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평론] 서로 사랑하고 번갈아 서로 이롭게 하라
[도서평론] 서로 사랑하고 번갈아 서로 이롭게 하라
  • 이권우 도서평론가
  • 승인 2019.01.14 11: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도서평론 - 묵자

이운구 옮김 | 길 출판 | 2012.3.

묵자를 무려 2년에 걸쳐 읽었다. 농담이다. 지난해 말부터 올 초에 걸쳐 읽었을 뿐이다. 별거 아닌 거로 썰렁한 농담을 한 데는 이유가 있다.
묵자 관련 책은 두루 읽었다. 특히 맹자를 공부하다보면 묵자를 읽지 않을 수 없다. 맹자가 맹렬히 공격하는 철학자 가운데 대표적 인물이 묵자다. 특히 겸애(兼愛)는 상당히 중요한지라 묵자의 겸애편을 직접 읽기도 했고, 관련 도서도 두루 찾았다. 그러다 책 전체를 읽어보고 싶어 도전했는데, 이상하게 그럴 때마다 완독하지 못했다.

고전은 읽어보면 고전을 면치 못하기 일쑤다. 관련 해설서를 먼저 읽어도 정작 직접 읽으면 상당히 어려운 경우가 잦다. 그러니 혹시 주변에서 고전 정도는 읽어야 교양인이고, 고전은 별로 어렵지 않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면, 한 번쯤 의심해볼 만하다.

지적 과시욕이 심하거나 허세를 부리는 사람이라고. 책을 많이 읽다보면 그 책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여러 이유를 눈치챈다. 다른 무엇보다 관련 지식 부족이 가장 큰 원인이다. 밑그림을 모르고서야 전체를 파악하기란 난망한 일이다. 다음으로 번역서가 많은 현실에서 볼 적에 번역의 문제도 상당히 중요하다. 일단 다른 언어를, 그것도 고전을 현대의 우리말로 옮긴다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읽히지 않는 책은 분명히 있다.

내가 유독 묵자 읽기가 어려웠던 것이 번역의 문제였음을 이번에 다시 확인했다. 널리 알려진 판본이 있어 읽었지만 잘 이해되지 않았다. 이해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른바 가독성, 잘 읽히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번역본으로 도전해 보았는데 역시 실패했다. 솔직히 자괴감이 들었다. 책 읽어온 해가 몇 해째인데 이 정도도 읽지 못하는가, 하고 말이다. 그러다 선배한테 이운구 번역본을 추천받았다. 국내에 묵자 전공자가 별로 없는데, 이에 정통한 학자가 아쉽게도 1권만 번역하고 돌아가셨다는 말도 들었다. 그래서 지난 연말에 읽기 시작한 게 이운구 번역의 묵자였다.

잘 읽혔다. 배경지식이 힘을 발휘했다. 덕분에 새로운 게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전문가들의 해석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았다. 건성으로 넘어가기 쉬운 대목에 방점을 찍고 그게 얼마나 중요한지 말해주지 않았다면 어설프게 이해하고 넘어갔을 대목이 여럿 있었다. 고전을 읽고 해설서를 보는 게 나은지, 그 반대가 나은지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교양인 수준이라면 고전을 읽었다고 그칠 일이 아니라 그 의미를 곱씹어본 해설서를 꼭 읽어야하는 것은 분명하다 싶었다.

이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다. 안 읽히면 자신을 탓하지 말고, 번역서를 바꿔 읽어보라고. 그러니, 어떤 번역이 가장 좋은 거라 말하기는 어렵다. 도서관에 가서 번역서 여러 권을 빌려 훑어보면서 자신에게 맞는 책을 고르는 게 제일 좋다. 책도 발품을 팔아야하는 법이다.

이번에 묵자를 읽으면서 새삼 많은 것을 확인했다. 겸애(兼愛)만 강조했는데 교상리(交相利)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다. 묵자가 말했다.

“만약 지금 천하의 군자가 진심으로 천하가 부유하기 바라고 그 가난을 싫어하며 천하가 다스려지기 바라고 그 어지러움을 싫어한다면, 장차 아울러 서로 사랑하고 번갈아 서로 이롭게 하여야 한다. 이것이 성왕의 법이고 천하를 다스리는 도다.”

또 다른 것은 묵자와 홉스의 유사성이다. “모두 그 자신의 의(義)만을 옳다 하고 남의 의를 그르다 하게 된다. 이런 까닭에 심할 경우는 서로 무기를 들고 싸우고 가벼울 경우라도 서로 언쟁할 것이다.” 그러고 나서 말했다. “이 나라가 다스려지는 까닭이라는 것을 헤아려 볼 적에 무엇이겠는가. 오직 위로 함께 동조하는 한 가지 의를 가지고 다스리는 법을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막는 절대권력의 출현을 옹호했다.

읽으면 보이는 게 있다. 포기하지 말고 방법을 바꿔 고전읽기에 도전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