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의 말들] 명작은 재능만으로 탄생하지 않는다
[그림의 말들] 명작은 재능만으로 탄생하지 않는다
  • 문하연 시민기자
  • 승인 2019.01.07 16: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하연 시민기자의 그림의 말들
미국 인상주의 화가 ‘존 싱어 사전트’

스페인 플라멩코와 ‘엘 할레오’

엘 할레오(1882.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박물관)
엘 할레오(1882.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박물관)

캐스터네츠 소리, 현란한 기타 소리, 박수를 치며 발 구르는 소리와 함께 오른 쪽 끝 손을 든 여인들 입에서 ‘할레오’라는 외침이 들릴 듯하다. 시각적으로도 역동성을 지닐 뿐 아니라 음악적 요소가 풍부하다. 무대 아래서 쏘아 올리는 조명 탓에 손에 쥔 치맛자락은 음영이 깊어져 생동감이 느껴지고, 춤추는 여인의 그림자는 벽으로 확대돼 존재감이 압도적이다.

악기를 무릎에 올리고 관중을 바라보는 남자, 박수를 치는 남자, 빈 의자와 그 위 벽면에 걸린 기타 두 개, 기타 치는 남자 둘, 머리를 위로 꺾고 잠이 든 남자, 그 옆으로 열심히 환호하는 남녀 셋. 빛과 어둠속에 자칫 칙칙해 보일 수 있는 그림을 의자 위 오렌지와 마지막 손을 들고 있는 여인의 오렌지 색 드레스가 살렸다. 이 지나치지 않는 오묘한 맞춤.

무대 중앙에서 몸을 뒤로 젖힌 채 오른 쪽으로 걸어가며 물아지경에 빠진 채 춤을 추는 여인이 압권이다. 이 춤은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의 민속 무용인 플라멩코다. 한번 보면 혼을 쏙 빼놓는 춤. 누군가는 춤추는 여인은 위험하다고 했다. 춤을 추면서 느끼는 기쁨이 금지된 다른 욕망의 문을 열지도 모른다며. 여인의 춤 속에는 억압하려는, 규제하려는 힘과 억압을 벗어나 기쁨을 누리고 기꺼이 죄를 저지르고자하는 욕망이 격렬히 대립하고 있다.(신성림의 ‘춤추는 여자는 위험하다’ 중에서) 그래서 여자는 춤을 욕망하고, 남자는 춤추는 여자를 욕망하나보다. 마치 숨겨둔 내 마음속 욕망의 문을 여는 그림 같다.

이 그림은 존 싱어 사전트(1856-1925)가 그린 ‘엘 할레오’다. 한국에는 ‘스페인 댄서’라고 번역된 그림인데, 할레오는 성원이나 갈채를 뜻한다. 이 그림 크기는 348×232cm. 웬만한 거실 벽면 한 쪽을 다 채우는 크기다. 사전트는 스페인 여행에서 본 이 장면을 기억했다가 파리로 돌아와 무려 3년간 정성을 들여 완성했고, 파리 살롱전에서 입상했다. 그의 나이 26세였다.

스승 ‘오귀스트 카롤로스 뒤랑’과 청출어람

카네이션, 백합, 백합, 장미(1885~6. 런던 테이트 브리튼 미술관)
카네이션, 백합, 백합, 장미(1885~6. 런던 테이트 브리튼 미술관)

사전트는 외과 의사인 아버지와 아마추어 화가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고, 두 여동생이 있다. 어머니가 거부의 딸이었기에 평생을 유복하게 살았다. 그는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활동하다가 런던에서 생을 마감한 미국인이다. 태생부터 코즈모폴리턴. 미술에 천부적 소질을 타고난 그는 17세까지 이탈리아에 살면서 유럽 각국을 여행하며 문화ㆍ예술적 견문을 넓혔다. 홈스쿨링으로 영어는 기본에 이탈리아어ㆍ프랑스어ㆍ스페인어ㆍ독일어에 능했으니 국제적 화가가 되기에 완벽한 조건이다.

1874년, 18세가 된 해에 파리로 건너간 그는 미술작업에 착수한다. 유명한 공립 미술학교 에콜드 보자르에 입학해 당시 초상화가로 이름을 날린 오귀스트 카롤로스 뒤랑의 제자로 들어가는데, 파리에서 제1회 인상파 전시가 열린 역사적 해다. 그는 이곳에서 모네와 친교를 맺고, 몇 년 후 모네가 북 프랑스 작은 마을 지베르니로 가서 인상파 화가들을 이끌 때 그곳을 네 번 방문해 인상주의 화풍을 연구했다.

청출어람이란 그를 두고 한 말. 4년 후인 1878년 사전트는 풍경화 ‘깡깔르의 굴 채집자’라는 작품으로 파리 살롱전에서 장려상을 받는다. 이듬해에는 스승인 뒤랑의 초상화를 그려 심사위원상을 받는다. 3000대 1의 경쟁을 뚫고. 1889년, 사전트는 스승보다 한 해 앞서 프랑스 정부로부터 최고의 훈장인 ‘뢰종 도뇌르’를 받는다. 다음 해에 뒤랑도 같은 훈장을 받는다.

스승의 초상화는 새 스타 탄생을 알렸다. 많은 초상화 주문이 밀려들었다. 그는 그 와중에도 스승의 조언에 따라 스페인을 여행하며 프라도 미술관에서 벨라스케스의 작품을 모사한다.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란 명작을 모사한 그림도 유명하지만, 벨라스케스에게서 모티브를 가져온 ‘에드워드 달리 보이트의 딸’이란 작품도 구도나 색체 면에서 기가 막힌다. 프라도 미술관은 이런 이유로 두 그림을 나란히 전시하기도 한다. 그렇게 스페인을 여행하며 그가 기억 속에 저장한 장면이 바로 ‘엘 할레오’이다.

고트르 부인과 ‘마담-X’
 

‘마담-X’ 원본 사진과 ‘마담-X’(1883~4.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마담-X’ 원본 사진과 ‘마담-X’(1883~4.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자신의 존재를 한 단계 높이고 싶었던 사전트는 기념비적인 초상화를 그리려고 모델을 탐색하던 중 한 여인을 본다. 첫 눈에 반한 사전트는 여러 경로로 그녀에게 다가가 모델이 돼줄 것을 청했고, 결국 그녀를 설득했다. 그녀는 바로 당대 최고로 아름답다고 소문 난 고트로 부인이다.

어린 시절 파리로 건너온 미국 뉴올리언스 출신의 그녀는 부유한 은행가 피에르 고트로와 결혼했다. 많은 화가들이 모델로 그리고 싶어 했지만 허락하지 않았던 그녀는 사전트의 청을 받아들인다. 자신의 능력치를 실험해보고 싶은 화가와 자신의 미모를 만방에 알리고 싶은 모델 간의 요구가 맞아떨어진 순간이다.

화가의 요청으로 제작한 이 그림은 제작과정에서 유여곡절을 겪었다. 사교활동으로 너무 바쁜 고트로 부인은 한가한 시간이 별로 없는 데다 모델을 해보지 않아 자세를 오랜 시간 유지하는 데 서툴렀다. 이 작품에 사활을 건 사전트 역시 다른 작품과 차별화한 구도나 자세를 결정하느라 무려 30점이 넘는 다양한 포즈의 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2년을 거쳐 탄생한 작품이 ‘마담-X’다.

그림이 전시되자 난리가 났다. 비평가들은 미국 출신 두 남녀가 파리에서 지나치게 유명해지는 것이 싫었는지 악평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 작품에서 죽음과 퇴폐라는 코드를 찾아냈다. 지나치게 흰 피부가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거다. 그리고 깊이 파인 가슴과 한쪽이 흘러내린 어깨끈이 퇴폐적이고 외설적이며, 왼쪽 팔이 비정상적으로 뒤틀려있다고 비난했다. 이 그림의 원작은 사진처럼 왼쪽 어깨끈이 내려온 상태였다. 고트로 부인의 어머니까지 전시장에 찾아와 그림을 내려줄 것을 눈물로 간청하는 일이 벌어졌다. 사교계의 여왕으로 군림했던 여인은 한순간에 음탕한 여인으로 세간의 조롱거리가 됐다.

논란이 거세지자 사전트는 전시가 끝나고 어깨끈을 수정할 것을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화가가 자신의 그림을 여론에 떠밀려 수정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 하지만 28세인 그가 거센 비난을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어깨끈을 수정했지만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결국 고트로 집안은 이 그림을 매입하지 않았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매입했고, 지금은 사전트의 대표작이자 그 미술관을 대표하는 그림이 됐다. 이래서 시대의 편견에 휩쓸리지 않는 안목이 중요하다. 당시에도 이 그림의 가치를 인정하고 놀라움을 표현한 비평가도 있었다. 목소리가 작았을 뿐.

런던 코츠월드와 ‘카네이션, 백합, 백합, 장미’

결국 이 그림으로 상처만 가득 안은 사전트는 파리를 떠나 런던으로 간다. 그는 런던에서 명성을 금세 회복했다. 그는 휴식 차 놀러간 예술인 마을 코츠월드의 아름다운 광경에 빠져 그 모습을 그리기 시작한다. 사랑의 상처를 사랑이 회복시키듯, 그림으로 인한 상처는 그림이 회복시켰다.

이 그림이 바로 ‘카네이션, 백합, 백합, 장미’이다. 독특한 작품 제목은 조셉 마징의 노래 ‘그대 양치기들아 내게 말해다오’의 후렴구에서 따왔다. 그림에 등장한 소녀들은 사전트의 친구인 삽화가 프레드릭 버나드의 딸들이다. 왼쪽은 11세 돌리, 오른쪽은 7세 폴리다. 여름, 해질무렵 두 소녀는 백합과 장미, 카네이션이 만발한 정원에 서서 중국식 등에 불을 켜고 있다. 빛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대상의 모습을 포착한 인상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지만, 누워있는 풀의 디테일은 사실적이다. 인상주의와 사실주의를 결합한 사전트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사전티즘’이라고 한다.

어린 시절 향수를 자극하는 이 그림은 사랑스러움 그 자체다. 누군가 내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을 물어본다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이 그림을 말할 꺼다. 해가 지는 시간은 고작 30분을 넘지 않았기에 사전트는 두 해에 걸쳐 이 그림을 그렸다. 빛의 느낌을 극대화하고 싶은 욕심으로 매일 해질녘 그 시간을 기다리고 그 시간에만 볼 수 있는 빛을 담았다. 명작은 재능만으로 탄생하지 않는다.

사전트는 다시 유명해졌다. 런던에서 활동하지만 파리에서 열리는 살롱전에 꾸준히 작품을 냈다. 점점 더 유명해지는 사전트를 잡기 위해 프랑스ㆍ영국ㆍ미국의 물밑작업이 치열해진다. 프랑스는 최고의 훈장을 수여했고, 영국은 기사 작위를 제의했고, 미국은 보스톤 공공도서관과 보스톤 미술관, 하버드대학의 기념도서관 등의 벽화 제작을 의뢰했다. 사전트는 미국 국적을 끝내 포기하지 않았고 미국 대통령 루즈벨트 시어도어의 초상화도 그린다.

유화 900점, 수채화 2000점, 수많은 드로잉과 스케치를 남긴 사전트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다가 1925년 69세에 심장병으로 눈을 감았다.

[참고서적] 미국 인상주의 거장 화가 존 싱어 사전트(조영규, 아트월드)