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연중기획] 仁川, 마을이 살아야 도시가 산다
2. 미추홀구 숭의4동 말벗독서동아리

<편집자 주> 경제 성장에도 불구하고 사회 양극화와 주민 간 갈등, 각종 지역 문제로 인해 지역공동체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특히 함께하는 삶의 시작점인 ‘마을’을 나와 우리를 풍요롭게 하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마을공동체 운동과 사업에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다.

인구 300만 명의 대도시 인천은 8개 구와 2개 군으로 이뤄져있고, 구ㆍ군마다 수십 개의 동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는 수많은 마을들이 있다. ‘마을’이란 동 단위보다는 작은 규모의 공간이다. 하지만 물리적 공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일상생활을 함께 하면서 소통을 바탕으로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간을 의미한다. 주민들이 모여 자신들이 속한 마을에 관한 일을 스스로 결정하고 해결하는 마을공동체를 이룰 때 진정한 마을이라 할 수 있다.

마을은 도시를 구성하고 지탱하는 세포와 같고, 그래서 마을이 살아야 도시가 살 수 있다. 마을공동체에 대한 시민의 관심도를 높이고 참여를 넓히기 위해 <인천투데이>은 올해 인천의 다양한 마을공동체를 만나 그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한다.

근현대사 간직한 추억의 장소들

지난해 9월 진행한 50년대 마을이야기 행사에서 전래놀이 체험을 하는 주민들.(제공·말벗독서동아리)

미추홀구 숭의4동에 있는 제물포시장은 영화 ‘써니’와 ‘신세계’ 촬영지로 유명하다. ‘써니’는 2011년 개봉해 1980년대 시절 향수를 자극하며 7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흥행작이다. ‘써니’의 주인공인 나미와 친구들이 다른 학교 학생들과 대치한 상태에서 사투리 욕설과 방언이 터져버린 나미를 보고 다른 학교 학생들이 도망가는, 그 인상적 장면이 찍힌 곳이 바로 제물포시장이다.

제물포시장은 1972년 점포 105개로 개설됐지만, 1990년 노후화로 폐쇄됐다. 1997년 재개발 사업 지구로 지정돼 2003년 주상복합건물로 재개발하려했지만, 여러 갈등으로 개발은 중단되고 오래된 건물들이 그대로 방치됐다. 방치된 시장이 오히려 영화 촬영지로 각광을 받게 된 것이다.

이밖에 숭의4동에는 미군의 군사물품을 실어 나르는 철도로 사용하다 1994년 폐선됐고 2005년 주민 쉼터로 조성된 길이 1.4㎞의 주인공원, 삼학소주를 생산하다 1970년 폐쇄된 와룡양조장 부지, 1865년 만들어진 활터 무덕정, 1960년대 고속도로 건설 자재를 캐던 채석장 등, 한국의 근현대사를 간직한 추억의 장소들이 가득하다.

친목모임에서 독서토론모임으로

2016년 12월 독서토론 모임을 하고 있는 말벗독서동아리 회원들.(제공·말벗독서동아리)

숭의4동의 근대문화유산들로 마을이야기를 만들고 유치원생과 초등학생, 주민들을 대상으로 마을의 역사적 장소를 돌아보며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말벗독서동아리 회원들이다.

말벗독서동아리는 숭의4동에 오랫동안 거주한 65세 이상 노인들로 구성된 독서토론모임이다. 65세부터 77세까지, 회원 7명이 활동하고 있다. 이 동아리가 처음부터 마을 역사와 근대문화유산에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다. 60세를 넘긴 마을이웃들이 친목모임을 하다가 2010년 1월 말벗독서동아리를 만들어 독서토론모임을 시작했다.

회원들이 책을 좋아한 것도 있지만, 책을 읽은 후 소감을 이야기하고 서로 토론하며 삶과 역사를 배우는 점이 좋았다. 매달 한 번씩 책을 읽고 토론하는 정기모임을 지속하고 있다.

모임은 2016년부터 2년간 미추홀구립도서관인 학나래도서관에서 책 구입비를 지원받으며 더욱 활발해졌다. 역사와 경제, 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가지고 토론했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는 회원부터 ‘굿바이 조선’과 ‘다시 찾는 역사’를 꼽는 회원까지, 회원들의 색깔도 다양하다.

회원들은 책을 읽고 토론하는 것뿐 아니라, 마을 경로당 노인들의 말벗이 돼는 활동과 청소 봉사도 하고 있다. ‘금도끼 은도끼’ 등 전래동화로 도서관에서 어린이들에게 동화구연을 하는 재능기부 활동도 했다. 마을 경로잔치와 음악회, 독거노인을 위한 시티투어와 연탄 배달 등도 진행했다.

마을 역사·이야기 찾아내고 알려
 

지난해 9월 진행한 50년대 마을이야기 행사에서 해설사 설명을 듣고 있는 주민들.(제공·말벗독서동아리)

지난해에는 인천시 마을공동체만들기지원센터가 공모한 마을공동체 활동 사업에 ‘초등생ㆍ청소년ㆍ주민들에게 들려주는 50년대 마을이야기와 전래놀이 체험학습’이 선정, 예산을 지원받아 이 사업을 중점적으로 펼쳤다.

숭의4동 역사가 담긴 장소 14곳을 표시한 ‘주인공원ㆍ수봉공원 마을이야기’라는 지도를 제작했고, 4월부터 11월까지 매달 2회 활동했다. 숭의4동 주민센터가 유치원ㆍ어린이집ㆍ초등학교 등에 공문을 보내 어린이와 주민들의 참여를 도왔고, 회원들은 지도에 담긴 14곳을 돌며 장소와 마을의 역사를 해설하고 주인공원에서 전래놀이 체험활동을 운영했다.

올해에도 마을공동체만들기지원센터의 공모 사업에 신청할 계획이다. 지난해보다 더 많은 예산을 지원받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마을과 역사를 알리고 싶은 마음이 크다. 혼자 사는 노인이 많은 마을이라 형편이 어려운 노인을 돕는 활동도 더 많이 하고 싶어 한다. 특히 올해에는 주인공원과 수봉공원에 담긴 둘레길 코스에 ‘쓰레기 무단투기 지역을 꽃길로 바꾼 곳’도 포함하려 한다. 이 꽃길은 숭의4동 주민들이 구성한 ‘아름다운 꽃실 공동체’가 꾸몄다.

동아리 회원들은 자신들의 활동이 바탕이 돼 숭의4동에도 마을박물관이 하루 빨리 들어서길 바란다. 미추홀구는 2015년부터 교육부 인문도시 지원사업 일환으로 인천시립박물관과 마을박물관 조성 사업을 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토지금고ㆍ쑥골ㆍ독정이에 마을박물관을 세웠다. 마을박물관은 마을의 역사와 문화유산 등을 보관하고 전시하는 박물관이다. 

“마을 역사와 이야기 알면 애향심이 더 커질 것이다”
[인터뷰] 말벗독서동아리 김용석 회장과 박상철 부회장

말벗독서동아리 박상철 부회장(왼쪽)과 김용석 회장.

말벗독서동아리를 시작할 때부터 함께한 김용석(71) 회장과 박상철(77) 부회장은 “책에서 역사를 알고 역사를 토론하며, 마을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마을 역사를 알면 마을공동체가 형성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입을 모았다.

박 부회장은 “마을에서 술 한 잔 하는 친목모임으로 만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70대 후반이 됐다”며 “책모임을 하다가 자격증을 따서 동화구연도 하고 전래놀이도 가르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서 “마을에는 1960년대에 생긴 다방과 1950년대부터 운영한 이발소,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나무 전신주, 수봉산 빨래방 터 등, 아직도 기록해야할 문화유산이 많다”며 “이런 곳을 더 발굴해 이야기를 추가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김 회장은 “65세 이상 어르신들이 독서동아리를 하고 마을에서 이렇게 활동하는 경우가 없다고 들었다”며 “마을이 잠깐 머물렀다 가는 곳이 아닌, 고향으로 생각해야 발전한다고 생각한다. 마을 역사와 이야기를 주민들이 많이 알면 애향심이 더 커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끝으로 “지난해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 마을 이야기를 알게 돼 매우 좋다고 했다”며 “우리의 활동으로 마을이 발전하고 외지인도 많이 찾아오는 곳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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