 해 눈길을 끈다. 이날 김종화 지식경제부 유통물류과장은 토론자로 참석해 정부 측 입장을 설명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인태연 인천상인대책협의회 사무국장은 “이대로 3년 가면 우리 상인들은 다 망한다. 그만큼 절박하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각 당이 대형마트 규제를 당론으로 정해야 한다”며 “정치인들의 못된 버릇은 말로 안 바뀐다. 그래서 상인들의 힘이 필요하다. 지난해부터 논의되기 시작한 대형마트 규제를 위한 ‘전국상인연대’를 조직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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