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중국음식점에서 모임을 했다. 내가 앉은 식탁엔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앉았다. 사는 지역도, 성별도, 하는 일도 모두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글을 쓰고 싶어 한다는 것. 글쓰기 수업에서 만난 사이다. 수업이 끝난 지 몇 달 지났지만 글로 각자의 삶을 나누며 쌓은 정 덕분인지, 여전히 끈끈함이 남아 있다.

모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내가 이 모임을 각별하게 여기는 이유는 또 있다. 글쓰기 수업에서 만난 사람들 사이에는 특별한 위계가 생기지 않는다. 저마다 한 편씩 써온 글을 다 함께 읽으며 글의 완성도와 메시지, 감동 유무를 기준으로 의견과 조언을 나눈다. 그가 사회에서 어떤 일을 했든, 돈이나 나이가 많든 적든, 그 수업에서만큼은 그가 아닌, 그가 쓴 글이 주인공이다. 현란한 글 솜씨도 투박하지만 진솔함이 담뿍 담긴 글 앞에선 빛이 나지 않는다. 진실이 담긴 글, 온몸으로 겪어낸 삶을 툭 던지듯, 때론 토해내듯 써낸 글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강력한 힘이 있다.

각자 원하는 식사를 하나씩 시키고 함께 먹을 탕수육도 주문했다. 짜장, 짬뽕, 볶음밥을 먹으며 근황을 나눴다. 수업이 끝나니 글을 쓰지 않는다는 하소연과 그동안 쓴 글을 모아 책으로 엮자는 이야기까지, 수업의 감흥이 연말까지 이어져 마음이 훈훈했다.

ⓒ심혜진.

잠시 후 탕수육이 나왔다. 가장 나이가 많은 이가 입을 열었다. 탕수육 맛을 보면 이 식당이 음식을 잘 하는 곳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단다. 훌륭한 탕수육이 갖춰야하는 조건이 무엇인지 모르는 나에게는 그냥 어디서든 맛볼 수 있는 흔한 맛이었다. 그가 다시 말을 꺼냈다. 탕수육 고기로 냉동육을 사용하면 냄새가 나기 쉬운데 이 탕수육에서 그 냄새가 약간 난다고 했다.

그의 말을 옆 사람이 받았다. 냄새도 그렇고, 튀김옷이 고르게 묻지 않아 군데군데 반죽이 덩어리로 뭉쳐 있다고 했다. 그의 건너편에 있던 이도 한마디 거들었다. 자신은 소스를 찍어먹는 ‘찍먹파’인데 왜 묻지도 않고 소스를 부은 건지 모르겠단다. 요즘 웬만한 곳에선 다들 소스를 어떻게 할지 묻는다면서. 그러자 맨 처음 말을 꺼낸 이가 이 말을 받았다. 원래 탕수육은 바삭한 튀김이 소스에 적셔진 맛으로 먹는 것인데, 요즘 젊은 사람들이 ‘찍먹’이네 ‘부먹’이네 하는 것은 먹을 줄 모르는 소리라는 거다. 찍먹파인 친구가 입을 꾹 다물었다.

이야기는 탕수육의 친척격인 꿔바로우로까지 번졌다. 꿔바로우는 돼지고기에 전분을 입혀 튀긴 뒤 새콤달콤한 소스를 부어 먹는 중국요리다. 꿔바로우를 처음 만든 곳은 중국 하얼빈인데, 19세기 러시아에서 대륙횡단철도를 하얼빈에 건설하면서 러시아 고위 관료들이 많이 오갔고, 그들을 대접하기 위해 그들의 입맛에 맞는 요리를 하얼빈 관청의 수석 주방장이 만들었다. 그것이 꿔바로우이고, 그 주방장이 만든 식당을 지금도 하얼빈에서 몇 대째 이어 운영하고 있다는….

아, 차라리 글로 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한 사람에게 이 길고 방대한 이야기를 듣는 건 무척 지루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문제 많은’ 탕수육을 묵묵히 먹는 이가 있었다. 내 옆자리에 앉은, 식탁에서 가장 나이 어린 이였다. 그러고 보니 그는 아까부터 말이 없었다. 그에게 살짝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먹을 만해요?” “네, 저는 괜찮은데요.” 그가 고개를 내 쪽으로 기울이며 말했다. “음식은 그냥 맛있게 먹으면 되는 거죠.”

꿔바로우와 탕수육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다. 글이 사라진 자리에 곧바로 위계가 끼어들었다. 그래, 이게 내가 사는 세상이었지. 씁쓸했다. 나는 옆자리 친구와 그 ‘꿔바로우’를 번갈아 보며 생각했다. 어떤 자리에서 맘대로 떠들 수 있는 권력과 자격에 대해, 성숙과 늙음에 대해, 아는 게 늘어나는 만큼 맛없는 음식이 많아지는 이유에 대해, 말과 글과 삶에 대해. 나이 한 살을 더 먹은 나는 작년보다 어떻게 하면 덜 ‘늙을’ 수 있을지, 인생 최대의 고민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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